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53) 보헤미아의 안나 : 리처드 2세의 왕비(첫번째)

엘아라 2015. 12.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슬슬 복잡한 장미전쟁시기까지 오는군요.

그리고 잉글랜드 왕비들 이야기도 얼마남지 않았네요..

이제 노르망디 가문 이전의 왕비들 이야기를 해야할지 스코틀랜드로 가야할지 고민해야할 시기군요-0-;;;


잉글랜드의 왕비들...(53) 보헤미아의 안나 : 리처드 2세의 왕비(첫번째)



보헤미아의 안나

잉글랜드의 앤 왕비

Anne of Bohemia 

(11 May 1366 – 7 June 1394)


리처드 2세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보헤미아의 안나는 1366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4세와 그의 네번째 아내인 포메른의 엘리자베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4세는 룩셈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룩셈부르크 백작이었던 요한이었고 어머니는 보헤미아의 공주였던 엘리자베트입니다. 둘이 결혼할 당시 보헤미아 왕위 계승 문제가 있었으며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던 엘리자베트와 요한이 결혼하므로써 카를 4세의 아버지였던 요한이 보헤미아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카를 4세는 원래 보헤미아 식으로 "바츨라프"라는 이름으로 보헤미아 왕위계승자였습니다만 어려고 고모부였던 프랑스의 샤를 4세 궁정에 보내졌었고 후에 죽위할때 자신의 이름을 고모부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안나의 아버지

황제 카를 4세


안나의 어머니였던 포메른의 엘리자베트는 포메른 공작이었던 보기슬라우 5세와 그의 부인이었던 폴란드의 엘리자베트의 딸이었습니다. 

카를 4세와 포메른의 엘리자베트는 무려 30살 이상 차이가 났으며 엘리자베트는 황제의 네번째 아내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둘의 결혼이 정치적 목적때문이었습니다. 카를 4세는 오스트리아 공작이자 사위였던 루돌프 4세를 견제하기 위한 세력이 필요했으며 이때문에 엘리자베트와 결혼한것이었죠.



안나의 어머니

포메른의 엘리자베트


카를 4세는 네번 결혼했고 엘리자베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큰딸이 안나였지만 이전 결혼으로 여러명의 자녀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엘리자베트의 언니이었던 마르가레테는 헝가리 왕비가 되었고, 또다른 언니인 카타리나는 오스트리아의 공작이자 합스부르크가문이 독일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도록 발판을 닦았던 루돌프 4세의 아내이기도 했었습니다. 오빠였던 바츨라프4세(벤첼)는 독일 국왕이 되었지만 복잡한 정치적 문제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는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안나의 동생인 지그문트는 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죠.



안나의 이복오빠

바츨라프


안나의 부모는 나이차가 많이 나고 정략결혼이었지만 사이가 좋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정치적 영향력은 크지 않았었으며 자신의 아들들에게 영지를 물려주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영지의 대부분은 전처의 아들이었던 바츨라프에게 돌아가게 되죠.


안나는 아마도 중세시대 전통적 여성들처럼 성장했을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정치적 목적으로 여러번 혼담이 진행되기도 하죠. 카를 4세는 딸을 비텔스바흐 가문이나 마이에센 공작이나 튀링겐의 란트그라프 등에게 시집보내려했었습니다만 이 혼담들은 성사되지 못하고 안나가 12살때 그녀의 아버지인 카를 4세가 사망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기전 이미 진행되던 복잡한 정치적 문제는 안나를 잉글랜드 왕비가 되게 만들었었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