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55) 보헤미아의 안나 : 리처드 2세의 왕비(세번째)

엘아라 2015. 12. 1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행복한 부부는 왜이리 일찍 죽는거랩니까..

하긴 부인이나 남편이 행복할때 죽어서 행복한 부부로 남는걸수도 있다는 슬픈 생각이 드네요-0-;;;;


잉글랜드의 왕비들...(55) 보헤미아의 안나 : 리처드 2세의 왕비(세번째)




보헤미아의 안나

잉글랜드의  앤 왕비

Anne of Bohemia 

(11 May 1366 – 7 June 1394)

후대 상상화



이제 잉글랜드에서 앤 왕비로 더 잘알려지게 될 안나는 아마도 처음에는 잉글랜드에서의 삶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것입니다. 그녀와 리처드의 결혼은 의회나 귀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결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잉글랜드에서 사랑받는 왕비가 됩니다.


앤이 사랑받는 왕비가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기때문입니다. 앤은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힘썼었으며 가난하고 병든사람들을 위해 자선사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었죠. 앤은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구명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었습니다. 그녀가 외국인 왕비였던것을 생각해보면 그녀의 행동은 많은 이들이 칭송하는 일이 되었으며 앤에게 비판적인 연대기 작가들조차도 앤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기록할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앤은 점차 사랑받는 왕비가 되었으며 "Good Queen Anne"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국왕에게 자비를 간구하는 앤 왕비

(후대 삽화)


앤과 리처드 2세는 결혼 12년간을 보냈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중세시대 왕비로써 아이가 없는것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중요한 문제였었죠. 이때문에 앤은 늘 임신한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친절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아이를 갖길 원했기 때문이었을 듯합니다. 하지만 앤의 평판은 그녀가 임신하지 못한것과는 상관이 없었죠.


앤과 리처드의 관계는 처음부터 매우 좋았다고 여겨집니다. 앤은 리처드보다 한살정도밖에 많지 않았으며 아름답고 똑똑하며 자비심 강한 성품에 중재자 역할마저 잘하는 앤에 대해서 리처드는 점차 애정을 더 키워나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리처드 역시 유명한 플랜태저넛 가문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불같은 성미를 누그러뜨릴수 있었던 사람이 앤이었다고 합니다. 

리처드는 앤에 대해서 애정을 숨기지 않았는데 이를테면 장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장모인 포메른의 엘리자베트를 "내 사랑하는 이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결혼 생활은 결혼 12년후인 1394년 끝나게 됩니다. 앤은 27살의 나이로 흑사병으로 사망하게 되죠. 앤의 죽음은 리처드 2세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많은 기록에서 그가 매우 큰 슬픔에 빠졌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앤 왕비의 죽음


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는데 리처드는 아내와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에는 리처드와 앤의 사실적 조상이 묘사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곁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처음에는 그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것처럼 보였습니다. 왜냐면 사촌이었던 볼링블룩의 헨리(헨리4세)에게 왕위를 뺏겼기 때문이죠. 하지만 헨리의 아들이었던 먼마우스의 헨리(헨리 5세)는 정치적 문제때문에 리처드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장하기로 결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헨리 5세는 아버지가 망명해있는동안 리처드의 궁정에서 자라났기에, 리처드가 사랑했던 아내 곁에 묻히길 원했던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리처드는 사랑하는 앤의 곁에 묻히게 됩니다.



앤과 리처드의 무덤 에픽


자료출처

1.http://www.triviumpublishing.com/articles/richard_ii_anne_bohemia.html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