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엉엉엉..이번달은 그냥 망했어요..
이렇게 허덕거리면서 글써보긴 첨입니다.-0-;;;;;;;
벌써 새해 특집을 구상해야하는 시기인데 뭐해야할지 책도 안 읽었고 말입니다.ㅠ.ㅠ
지금 있는 책중 하나를 찍으려고 하는데, 마리 에르바흐,제니제롬,러시아쪽(미헨대공비,올가왕비,마리야 황후,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이렇게 책이 있군요. 아 베아트리스 공주도 있긴하네요-0-;;;
개인적으로는 마리 에르바흐 하고 싶긴한데 책을 안 읽어서 말입니다. ㅠ.ㅠ 아니면 대충이라도 다 읽은 베아트리스 공주 이야기할수도 있어요.-0-;;;
잉글랜드의 왕비들...번외편 5. 켄트의 조앤 :리처드 2세의 어머니(세번째)
켄트의 조앤
켄트의 여백작 리델의 웨이크 여남작
웨일즈 공비
Joan of Kent
4th Countess of Kent,
5th Baroness Wake of Liddell
(19 September 1328 – 7 August 1385)
아들인 앙굴렘 공작 에드워드와 함께 있는 모습
조앤의 남편인 토마스 홀랜드는 1360년 사망한뒤 조앤은 바로 웨일즈공 에드워드와 바로 염문을 뿌리게 됩니다. 훗날 "흑태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에드워드는 조앤보다 두살 아래로 어려서부터 필리파 왕비가 후견인이었던 조앤을 잘 알았을것입니다. 아마도 조앤이 너무 일찍 결혼했기에 그는 이 아름다운 오촌과 결혼할만한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조앤을 아마도 자신의 레이디라고 여겼었던듯합니다.
아버지 에드워드 3세와 함께 있는 흑태자
30살이 되도록 웨일즈 공은 결혼하지 않았고 조앤이 과부가 되자 그녀와 결혼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조앤과의 결혼에 대해서 에드워드 3세와 필리파 왕비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조앤의 이전 스캔들 때문이었습니다. 조앤의 또다른 남편이었던 샐리스버리 백작은 그때까지 생존해 있었기에 교황의 결혼무효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토마스 홀랜드가 죽고 난뒤 조앤의 상황에 대해서 문제가 될수 있었죠.
비록 이런 문제가 있었지만, 웨일즈공은 토마스 홀랜드가 죽자마자 조앤과 비밀결혼을 했었던듯합니다. 결국 아들이 조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안 에드워드 3세는 교황에게 둘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고 결국 교황의 허락이 떨어진뒤, 1361년 10월 조앤은 웨일즈공과 정식으로 결혼해서 웨일즈 공비가 됩니다.
결혼후 조앤은 남편인 웨일즈 공을 따라 프랑스로 가게 됩니다. 웨일즈 공은 당시 아키텐을 통치하게 되었으며 조앤은 남편과 함께 보르도에서 살게 되죠. 이곳에서 조앤은 두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장남은 에드워드로 여섯살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둘째가 바로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 국왕이 되는 리처드였죠.
1371년 조앤은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잉글랜드로 돌아오게 됩니다. 웨일즈 공의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었기에 프랑스에 있는것보다 잉글랜드로 돌아가는 편이 나았기 때문입니다. 이 직전 조앤과 웨일즈 공의 장남이었던 아키텐 공작 에드워드가 사망합니다. 조앤과 웨일즈공은 아들의 죽음에 매우 슬퍼했었는데 아들의 죽음은 안그래도 건강이 악화되어가던 웨일즈 공에게 치명적이었을 듯합니다. 결국 웨일즈공은 1376년 사망했으며 조앤은 두번째로 과부가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죽은 일년뒤 시아버지인 에드워드 3세가 사망했고 1377년 조앤의 아들인 리처드가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2세가 되죠.
리처드 2세
리처드 2세가 즉위한 직후 잉글랜드는 매우 혼란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3세 치세 말기에 누적된 불만이 터져나왔으며 이때문에 "와트 타일러의 난"과 같은 일련의 농민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왕의 어머니이자 사랑받는 왕족으로써의 자신의 지위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와트 타일러의 난 시기에 다른 왕족들은 매우 큰 피해를 입었지만, 조앤이 이들과 맞닥들였을때 이들은 조앤에게 축복을 구하면서 그녀를 무사히 보내주기도 했었습니다.(주요한 타켓이었던 랭카스터 공작의 경우 피해가 막심했는데 공작의 사보이 궁이 파괴되었고 그의 가족들 역시 폭도들을 피해 간신히 도망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행복한 삶은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식들이 속썩이게 되죠. 조앤의 첫번째 결혼으로 태어난 아들인 존 홀랜드(후에 엑서터 공작)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중 스탯포드 백작의 장남인 랄프 스탯포드와 불화했고 결국 그를 살해합니다. 그는 랄프 스탯포드를 살해한뒤 성역권으로 도망가서 숨었습니다.
스탯포드 백작은 국왕에게 존 홀랜드의 죽음을 요구했는데 조앤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국왕에게 탄원을 합니다.
1385년 아들을 위해 탄원하던 조앤은 결국 사망했으며 그녀가 죽은 직후 존 홀랜드는 풀려났지만 속죄를 위해 성지 순례를 떠나야했었다고 합니다.
조앤은 유언에 따라 첫번째 남편이었던 토마스 홀랜드 곁에 묻혔습니다.
조앤은 토마스 홀랜드와의 사이에서 다섯명의 아이를 낳았고 흑태자 에드워드와의 사이에서 두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중 흑태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리처드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2세가 되죠.
토마스 홀랜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중 장남인 토마스 홀랜드는 어머니의 지위를 이어받아 켄트 백작이 돕니다. 그의 딸중 한명이었던 레이디 마거릿 홀랜드는 서머셋 백작이자 랭카스터 공작의 아들이었던 존 보퍼트와 결혼했고 마거릿 홀랜드의 손녀가 헨리 7세의 어머니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였습니다.
차남인 존 홀랜드는 어머니를 그렇게 속썩였지만 돌아온뒤 동생인 리처드 2세를 위해 충성했었습니다.그의 아내는 헨리 4세의 누나인 랭카스터의 엘리자베스 였지만 그는 리처드 2세를 복위시키려다 실패해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셋째아들인 에드먼드 홀랜드는 어린시절 사망했다고 합니다.
딸인 조앤 홀랜드는 브르타뉴 공작부인이 되었으며 또다른 딸인 모드 홀랜드는 데본 백작의 후계자였던 휴 코트니와 결혼했다가 남편이 죽은뒤 리뉴백작과 재혼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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