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번외편 7.메리 드 분 : 헨리 4세의 아내(두번째)

엘아라 2016. 1. 2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초상화가 없어요..ㅠ.ㅠ

같은 그림 써야할판이예요..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번외편 7.메리 드 분 : 헨리 4세의 아내(두번째)



메리 드 분

더비 백작부인

Mary de Bohun 

(c. 1368 – 4 June 1394) 


메리의 남편인 볼링블룩의 헨리는 랭카스터 공작이었던 곤트의 존과 그의 첫번째 아내였던 랭카스터의 블랑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 역시 랭카스터 공작의 상속녀였으며 언니가 자녀없이 죽음으로써 단독으로 랭카스터 공작령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던 것이죠. 그녀는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었던 곤트의 존과 결혼했고 에드워드 3세는 아들에게 "랭카스터 공작"지위를 부여하므로써 웨일즈공인 장남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만들었었죠.



랭카스터 공작 

메리의 시아버지


볼링블룩 성에서 태어났기에 볼링블룩의 헨리라고 불린 헨리는 랭카스터 공작의 장남으로 랭카스터 공작령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기사이자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헨리는 "더비 백작"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메리는 남편의 칭호에 따라 "더비 백작부인"이라고 불렸죠.


메리는 14살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메리의 남편인 헨리는 아내를 찾아갔었던듯합니다. 왜냐면 메리가 14살이 되던 1382년 초에 이미 그녀는 임신중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4월에 태어난 메리의 아들은 얼마 살지 못했고 헨리는 첫아이의 죽음에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메리의 시아버지인 랭카스터 공작은 아들부부가 좀더 나이가 들었을때 아이를 갖길 바랬었던듯합니다. 메리와 헨리 사이에서 첫아이가 태어난 뒤 4년후에야 둘째아이가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메리는 헨리의 성이었던 먼마우스성으로 옮겨가서 살게 됩니다. 메리는 이때 자신의 식솔로 랭카스터 공작의 정부였던 캐서린 스윈포드와 그녀의 딸이자 남편의 이복여동생인 조앤 보퍼트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때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 스윈포드는 헤어진 상태였었는데 메리의 남편이었던 헨리는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돌봐왔었던 캐서린 스윈포드에 대해서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아마도 캐서린을 자신에 고용했었던듯합니다.



먼마우스 성 ,19세기


메리는 더비 백작부인으로 식솔을 다스리면서 조용히 살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캐서린 스윈포드와 그녀의 딸을 식솔로 받아들인 것은 어쩌면 남편은 물론 캐서린에 대한 시아버지의 애정을 알았기 때문일듯합니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캐서린 스윈포드의 친구이기도 했었죠. 


메리는 1386년 아들인 헨리를 낳은것을 시작으로 1394년 막내인 필리파를 낳은것까지 모두 여섯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1394년 막내인 필리파를 낳은뒤 메리는 사망하는데 아마도 산욕열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앞쪽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