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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33) 이사벨 2세 : 페르난도 7세의 딸(두번째)

엘아라 2016. 6. 2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사벨 2세때 정치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그런지 여왕 삶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세히 다루지 않네요..ㅠ.ㅠ

아...아닌가 스캔들은 참 많군요-0-;;; 그집 자식들이 모두 남편애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죠-0-;;;


에스파냐의 인판타들...(33) 이사벨 2세 : 페르난도 7세의 딸(두번째)




에스파냐의 이사벨 2세

 Isabel II 

(English: Isabella II; 10 October 1830 – 10 April 1904) 

1844년경


이사벨의 어머니인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1844년 남편과 함께 에스파냐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마도 이사벨이 어머니를 돌아오게 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붓아버지에게 많은 지위와 재산을 부여했는데 어머니를 위한 것으로 비록 많은 이들에게 비난 받았던 마리아 크리스티나이지만 이사벨은 어머니를 소중하게 생각했었을 듯합니다. 게다가 이사벨의 의붓아버지는 역시 친절하고 좋은 성품이라고 알려져있었기에 비록 여왕이었지만 어린시절 아버지를 잃었던 이사벨이 그를 아버지로 여기고 있었을듯합니다.


겨우 만 13살이었지만 이사벨이 성인으로 선포된 이상, 이제 이사벨은 남편감을 찾아야했습니다. 미혼의 여왕들에게 으례히 따라다니는 여러가지 소문들이 이사벨에게도 돌기 시작합니다. 여러가지 복합적 이유때문에 소문들이 퍼져나가게 되었는데 아마도 남편이 죽은지 일년도 되지 않아서 근위대 장교와 재혼해버린 어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행동 역시 이런 소문들을 퍼져나가는데 기여했을 것입니다.



이사벨 2세



이사벨의 결혼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에스파냐 여왕의 남편이라는 중요한 자리일뿐만 아니라 내전으로 문제가 되었던 에스파냐에 해결할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카를리스트 들은 이사벨이 사촌이자 몰리나 백작의 장남인 몬테몰린 백작 카를로스와 결혼하길 바랬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카를리스트들이 주장하는 계승권은 이어지질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결혼이 성사되었다면 이후 일어나는 카를리스트들의 내전또한 없었겠지만 이것은 성사되지 않습니다. 



이사벨의 사촌인 몬테몰린 백작 카를로스


또 이사벨과 그녀의 동생인 루이사 페르난다의 결혼문제는 외교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프랑스측이 이 에스파냐 여왕과 그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는 동생들에 대해서 접근을 합니다. 국왕 루이 필리프가 자신의 아들들을 신랑감 후보로 내세운 것이죠. 이렇게 되자 영국측은 프랑스측을 경계하면서 또 다른 신랑감을 내세우게 됩니다. 여왕과 앨버트 공의 사촌이었던 작센-코부르크-코하리의 레오폴트였습니다. 그의 형은 포르투갈 여왕의 남편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영향력을 서로 행사하려던 프랑스와 영국의 경쟁관계로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영국의 개입으로 인해서 안그래도 불안정한 에스파냐 정치 상황에 또 혼란스럽게 되었습니다. 결국 에스파냐쪽에서는 영국측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사벨은 사촌이자 이사벨의 즉위를 지지했던 측의 사람이었던 카디스 공작인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죠. 그러나 이사벨의 여동생인 루이사 페르난다는 루이 필리프의 아들인 몽팡시에 공작 앙투안과 결혼하기로 결정했었습니다.



이사벨의 제부, 몽팡시에 공작 앙투안


이사벨과 프란시스코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프란시스코가 동성연애자이거나 성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사벨 역시 남편과의 관계에 매우 불만스러웠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때문에 이사벨의 자녀들은 모두 남편의 자녀가 아니라 이사벨의 애인이었던 근위대 장교의 아이들이라는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실제로 이사벨의 후계자가 될 알폰소가 태어났을때, 카를리스트 측에서는 아이의 아버지가 프란시스코가 아니라 이사벨의 애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딸들의 이름에 다 마리아가 붙는 것 역시 아이들이 남편의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며, 막내딸인 마리아 아우랄리아 공주는 아예 대놓고 자신은 아버지의 친자식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이사벨의 남편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카디스 공작


만 13살에 성인으로 성포되었던 이사벨은 결국 13살부터 정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혼란한 에스파냐의 상황은 이사벨이 에스파냐에 군주로써 남아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딸인 이사벨과 함께 있는 이사벨 2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