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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27) 인판타 블란카 : 카를로스 4세의 현손 (첫번째)

엘아라 2016. 7.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 복잡한 에스파냐 가계도를 볼려니 머리가 깨집니다.

이게 이사벨 2세가 즉위하면서 카를리스트들이랑 나뉘어서 복잡하게 계승이 돌아가거든요.

게다가 이사벨이 즉위하면서 인판타들에게도 왕위계승권이 주어지면서, 인판타들의 아들들에게도 인판테 칭호가 부여되기도 하고 복잡하드랩니다.(그런데 딸들한테는 인판타 칭호가 안붙는 경우가 더 많은듯..--;;)

게다가 집안이 이렇게 복잡하면 딸들이 지참금이나 지위등이 부족하거나 정치적 문제 때문에 시집가기 힘들거든요-0-;;;; 그결과 귀천상혼도 많이하고 미혼으로 살기도 해서 자료가 엄청 부족합니다.


그래서 일단 자료 찾을수 있는 사람들 먼저 쫘악해놓고 나중에 하늘에서 자료가 떨어진다면--;; 다시 찾아볼까합니다.

...스웨덴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를 배워야할판이군요=-=


에스파냐의 인판타들...(27) 인판타 블란카 : 카를로스 4세의 현손 (첫번째)




인판타 블란카

오스트리아 대공비

Infanta Blanca of Spain 

(7 September 1868 – 25 October 1949) 


인판타 블란카는 1868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슈타이어마르크 지방의 그라츠에서 마드리드 공작 카를로스와 그의 부인인 부르봉-파르마의 마르게리타의 첫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에스파냐 왕가의 후손이었습니다만, 당시 그녀의 상황은 좀 복잡했습니다.



블란카의 부모

마드리드 공작 카를로스와 그의 아내인 부르봉-파르마의 마르게리타


블란카의 아버지이자 "마드리드 공작"으로 알려진 카를로스는 이사벨 2세의 숙부였던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의 손자였습니다. 몰리나 백작은 카를로스 4세의 아들이자 페르난도 7세의 동생으로 이사벨이 태어나기전 오래도록 후계자를 얻지 못했던 페르난도 7세의 후계자로 여겨졌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벨이 태어난뒤, 페르난도 7세는 계승법을 바꿔서 딸인 이사벨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몰리나 백작인 카를로스와 그 주변 사람들은 크게 반발했으며, 카를로스가 국왕이 되어야한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카를리스트"(대충 카를측 사람들 정도..)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이때 에스파냐 정치가 좀 혼란해서 카를리스트들은 좀더 보수주의적이었으며, 이사벨을 지지하는 쪽은 좀더 자유주의적이었기에 두 정치세력이 마찰을 빚은 것이라 할수 있었습니다. 이 카를리스트들은 이사벨측과 몇번의 전쟁을 치루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몰리나 백작은 왕위를 얻지 못했으며 에스파냐를 떠나 망명해야했습니다.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

블란카의 증조할아버지, 이사벨 2세의 숙부


몰리나 백작에게는 세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둘째아들이었던 몬티손 백작 후안만이 자녀를 뒀습니다. 몬티손 백작은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베아트릭스와 결혼해서 두명의 아들을 뒀습니다. 그 두명의 아들중 장남이 바로 블란카의 아버지인 마드리드 공작 카를로스입니다. 이렇게 블란카의 아버지는 카를리스트들이 에스파냐의 국왕으로 여겼던 인물로, 이때문에 가족들은 오래도록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블란카의 할아버지

몬티손 백작 후안


블란카의 어머니인 부르봉-파르마의 마르게리타는 파르마 공작이었던 카를로 3세와 그의 아내인 프랑스의 루이즈 마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파르마 공작가문은 원래 에스파냐 왕가의 분가로, 카를로 3세의 증조할아버지가 에스파냐의 펠리페 5세의 아들이었습니다. 또 카를로 3세의 할머니는 카를로스 4세의 딸인 마리아 루이사였습니다. 마르게리타의 어머니인 루이즈 마리는 프랑스의 부르봉 가문의 마지막 후손으로, 루이 10세의 아들인 아르투아 백작의 딸이었습니다.



블란카의 어머니 마르게리타


블란카에게는 네명의 동생이 있었는데, 남동생인 하이메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드리드 공작 칭호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카를리스트들이 지지하는 에스파냐 국왕이었지만, 후계자 없이 사망했었으며 그의 권리는 숙부인 산 하이메 공작에게 돌아갔지만, 산 하이메 공작 역시 후계자 없이 사망합니다. 이에 블란카의 아들인 카를 피우스가 산 하이메 공작의 후계자로 카를리스트들이 주장하는 계승자가 됩니다만, 복잡한 사정을 거쳐 결국 에스파냐 왕위에 대한 권리는 알폰소 13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블란카에게는 세명의 여동생들이 있었습니다만, 망명한 왕위계승요구자의 딸들은 사실상 결혼하기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재산이나 지위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블란카의 여동생들은 미혼이거나 아니면 왕족이 아닌 귀족과 결혼했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자료가 없습니다..ㅠ.ㅠ)



블란카의 동생 하이메


이렇게 복잡한 정치 상황에 놓여져있던 가문에서 태어난 블란카는 어린시절부터 복잡한 정치적 문제에 연관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