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이자벨의 어머니인 바이에른의 이자보에 대해서 좀 읽었는데 요즘 평가는 옛날의 평가와는 좀 다른듯하네요. 예전 평가는 거의 프랑스를 잉글랜드에 팔아먹은 아줌마 쯤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는 않은듯해요. 그냥 "워낙 불운했다"정도로 묘사되는듯하네요.
이자보는 보면 남편은 미쳤고 (의처증도 좀 의심이 된다죠.) 아들들은 어린데 잉글랜드와 전쟁중이고 전쟁도 또 잘 안풀리고 게다가 정적들은 어떻게든 자길 깍아내릴려고 기를 쓰고......
불운한 사람이 있죠-0-;;;;;
잉글랜드의 왕비들...(57) 이자벨 드 발루아 : 리처드 2세의 왕비(두번째)
이자벨 드 발루아
잉글랜드의 이사벨라 왕비
Isabella of France
(9 November 1389 – 13 September 1409)
후대 상상화
아마도 샤를 6세의 광기는 심해졌고 섭정이었던 이자보 왕비는 일단 잉글랜드와의 평화 조약을 먼저 체결하는것이 중요할것으로 여겼던듯합니다. 결국 1396년 7살의 이자벨은 29살의 홀아비였던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2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했으며 리처드는 전처를 무척 사랑했었고 이자벨은 겨우 일곱살밖에 안된 어린 아이였기에 결혼생활이 그다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리처드는 어린 이자벨을 아내라기 보다는 자신의 보호아래 있는 어린아이로 여겼을 가능성이 더 커보입니다. 그녀가 성인으로 인정받을 나이가 될때까지는 어떻게 할수도 없었을테니까요. 이런 관계는 둘이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리처드 2세와 이자벨 드 발루아
하지만 이자벨과 리처드의 관계는 불행하게 끝나게 됩니다. 이자벨이 10살때는 1399년 리처드 2세는 사촌인 볼링블룩의 헨리에게 패배해서 퇴위당한채 죽음을 맞이했었죠. 이자벨은 남편이 죽은뒤 새 국왕인 헨리 4세에 의해서 연금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헨리 4세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자벨을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먼마우스의 헨리(헨리 5세)와 결혼시키려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자벨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남편의 상복을 입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자벨은 프랑스로 돌아가게 됩니다.
프랑스로 돌아간 이자벨은 1406년 사촌이었던 오를레앙 공작의 아들인 샤를과 결혼합니다. 이자벨의 시아버지인 오를레앙 공작 루이는 이자벨의 숙부이자 이자벨의 어머니였던 이자보의 정치적 동맹이었죠. (때때로 오를레앙 공작이 이자보의 애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두 가문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을드합니다.
이자벨의 두번째 남편
샤를 도를레앙, 오를레앙 공작
이자벨은 1409년 19살의 나이로 아이를 낳다가 사망합니다. 이자벨의 딸인 잔은 후에 알랑송 공작과 결혼했지만 자녀없이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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