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사실 블란카도 그리 자료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오스트리아 대공이랑 결혼해서 아이들을 왕창 낳았기 때문에 자료가 쬐금이라도 있는거라죠.-0-
하지만 블란카의 동생인 마드리드 공작은 자료가 많더라구요=-= 게다가 그 마드리드 공작이 치타 황후와 혼담이 오간다는 소문이 도는 바람에 오스트리아 황위계승자였던 카를 대공이 치타한테 확 청혼하는 계기가 되는 스토리도 있고 말입니다.==
에스파냐의 인판타들...(28) 인판타 블란카 : 카를로스 4세의 현손 (두번째)
인판타 블란카
오스트리아 대공비
Infanta Blanca of Spain
(7 September 1868 – 25 October 1949)
아마 웨딩드레스인듯..-0-;;
블란카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지만, 그녀의 어린시절은 "제 3차 카를리스트 전쟁"과 연결이 됩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마드리드 공작은 카를리스트들이 생각하는 정당한 에스파냐 왕위계승자였으며 복잡한 에스파냐 정치 상황은 카를리스트들이 다시한번 내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
에스파냐에서 "카를리스트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은 이사벨 2세가 즉위하면서 그녀의 숙부였던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일으킨 내전을 의미합니다. 이 전쟁은 사실상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간의 대결구도였습니다. 1차 전쟁은 이사벨이 즉위한 즉후에 일어났으며, 2차전쟁은 이사벨이 사촌인 카디스 공작과 결혼하면서 일어납니다. 이때 카를리스트들은 이사벨이 카디스 공작이 아니라 몰리나 백작의 장남이었던 몬테몰린백작 카를로스와 결혼해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전쟁은 이사벨2세가 퇴위한뒤 에스파냐가 공화정이 되었다가 이탈리아 국왕의 아들인 아메데오를 국왕으로 선출하면서 벌어지게 됩니다. 카를리스트들은 당연히 정당한 왕위계승권리를 가진 마드리드 공작이 왕위를 이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블란카의 아버지
마드리드 공작 카를로스
블란카는 어린시절 카를리스트 전쟁에 참가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나바라에서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3차 카를리스트 전쟁 역시 카를리스트들의 패배로 돌아갔으며 블란카의 아버지인 마드리드 공작은 다시 에스파냐를 떠나야했었습니다. 이 전쟁이 끝난뒤 에스파냐에서는 이사벨 2세의 아들인 알폰소가 에스파냐의 국왕 알폰소 12세가 되었으며, 마드리드 공작은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다시 망명해야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프랑스에서도 떠나야했는데, 마드리드 공작의 정치적 행위는 에스파냐와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했던 프랑스측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 추방당한뒤 블란카의 부모는 헤어져서 살았는데, 블란카와 동생들은 부모 사이를 오가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블랑카의 부모
블랑카는 한때 알폰소 12세의 신부감으로 여겨졌었습니다만 혼담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알폰소 12세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종사촌이었던 몽팡시에 공작의 딸인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였습니다. 하지만 몽팡시에 공작은 대놓고 에스파냐 왕위를 노렸으며, 알폰소 12세의 숙부인 세비야 공작을 결투로 살해하기까지 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때문에 이사벨 2세는 제부와 여동생의 가족들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조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또 이사벨은 카를리스트들과의 내전을 고민했을 것이고, 아들이 마드리드 공작의 딸과 결혼한다면 적어도 카를리스트들의 지지를 받을것이라고 생각햇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벨 2세는 블란카를 며느리 감으로 고려했으며 이런 계획에 대해 에스파냐에서도 많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에스파냐 내에서도 몽팡시에 공작에 대해서 그다지 인기가 없었으며 이런 상황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가 왕비가 되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반기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알폰소 12세는 모두의 생각에 굴하지 않았으며,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됩니다.
알폰소 12세의 왕비였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1889년 블란카는 오스트리아의 대공인 레오폴트 살바토르와 결혼합니다. 그는 토스카나 대공의 손자로 토스카나가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된 뒤 가족들은 모두 오스트리아로 가서 거주했으며 그 역시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복무했었습니다. 블란카는 레오폴트 살바토르 대공과의 사이에서 모두 열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레오폴트 살바토르 대공과 블란카 그리고 둘의 자녀들
1차대전이 끝난뒤 오스트리아가 공화국이 되면서 블란카와 그 가족들은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블란카와 남편은 새 정부를 인정하길 거부했으며 결국 오스트리아에서 추방당할 처지에 이르게 되죠. 문제는 블란카의 가족들은 이탈리아나 프랑스로 가지 못했는데, 이 나라들은 1차대전중 오스트리아의 적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블란카는 에스파냐의 국왕 알폰소 13세에게 자신의 가족들을 받아달라고 요청했으며 알폰소 13세는 블란카와 가족들이 블란카의 동생인 마드리드 공작 하이메의 계승권을 지지하지 않는 조건으로 가족들을 에스파냐에서 살수 있게 해줬습니다. 블란카와 가족들은 바르셀로나에서 거주했었습니다. 1931년 알폰소 13세가 퇴위했을때, 블란카의 가족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몇달뒤 그녀의 남편이 사망했으며 블란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으며, 또한 에스파냐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때문에 딸들과 함께 빈으로 돌아게 됩니다.
두 아들과 함께 있는 브란카
1938년 아돌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블란카는 미혼이었던 자녀들과 함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영지가 있는 이탈리아로 갔으며 그곳에서 81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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