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60) 나바라의 후아나 : 헨리 4세의 왕비 (세번째)

엘아라 2016. 2.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그냥 세개로 끝낼수 있겠습니다.-0-;;;

말많은 헨리 5세 왕비를 해야하니까요..ㅎㅎㅎㅎㅎ


잉글랜드의 왕비들...(60) 나바라의 후아나 : 헨리 4세의 왕비 (세번째)



나바라의 후아나

브르타뉴 공작부인

잉글랜드의 왕비

Joan of Navarre

Joanna of Navarre

(c. 1370 – 10 June 1437)

역시나 후대의 상상화



잉글랜드에 도착한뒤 후아나는 돈문제에 잠시 직면합니다. 그뒤로 다른 많은 외국인 왕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브르타뉴에서 데려갔던 사람들 대부분을 돌려보내야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아나는 자신의 의붓자녀들에게도 잘 했으며 자신의 친자식과도 친한 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 특히 후아나는 헨리 4세와 마찰을 빚던 헨리 4세의 장남이자 "프린스 할"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먼마우스의 헨리(헨리 5세)사이에서 자주 의붓아들의 편을 들어주고는 했었다고 합니다. 또 헨리 4세의 다른 자녀들과도 매우 다정한 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



헨리 4세



1413년 헨리 4세가 사망한뒤 헨리 5세가 즉위한 뒤에도 후아나는 잉글랜드에 남아있었습니다. 즉위 초기 헨리 5세는 새어머니인 후아나에게 호의적이었으며 그가 자리를 비울경우 후아나는 "섭정"으로써 잉글랜드를 통치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의 사이가 악화되면서 후아나와 헨리 5세의 사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후아나의 아들인 브르타뉴 공작과 그 동생들은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 있었습니다. 후아나의 며느리는 프랑스 공주였을뿐만 아니라 브르타뉴 공작 가문은 "리치몬드 백작"지위를 주장할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복잡한 상속관계로 브르타뉴 공작가문은 잉글랜드의 리치몬드 백작 지위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잉글랜드의 국왕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후아나의 아들인 아르투르가 프랑스쪽에 가담하는 원인이 되었을듯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헨리 5세가 새어머니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는 상황이 되었죠.


헨리 5세


후아나는 헨리 5세를 독살하기 위해서 마녀행위를 했다는 의심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1419년 죄수로 감금됩니다. 이 상황은 브르타뉴와 잉글랜드 사이를 벌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후아나의 아들인 브르타뉴 공작은 어머니가 홀대 받는것에 대해서 잉글랜드에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4년후 석방된 후아나는 노팅엄 궁전에서 조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석방된뒤 후아나는 연금을 제대로 받았고 이때문에 편안한 삶을 살수가 있었죠. 그녀는 헨리 5세와 헨리 6세의 통치기동안 조용히 살다가 1437년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두번째 남편인 헨리 4세 곁에 묻혀있습니다. 



헨리 4세와 나바라의 후아나의 무덤 조상


후아나와 헨리 4세 사이에는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둘다 첫번째 결혼으로 자녀들이 많이 있었죠. 후아나는 첫번째 남편인 브르타뉴 공작 사이에서 아홉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이중 일곱명이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후아나의 장남인 장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브르타뉴 공작이 되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잉글랜드 왕비인 어머니와 프랑스 공주인 아내의 관계처럼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를 오가면서 이익을 취하게 됩니다. 주로 잉글랜드측에 많이 서긴했지만 동생인 아르투르가 프랑스 측에서 싸우는것을 허락해주기도 했었죠.



후아나의 장남 브르타뉴 공작 장 5세와 프랑스의 공주 잔 드 발루아의 결혼식



후아나의 장녀인 마리는 알랑송 공작과 결혼했었습니다. 알랑송 공작은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프랑스 측에 섰으며 아쟁쿠르 전투때 전사했습니다. 마리의 아들인 알랑송 공작 장 2세는 잔 다르크의 후원자로 유명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후아나의 차녀인 마르거리트는 로한의 자작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후아나의 차남인 아르투르는 "리치몬드 백작"지위를 오래도록 주장했습니다.아마도 이때문에 그는 잉글랜드가 아닌 프랑스 측에 섰던듯합니다. 프랑스 측의 중요한 기사로 알려졌던 아르투르는 아쟁쿠르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으며 아마 이런 상황은 헨리 5세가 새어머니인 후아나를 의심하는 계기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조카들이 후계자 없이 죽은뒤 그는 브르타뉴 공작령을 상속받습니다만 그 역시 후계자 없이 사망합니다.



아르투르


후아나의 삼남인 리샤르는 에탕프 백작이 됩니다. 그 역시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 복잡한 관계에 놓여있었습니다. 리샤르의 아들인 프랑수아는 후계자없이 사망한 백부의 뒤를 이어 브르타뉴 공작이 됩니다만, 그 역시 남성 적자는 없었고 결국 안 드 브르타뉴가 브르타뉴 공작령의 상속녀로 프랑스 국왕과 결혼하므로써 브르타뉴 공작령은 프랑스 왕가에 편입되게 되죠.

후아나의 막내아이인 블랑쉬는 다르마냑 백작과 결혼합니다만 딸 한명을 두고 일찍 사망합니다.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앞쪽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