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61) 카트린 드 발루아 : 헨리 5세의 왕비(첫번째)

엘아라 2016. 3.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카트린 드 발루아를 하는군요.

카트린 드 발루아 다음이 할것 많은 앙주의 마거릿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프랑스 공주들은 주로 "어디의 누구"라고 안쓰고 그냥 프랑스 식으로 쓴것같군요.

왜지? 라고 고민했는데 그게 더 익숙해서 그런듯해요.-0-;;;


잉글랜드의 왕비들...(61) 카트린 드 발루아 : 헨리 5세의 왕비(첫번째)



카트린 드 발루아

잉글랜드의 캐서린 왕비

Catherine of Valois 

(27 October 1401 – 3 January 1437

상상화


헨리 5세의 왕비이자 헨리 6세의 어머니이며, 후에 튜더 왕가의 조상이 되는 카트린 드 발루아는 프랑스의 국왕 샤를 6세와 그의 부인인 바이에른의 이자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카트린의 아버지였던 샤를 6세는 어려운 상황에서 국왕이 되었으며 평생 정신병에 시달린 인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의 정신적 문제는 아마도 가계의 유전이었다고 추정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인 이자보는 남편이 폭력적 성향으로 변하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이때문에 국왕이 정부와 함께 있는 것을 용납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샤를 6세


카트린의 어머니인 바이에른의 이자보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남편을 대신해서 국정에 관여하게 됩니다. 아마도 여성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이자보의 평가는 오래도록 나빴었습니다. 그녀의 이미지는 뭐랄까 "권력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것같은"인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남편의 병 때문에 왕비의 의무중 하나인 섭정 권한을 행사했다고 생각할수 있을것입니다. 문제는 이자보의 상황이 나빴다는 것이죠. 신하들과의 마찰, 잉글랜드의 침공 등등에 대해 이자보의 정책은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고 이런 상황은 그녀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궁정여성들과 함께 있는 이자보

(그림 설명이 프랑스어라 뭔지 모르겠어요-0-)


이자보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자주 언급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이자보가 아이들이 어렸을때는 매우 가깝게 아이들을 돌봤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행때 늘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아이들에게 선물도 자주 줬으며,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아이들의 교육에도 신경썼다고 추정합니다. 특히 딸들의 교육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당대에는 왕가의 여성들이라도 읽고 쓰는 교육을 못받는 경우가 많았었기에 딸들에 대한 교육은 특별히 아이들에 신경쓰는 부모들이나 해주는 일이 었었죠.-0-;;;


카트린의 큰언니인 이자벨 드 발루아는 카트린 보다 12살 정도 더 많았는데, 그녀는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리처드 2세의 왕비이기도 했었습니다. 리처드 2세를 몰아내고 국왕이 된 헨리 4세는 프랑스와의 동맹을 원했고 프랑스 공주와 자신의 아들을 결혼시키길 바랬다고 합니다. 그리고 첫번째로 고려한 인물이 바로 이자벨 드 발루아였습니다. 잉글랜드에 있었던 이자벨과 헨리 4세의 장남인 먼마우스의 헨리를 결혼시키려했지만 이자벨이 이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리처드 2세와 카트린의 언니 이자벨 드 발루아


이후 헨리 4세는 다시 며느리 감으로 프랑스 공주를 원했으며 카트린 드 발루아와 장남의 혼담을 추진하려했었습니다만, 헨리 4세는 혼담을 시작하기 전에 사망했었습니다.


카트린은 자매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자보는 딸들을 수녀원으로 보내서 교육시켰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혼란스러운 프랑스 상황에서 딸들을 멀리 보냈던것일수 있습니다. 특히 이자보는 딸인 마리를 수녀로 살도록 했는데 중세시대 많은 가문에서 딸들중 한명을 자주 수녀로 살도록 했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듯합니다. 이자보의 경우 남편의 병이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여겼으며 딸들중 한명을 수녀원에 보내서 하느님을 섬기도록 했었던듯합니다.


카트린이 다시 궁정으로 오게 된것은 잉글랜드 국왕과의 혼담 때문이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