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원래 이 시리즈에서는 자녀들을 따로 안보는데 말입니다.
워낙 애를 많이 낳아서 자녀들을 따로 볼까합니다. 나중에 이사벨 2세 할때 할 예정이긴 합니다만, 마리아 이사벨라의 딸인 이사벨 2세의 엄마가 좀 뭐랄까 에스파냐가 복잡하게 되는데 일조하신분이거든요-0-;;;
에스파냐의 인판타들...(31) 인판타 마리아 이사벨 : 카를로스 4세의 딸(여섯번째)
에스퍄냐의 마리아 이사벨
양시칠리의 마리아 이사벨라 왕비
María Isabella of Spain
(6 July 1789 – 13 September 1848)
미니어처 그림, 그냥 미화--;;;
마리아 이사벨라 왕비는 남편인 프란체스코 1세와의 사이에서 열두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전처 자식이었던 딸까지 모두 열세명의 아이를 키웠었습니다.
마리아 이사벨라의 첫째아이는 딸인 루이사 카를로타는 외삼촌인 인판테 프란치스코 델 파울라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열한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녀의 아들인 카디스 공작 프란치스코 데 아시스는 후에 그녀의 조카인 이사벨 여왕과 결혼했습니다. 루이사 카를로타는 여동생인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자신의 외삼촌이자 시아주버니였던 페르난도 7세와 결혼하도록 주선했으며, 조카인 이사벨이 후계자가 되는 것을 지지했었습니다.
루이사 카를로타, 카디스 공작부인
마리아 이사벨라의 둘째아이는 딸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였습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외삼촌인 에스파냐의 페르난도 7세와 결혼했습니다. 앞선 결혼으로 후계자를 얻지 못했던 페르난도는 마리아 크리스티나와의 사이에서 두명의 딸을 얻었습니다. 딸이 태어난뒤 페르난도는 계승법을 바꿔서 남성 후계자가 아닌 여성후계자가 왕위를 이어받도록 고치게 됩니다. 이 상황은 페르난도의 동생이자 이전까지 후계자였던 인판테 카를로스의 반발을 사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페르난도 7세가 사망한뒤 이사벨이 즉위하고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섭정이 됩니다만, 인판테 카를로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에 반발해서 에스파냐는 내전상황에까지 치닿게 됩니다. 이사벨의 어머니였던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잘생긴 하급 장교와 재혼했는데 이 상황은 안그래도 복잡한 에스파냐의 정치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으로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섭정지위에서 물러나야했고 심지어 딸들을 두고 에스파냐를 떠나야하기까지 했습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에스파냐의 왕비
마리아 이사벨라의 셋째아이는 아들이자 국왕이 되는 페르디난도 2세입니다. 그는 양시칠리의 국왕으로 양시칠리를 통치했습니다. 통치초기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시칠리에서의 반란은 그가 나라를 강압적으로 통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페르디난도의 아들이었던 프란체스코 2세는 시씨황후의 여동생과 결혼했었으며 양시칠리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기도 했습니다.
양시칠리의 페르디난도 2세
마리아 이사벨라의 넷째아이는 아들인 카푸아 공 카를로였습니다. 그는 귀천상혼했으며 이때문에 지위를 박탈당하고 추방당해서 살았습니다. 마리아 이사벨라가 제일 예뻐한 아들이었기에 그녀는 아들에게 도움이 되려했지만 소용없었으며 이후 평생 아들을 못만났다고 합니다.
카를로, 카푸아 공
마리아 이사벨라의 다섯째아이는 아들인 시라쿠사 백작 레오폴도였습니다. 레오폴도는 매우 인기있는 왕자였으며 그의 형인 페르디난도는 동생의 인기를 걱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에도 페르디난도가 가장 예뻐한 남동생이 레오폴도였다고 합니다.
레오폴도, 시라쿠사 백작
마리아 이사벨라의 여섯째아이는 딸인 마리아 안토니에타였습니다. 마리아 안토니에타는 할머니의 여동생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마리아 안토니에타는 신앙심이 깊은 여성으로 오빠인 페르디난도 2세와 제일 친한 여동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열일곱살이나 많은 토스카나 대공 레오폴도 2세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10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녀의 아들인 페르디난도 4세는 토스카나의 마지막 대공이었습니다.
마리아 안토니에타,토스카나 대공비
마리아 이사벨라의 일곱째아이는 아들인 레체 백작 안토니오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는 26살에 사망했는데, 따라다니던 여자가 유부녀였고 그녀의 남편은 질투심에 레체 백작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안토니오,레체 백작, 어린시절
마리아 이사벨라의 여덟째아이는 딸인 마리아 아말리아로 사촌이었던 친척이었던 인판테 세바스티안과 결혼했습니다. 인판테 세바스티안은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3세의 증손자이자 그의 어머니는 포르투갈의 마리아 1세의 손녀였기에 그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계승권을 모두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그는 에스파냐에서 마리아 아말리아의 외삼촌인 인판테 카를로스를 지지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마리아 아말리아는 자녀없이 남편보다 먼저 사망했는데 그녀가 죽고 나서 인판테 세바스티안은 마리아 아말리아의 조카였던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결혼합니다.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마리아 아말리아의 큰언니인 루이사 카를로타의 딸인데, 재미나게도 루이사 카를로타는 조카인 이사벨 2세를 지지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마리아 아말리아, 에스파냐의 왕자비
마리아 이사벨라의 아홉째아이는 딸인 마리아 카롤리나로, 그녀는 사촌이었던 인판테 카를로스와 결혼했습니다. 재미난것은 몬테몰린 백작인 인판테 카를로스는 에스파냐의 왕위를 주장했던 몰리나 백작 인판테 카를로스(마리아 카롤리나의 외삼촌)의 아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조카인 이사벨의 정적이었던 인판테 카를로스와 결혼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 카롤리나,몬테몰린 백작부인
마리아 이사벨라의 열번째아이는 딸인 테레사 크리스티나였습니다. 그녀는 브라질의 황제인 페드루 2세의 황후가 되어서 머나먼 브라질로 가게 됩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네명의 아이가 태어나지만 두명의 딸만이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테레사 크리스티나는 남편인 페드루 2세와 정략결혼이었는데 아주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남편과 잘 지냈으며 남편의 정부를 참고 살았다고 합니다.
테레사 크리스티나, 브라질 황후
마리아 이사벨라의 열한번째아이는 아들인 아퀼라 백작 루이지입니다. 그는 매형의 누나였던 브라질의 야누아리아와 결혼했습니다. 야누아리아는 페드루 2세의 누나로 그의 자녀가 태어나기 전까지 브라질의 추정황위계승자였고 아마 이런 상황은 루이지가 그녀와 정략결혼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루이지, 아퀼라 백작
마리아 이사벨라의 막내아이는 아들인 트라파니 백작 프란체스코입니다. 그는 대가문의 막내아들로 많은 경우에서 처럼 "종교"에 귀의하길 바라면서 로마에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조카인 에스파냐의 이사벨 2세와의 혼담이 오가게 되죠. 이 혼담은 그의 고모부인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 국왕이 지지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와 그 주변 인물들은 친오스트리아파였기에 이 결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프란체스코와 이사벨 2세의 약혼을 프란체스코의 형인 페르디난도 2세가 승인하게 됩니다만, 이 결혼을 지지했던 에스파냐측 정치가가 실각하면서 결국 이 결혼은 없었던 것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또 조카인 토스카나 대공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프란체스코,트라파니 백작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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