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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27) 인판타 마리아 이사벨 : 카를로스 4세의 딸(두번째)

엘아라 2016. 5.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0-;;;;

오랫만에 블로그에 글을 써서 그런지 적응이 안되는듯해요..ㅠ.ㅠ


에스파냐의 인판타들...(27) 인판타 마리아 이사벨 : 카를로스 4세의 딸(두번째)



에스퍄냐의 마리아 이사벨

양시칠리의 마리아 이사벨라 왕비

María Isabella of Spain 

(6 July 1789 – 13 September 1848)


결혼후 나폴리로 온 마리아 이사벨은 이탈리아에서 이제 마리아 이사벨라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녀는 궁정에서 크게 환영을 받지는 못합니다. 마리아 이사벨라의 자매들은 모두 키 작고 그다지 예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 이사벨라는 그나마 자매들중 가장 괜찮은 외모였긴 했지만 작은 키 때문에 처음 나폴리에 왔을땐 열세살보다 더 어려보이는 외모였습니다. 이때문에 궁정에서는 중요한 시기에 왕태자비가 너무 어려서 궁정에서 의무를 수행할수 없어 보였던듯합니다.


실제로 마리아 이사벨의 시어머니였던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는 며느리의 첫인상에 대해서 그다지 별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이사벨라에 대해서 작고, 볼품없으며, 지적능력도 별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카롤리나, 마리아 이사벨라의 시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들중 성격적으로 가장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를 많이 닮을 딸이라고 여겨지는 딸입니다. 실제로 그녀는 정치에 무관심한 남편을 잘 달랬고 이런 상황은 그녀가 나폴리와 시칠리 왕국에서 실질적 통치자로 여겨지게 만들었습니다. 


마리아 이사벨라는 나폴리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했는데 가장 먼저 그녀가 너무 어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겨우 13살에 결혼한 마리아 이사벨라는 외모가 실제 나이보다 더 어려보였기에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서 정치를 논의할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게다가 마리아 이사벨라는 막내딸로 응석받이로 자라났으며 이런 상황은 마리아 이사벨라의 교육상태가 그렇게 뛰어나지 못한 상황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결국 정치적 문제를 논의할만한 식견도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마리아 이사벨라는 곧 아이들을 낳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남편의 전처 딸도 있었기에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더 집중해야했을 것입니다.


마리아 이사벨라의 삶은 당시 많은 유럽 왕족들처럼 "나폴레옹"과 떼어놓을수 없을 것입니다. 그녀의 시댁인 나폴리 왕가는 나폴레옹이 아니라 영국을 지지했었는데 이것은 그녀의 시어머니였던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의 영향력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 카롤리나는 자신의 여동생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죽음으로 몰아간 프랑스에 대해 적개심이 강했는데 마리아 카롤리나는 남편을 대신해서 국정을 장악했었기에 나폴리와 시칠리 왕국이 영국을 지지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리아 이사벨라의 남편 프란체스코


하지만 나폴레옹의 등장이후 결국 이탈리아 대부분은 프랑스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나폴리 역시 프랑스에 점령당하게 됩니다. 나폴리 왕가는 따로 떨어진 시칠리 섬을 통치하고 있었기에 시칠리 섬으로 갔었지만 나폴리 왕국을 뺏기는 거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처음에는 형인 조제프를 나폴리의 국왕으로 세웠으나 이후 조제프를 에스파냐 국왕으로 세우고, 자신의 처남이었던 뮈라를 나폴리의 국왕으로 세웠습니다.


시칠리에서 영국군의 영향력이 컸으며, 영국은 국왕이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원치 않았는데 이런 상황은 마리아 이사벨라의 시어머니인 마리아 카롤리나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이사벨라는 여전히 정치적 문제와 무관하게 살았었습니다.



마리아 이사벨라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