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제가 오늘에서야 뭐가 이상한지 깨달았습니다.
에스파냐의 인판타들이 원래 화요일날 올라가던 글인데 월요일날 올리고 있고 반대로 정부들 이야기가 월요일날 올라가던것인데 화요일날 올리고 있었습니다.
ㅠ.ㅠ 제가 그동안 상태가 좀 많이 메롱했습니다.ㅠ.ㅠ
이번달까지는 이렇게 바꿔서 하고 다음달부터는 원래대로 올리겠습니다.
에스파냐의 인판타들...(28) 인판타 마리아 이사벨 : 카를로스 4세의 딸(세번째)
에스퍄냐의 마리아 이사벨
양시칠리의 마리아 이사벨라 왕비
María Isabella of Spain
(6 July 1789 – 13 September 1848)
시칠리와 나폴리 왕국의 상황은 매우 복잡했는데 나폴레옹이 몰락한뒤 빈회의를 통해서 인판타 마리아 이사벨라의 시아버지는 다시 국왕으로 복귀합니다만 두 왕국은 "양시칠리"라는 이름으로 통합되게 됩니다. 마리아 이사벨라의 남편인 프란체스코는 양시칠리 왕국의 후계자로 "칼라브리아 공작"이라는 칭호를 쓰게 되고, 마리아 이사벨라 역시 칼라브리아 공작부인이라고 불리게 되죠.
마리아 이사벨라는 결혼 초기에는 너무 어렸기에 정치에 참여할수 없었고 나이가 좀 들어서는 계속해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고 수많은 아이들을 얻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계속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더 집중했기에 역시나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혼했을때 이미 남편은 죽은 전처 사이에서 딸이 있었고, 마리아 이사벨라 역시 이후 지속적으로 열두명의 아이를 낳았었습니다.
1820년의 프란체스코의 가족들
이후로도 네명의 아이들이 더 태어납니다.
겨우 13살의 나이에 결혼해서 이탈리아로 왔지만 마리아 이사벨라는 에스파냐쪽 가족들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갔습니다. 그녀는 로마로 망명중이던 부모님을 만나기도 했으며 자신의 자녀들을 친정쪽 사람들과 결혼시키는 것에 열중했습니다. 여섯딸들중 네명의 딸이 에스파냐 왕가 사람들과 결혼했었습니다.
1814년 시어머니인 마리아 카롤리나가 사망한 석달뒤, 마리아 이사벨라의 시아버지인 페르디난도는 이탈리아 귀족 출신의 여성과 재혼을 합니다. 이 결혼은 귀천상혼이었는데 국왕이 귀천상혼한 것에 충격이 아니라 애도기간을 끝내지 않고 재혼한것에 대해서 궁정에서 쑥덕댔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도의 새 아내는 아마 의례적으로 지냈을 것인데 말들은 많이 나지 않았었던듯합니다. 이것은 두 여성 모두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없었으며, 실권은 국왕이 아니라 아들이자 마리아 이사벨라의 남편인 프란체스코에게 있었기에 국왕과 아들의 갈등상황이 조성되지 않은것도 한 원인일듯합니다.
마리아 이사벨라의 새 시어머니
루치아 밀리아초
플로리디아 공작부인
1825년 마리아 이사벨라의 시아버지인 페르디난도가 사망하고 마리아 이사벨라의 남편인 프란체스코가 양시칠리의 국왕이 됩니다. 남편이 즉위하므로써 마리아 이사벨라도 이제 양시칠리의 왕비가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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