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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34) 이사벨 2세 : 페르난도 7세의 딸(세번째)

엘아라 2016. 6. 2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문득 무슨생각이 들었냐면...

이사벨 2세부터 여성의 계승권을 인정해서 에스파냐 인판타들의 자녀들도 에스파냐 왕위계승권을 가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것도 다 봐야하는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 복잡한데...-0-;;;


일단 페르난도 7세 딸네미들 다하고 몰리나 백작 후손이 몇명없으니 그쪽부터 하고 고민해야겠습니다.-0-;;


에스파냐의 인판타들...(34) 이사벨 2세 : 페르난도 7세의 딸(세번째)




에스파냐의 이사벨 2세

 Isabel II 

(English: Isabella II; 10 October 1830 – 10 April 1904) 


이사벨 2세의 치세 동안 에스파냐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즉위초부터 이사벨의 섭정문제로 섭정이 바뀌었으며, 이때문에 성년이 안되었음에도 13살의 이사벨이 성년으로 선포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섭정이 권한을 휘두루는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만, 어린 여왕이 혼란한 에스파냐 정치를 완전히 통제할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통치 전반기 내내 카를리스트와의 내전이 있었으며 이런 내전은 안그래도 정치적으로 혼란한 에스파냐를 지역적으로 분열시키기에 충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사벨은 군대의 지지로 왕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사벨은 주로 군대의 의견을 많이 따랐습니다. 또 교회에 의견 역시 많이 영향을 받았으며 이런 상황은 초기 이사벨의 지지자들이 자유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과는 좀 다른 문제가 됩니다. 이사벨은 교회나 군을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종종행사했었으며 이것은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배신이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또 이사벨 2세의 재임시 수많은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던 곳이 독립하려하거나 독립을 위한 투쟁에 나섰고 이런 곳에 무력으로 관여하게 되면서 이사벨의 인기는 더 떨어지게 됩니다. 또 에스파냐내에서 철도등의 기반산업을 위한 확충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이사벨은 이런 산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자신의 주변 인물들에게 잇권을 챙겨주는 등의 일을 했기에 그녀의 평판은 더욱더 떨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사벨2세


결국 1868년 에스파냐에서는 혁명이 일어났으며, 이사벨은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해야했습니다. 이동안 에스파냐는 잠시 공화정이었다가, 사보이 가문 출신의 아메데오(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아들)가 에스파냐의 국왕으로 선출되기도 했었습니다. 이사벨은 이 와중에 자신이 왕위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힘들다고 보고 아들인 알폰소에게 양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1874년 다시 에스파냐에서 왕정복고가 이뤄지면서 이제 가문의 수장이 된 이사벨의 아들인 알폰소가 국왕 알폰소 12세로써 에스파냐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사벨의 아들

알폰소 12세


아들이 에스파냐로 돌아간 뒤 이사벨 역시 에스파냐로 돌아가려고 했었을듯합니다. 하지만 아들을 잠시 방문했었을때 정치적 음모에 휘말릴뻔했으며 결국 이사벨은 에스파냐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고 파리에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에스파냐를 방문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사벨 2세


1870년에 이사벨은 망명중에 남편인 프란시스코와 별거에 들어갑니다. 가톨릭에서는 결혼무효만이 결혼을 해소하는 방법이었기에 둘의 별거는 이혼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청산한 둘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로 남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죽을때 이사벨과 그 자녀들이 모두 임종을 지키기도 했었습니다. 



이사벨과 남편 프란시스코


이사벨은 에스파냐 정치에서 점차 멀어져갔는데, 이사벨은 아들이 죽고 손자가 태어나고 며느리가 섭정이 되었을때도 에스파냐로 가지 않고 파리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이사벨은 열두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유산한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살아서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네명이었다고 합니다. 세명은 딸이었고 아들은 에스파냐의 국왕이 된 알폰소 12세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사벨의 아이들이 남편의 아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으며 심지어 여왕의 막내딸인 마리아 아우랄리아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따로 있다고 대놓고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당대에 문제가 있어서 아이를 얻을수 없을것이라 여겨졌었으며, 이런 상황은 복잡한 에스파냐 정치 상황때문에 이사벨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퍼져나갔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사벨의 남편은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아이로 인정했고 이때문에 법적으로는 아이들은 모두 이사벨과 프란시스코의 자녀들로 인정되었습니다.



세 딸들과 함께 있는 이사벨 2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