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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왕비들...번외편 8.메리 드 분 : 헨리 4세의 아내(세번째)
메리 드 분
메리 드 분과 헨리 4세 사이에는 적어도 일곱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중 첫아이를 제외한 여섯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었죠. (중세시대가 기록이 애매해서 애가 더 있을수도 있습니다.) 메리는 주로 남편 소유의 성이었던 먼마우스 성에서 지냈으며 이때문에 그녀의 아들이자 국왕이 되는 헨리 5세는 "먼마우스의 헨리"라고 불렸었죠.
장남이었던 에드워드는 1382년 4월에 태어났는데 이때 메리의 나이는 겨우 열네살이었죠. 아이는 며칠 살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아들인 헨리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왕 헨리 5세가 됩니다. 그는 어린시절 아버지가 망명해야했을때 리처드 2세의 궁정에서 지냈었습니다. 이때문에 헨리 5세는 리처드 2세에 대해서 좀더 동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훗날 아버지 헨리 4세와 정치적 문제로 마찰을 빚을때 이런 어린시절의 경험이 어쩌면 조금을 영향을 미쳤을수도 있을듯합니다. 헨리 5세는 뛰어난 군인으로 프랑스와의 전쟁을 거의 승리로 이끌었다고 할수 있었죠.
헨리 5세
셋째는 아들인 토마스로 후에 클라렌스 공작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재미난것은 토마스는 숙부였던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의 과부였던 마거릿 홀랜드와 결혼했었습니다. 마거릿 홀랜드는 토마스와 결혼할때 여섯아이의 어머니였었습니다. 이때문에 토마스는 아내의 첫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여섯아이들을 보호하게 됩니다.
아내와의 사이에서는 아이를 얻지 못했지만 사생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100년전쟁중 보제 전투에서 사촌이자 의붓아들이었던 서머셋 공작과 사촌이었던 엑서터 공작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지만 결국 보제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서머셋 공작(헨리 7세의 외할아버지)는 오래도록 프랑스에 포로로 잡혀있게 됩니다.
토마스의 문장
넷째는 아들인 존으로 베드퍼드 공작이 되죠. 그는 후에 동생인 험프리와 함께 조카인 헨리 6세의 섭정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는 잔다르크의 처형등을 주도했었다고 합니다. 존은 부르고뉴 공작이었던 용맹공 장의 딸인 부르고뉴의 안과 결혼했습니다. 둘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지만 아이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안은 흑사병으로 사망하죠. 안이 사망한후 존은 룩셈부르크의 자퀘타와 재혼합니다만 재혼 얼마뒤에 그는 사망하죠. 그리고 그의 아내인 자퀘타는 잉글랜드로 가던 도중 남편의 기사의 아들이었던 리처드 우드빌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고 자퀘타의 딸이 바로 에드워드 4세의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이죠.
베드퍼드 공작 존
다섯째는 아들인 험프리로 후에 글로스터 공작이 됩니다. 험프리라는 이름은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험프리 역시 기사 작위를 받긴 했지만 군인으로 용맹했던 형들과는 달리 좀더 학자풍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형들이 다 전쟁터에 있는 동안 그는 학자로 교육받았었죠. 그는 에노의 자퀘린과 스캔들을 일으킨것이 매우 유명했습니다. 자퀘린은 상속문제때문에 매우 복잡한 상황이었는데 이때문에 잉글랜드 궁정으로 피난와있었죠. 이때 험프리는 그녀에게 반했는데 문제는 자퀘린은 브라반트 공작과 결혼한 상태였고 결혼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둘은 결혼이 무효가 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험프리는 정부였던 여성과 재혼합니다.
여섯째는 딸인 블랜치입니다. 헨리 4세는 왕위를 얻은뒤 유럽의 동맹들을 구합니다. 그는 팔츠의 선제후이자 독일의 국왕이었던 루프레히트와 동맹을 맺어서 그의 장남인 루드비히와 자신의 딸인 블랜치를 결혼시켰죠. 이 결혼때 블랜치는 "팔츠의 왕관"이라고 불리게 되는 블랜치 공주의 왕관을 혼수로 해갔으며 이 왕관은 이후 비텔스바흐 가문에 내려져오게 됩니다. 정략결혼이었지만 블랜치와 루드비히의 결혼은 행복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블랜치는 루드비히와의 사이에서 두명의 아이를 낳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 사망했습니다.
두 아내와 함께있는 루드비히
가운데 여성이 블랜치일듯합니다.그 옆은 루드비히의 두번째 아내인 사보이의 마틸다
막내는 딸인 필리파입니다. 헨리 4세는 칼마르 동맹의 연합군주였던 마르그레테 1세와 동맹을 맺으면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와 마르그레테의 후계자의 누이와 결혼을 추진합니다. 하지만 마르그레테는 잉글랜드 상황때문에 이 결혼을 찬성하지 않았고 이때문에 반대로 헨리 4세의 딸인 필리파가 칼마르 동맹의 군주가 될 포메른의 에릭과 결혼하게 되었죠. 필리파는 왕비로 남편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했었다고 합니다.
에릭과 필리파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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