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절대 의도해서 늘린것이 아닙니다.
네개로 끝낼려고 했는데 뒤에 사건 사고가 많아서 다섯개가 된것뿐입니다.-0-;;;
에스파냐의 인판타들...(25) 인판타 마리아 루이사 : 카를로스 4세의 딸(다번째)
인판타 마리아 루이사
에트루리아 왕비
루카 여공작
Maria Luisa of Spain
(María Luisa Josefina Antonieta Vicenta)
(6 July 1782 – 13 March 1824)
마리아 루이사는 아들의 상속 영지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녀는 남동생인 페르난도 7세는 물론, 교황이나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까지 만나서 호소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제안 된것은 "루카 공작령"이었죠. 마리아 루이사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버티게 됩니다. 아마도 적어도 아들의 상속영지인 파르마는 되찾아야하겠다는 생각이었던듯합니다.
하지만 2년 이상 버티티던 마리아 루이사에게 생각을 바꾸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녀의 에스파냐 가족들은 마리아 루이사와 그녀의 아이들의 삶에 개입하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마리아 루이사의 아버지인 카를로스 4세와 동생인 페르난도 7세는 마리아 루이사의 딸이었던 마리아 루이사 카를로타를 마리아 루이사의 막내동생인 인판테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와 결혼시키길 원했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 루이사의 아들인 카를로는 마리아 루이사의 여동생의 딸이었던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결혼시키려했었죠. 이 두계획에 마리아 루이사는 찬성하지 않았었습니다. 마리아 루이사는 자신이 가족들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독립적인 삶을 살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 카를로타
마리아 루이사의 딸
결국 마리아 루이사는 파르마의 여공작인 마리 테레즈가 죽고 난뒤에 아들인 카를로가 파르마 공작이 되는 조건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녀에게는 "루카 여공작"지위가 부여되었으며 그녀가 죽은 뒤에는 아들인 카를로가 이곳을 상속받기로 했었죠.
마리아 루이사가 루카로 왔을때 그녀의 나이는 35살이었습니다. 그녀의 젊은 시절은 복잡한 유럽 정세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흘러가버렸었죠. 루카의 여공작이었던 마리아 루이사는 이제 다시 재혼을 고려합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여성 통치자였기에 안정적 통치를 위해서는 남성에게 의존할수 밖에 없는 당시 상황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또 아마도 모든 것이 안정된 상황인 그때 이제 그녀도 좀더 안정적 삶을 누리고 싶어했을 것일수도 있습니다.
첫번째 남편감으로 찾은 인물은 사촌이었던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3세였습니다. 이 결혼 계획은 꽤나 괜찮은 것이었는데 루카 공작령이 토스카나 대공령의 일부였었기에 마리아 루이사와 대공이 결혼한다면 공작령은 다시 대공령에 속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죠. 다음으로는 모데나 공작의 동생이었던 오스트리아-에스테의 페르디난트 카를 요제프 대공과 결혼을 추진했었지만 이 역시 성사되지 않습니다. 또 아르투아 백작 샤를(후에프랑스의 샤를 10세)와의 혼담도 고려했었습니다.
샤를 10세
루카의 통치자로서 마리아 루이사의 행동은 이전 통치자였던 엘리사 보나파르트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예술과 교육에 주력한 모습이었죠. 하지만 이미 마리아 루이사는 에트루리아 섭정 당시도 이런 정채을 폈었습니다. 또 신앙심이 매우 깊었기에 루카 공작령이 가톨릭 국가로 바뀌는데 기여를 했었다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마리아 루이사는 입헌 군주 체제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루카에서 입헌군주로 행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은 공국이었던 루카에서 그녀의 신하들은 이런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그다지 반발하지 않았었죠.
마리아 루이사는 아들을 사보이 국왕의 딸이었던 마리아 테레사와 결혼시킵니다. 마리아 테레사는 매우 아름다운 외모에 신앙심이 깊었기에 마리아 루이사가 보기에는 괜찮은 신부감이었던듯합니다. 마리아 루이사의 아들 역시 잘생긴 외모로 알려졌기에 부부는 선남선녀 커플로 알려지게 됩니다만 둘의 결혼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둘의 성격이 너무 안 맞았기 때문이었죠. 마리아 루이사는 후에 카를로가 결혼에 불만을 털어놨을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보이의 마리아 테레사
마리아 루이사의 며느리
1823년 마리아 루이사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1824년 암으로 로마에서 사망했습니다.
마리아 루이사는 남편인 루도비코와의 사이에서 두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첫째 아이는 아들인 카를로 루도비코로 후에 파르마 공작이 되는 인물이었죠. 둘째아이는 딸인 마리아 루이사 카를로타로 작센 왕국의 후계자였던 막시밀리안과 결혼합니다. 그는 마리아 루이사 카를로타의 고모였던 카롤리나와 결혼했었는데 아내가 죽은뒤 아내의 조카와 재혼한것이었습니다.
마리아 루이사의 아들
파르마의 카를로 2세
파르마 공작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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