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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26) 인판타 마리아 이사벨 : 카를로스 4세의 딸(첫번째)

엘아라 2016. 5. 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다시 시작해야하는데 뭐랄까 에너지를 팍팍썼는지 축축 쳐지네요..ㅠ.ㅠ

하지만 힘내서 글을 써야겠죠. 


에스파냐의 인판타들...(26) 인판타 마리아 이사벨 : 카를로스 4세의 딸(첫번째)



에스퍄냐의 마리아 이사벨

양시칠리의 마리아 이사벨라 왕비

María Isabella of Spain 

(6 July 1789 – 13 September 1848) 

고야의 그림



인판타 마리아 이사벨은 1789년 에스파냐의 국왕 카를로스 4세와 그의 아내인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카를로스 4세는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라고 알려져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무능력한 인물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국정은 아내인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가 장악하고 있다고 여겨졌었죠. 특히 1780년대 후반, 마리아 루이사는 마누엘 데 고도이를 신뢰하게 되었으며 아내의 영향력아래있던 카를로스 4세 역시 고도이를 신임하게 됩니다. 덕분에 고도이는 정치적으로 급속하게 영향력을 확대할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고도이가 마리아 루이사의 애인이기에 가능했을 거라는 소문이 궁정에서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리아 이사벨이 태어났을때 궁정에서는 마리아 이사벨이 국왕의 아이가 아니라 고도이의 아이일거라고 수근했었다고 합니다.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4세의 가족들

마리아 루이사 왕비가 끼고 있는 아이가 마리아 이사벨입니다.



마리아 이사벨의 어린시절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에스파냐는 프랑스와 전쟁을 했다 다시 평화조약을 맺은뒤 영국과 전쟁을 했으며, 또 복잡한 정치적 문제 역시 마리아 이사벨의 어린시절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혼란한 상황에서 마리아 이사벨의 부모는 늦둥이인 막내딸을 보호하려고 했으며 이때문에 마리아 이사벨을 응석받이로 키웠고, 결국 마리아 이사벨의 교육에 대해서 엄하게 하지 않았기에 기초 교육에 소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801년 뤼시엥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로 오게 됩니다. 이때 마리아 루이사는 프랑스와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자신의 막내딸인 마리아 이사벨과 나폴레옹의 결혼을 제안했다고 합니다.(--;;;아니 마리아 이사벨이 열두살인데..) 나폴레옹은 부르봉 가문과 연결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 결혼을 거절했다고 전해집니다.(...--;; 연상녀 취향의 나폴레옹이라서 그랫을수도...-0-;;;)


하지만 마리아 이사벨은 13살이었던 1802년 정략결혼합니다. 그녀의 상대는 사촌이자 나폴리와 시칠리의 후계자였던 프란체스코 였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마리아 이사벨보다 열두살정도 더 많았으며 첫번째 아내가 죽은 홀아비였습니다. 이 결혼은 프랑스 측의 의지가 들어간 결혼이었는데, 에스파냐는 프랑스의 동맹이었지만 나폴리와 시칠리는 영국측의 동맹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나폴리와 에스파냐의 왕가에서 결혼이 성사된다면 에스파냐와 나폴리와 시칠리가 우호관계가 되면서 프랑스측에 외교적으로 좀 더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마리아 이사벨 뿐만 아니라 마리아 이사벨의 오빠이자 에스파냐의 왕위계승자였던 아스투리아스 공 페르난도는 프란체스코의 여동생이었던 나폴리와 시칠리의 마리아 안토니아와의 혼담도 오가게 됩니다.


나폴리와 시칠리의 프란체스코


결국 마리아 이사벨은 1802년 7월 6일 열세번째 생일날 25살의 사촌인 프란체스코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결혼 뒤에 마리아 이사벨의 오빠인 페르난도 역시 프란체스코의 여동생이었던 마리아 안토니아와 결혼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