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50) 에노의 필리파 : 에드워드 3세의 왕비(세번째)

엘아라 2015. 10. 2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책을 찾았는데 읽기가 싫어요..-0-;;;


잉글랜드의 왕비들...(50) 에노의 필리파 : 에드워드 3세의 왕비(세번째)



에노의 필리파

잉글랜드의 왕비

Philippa of Hainault 

(24 June 1314 – 15 August 1369)


필리파의 삶이 바뀐것은 1330년입니다. 필리파는 1329년 임신을 하게 되죠. 첫아이를 낳을것이 예상되었으며 이런 상황은 아마도 필리파가 드디어 왕비로 대관하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1330년 3월 임신 후반기였던 필리파는 잉글랜드의 왕비로 대관하죠. 그리고 6월달 첫 아이이자 아들인 에드워드를 낳습니다.

필리파의 첫아들은 가문의 이름대로 잘생긴 가문의 외모를 그대로 이어받은 아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인 후계자를 낳을데다가 그 아이가 건강하고 잘생긴 아들이었기에 필리파는 물론 국왕과 전 잉글랜드가 기뻐했다고 합니다.



필리파


이후 필리파의 삶은 더 좋아지게 됩니다. 바로 필리파의 시어머니인 이사벨라 왕비가 권력을 내려놓게 되었기 때문이었죠. 필리파의 남편인 에드워드 3세는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이사벨라와 로저 모티머의 관계가 심각해지고 로저 모티머의 권력이 강해지자 결국 어머니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장악합니다. 아마도 이사벨라 왕비의 추문이 심각하게 돌았기에 더이상 놔둔다면 반란의 명분이 될 가능성도 컸기에 결정한 일이었을듯합니다. 로저 모티머는 처형당했고 이사벨라 왕비는 궁정에서 은퇴했죠. 물론 에드워드 3세와 필리파 왕비는 이사벨라 왕비를 궁정행사나 종교행사등에 빠지지 않고 초대했습니다만, 실권은 이제 에드워드에게 있었으며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아내이자 후계자의 어머니인 필리파에게 재산등을 부여합니다.

다음해에 필리파는 자신의 지참금에 대한 권리를 되찾았을뿐만 아니라 남편이 내려주는 많은 재산도 받게 됩니다. 


로저 모티머의 체포

후대의 그림


필리파는 왕비로써 매우 이상적인 여성으로 묘사됩니다. 그녀는 다른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보다 훨씬 더 자애로웠으며 친절한 성품이었죠. 또 남편에게 매우 헌신적인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왕비의 모습은 아마도 당대 사람들, 특히 정치적 야망이 컸던 이사벨라 왕비를 기억하고 있던 많은 이들에게 호의적인 모습으로 비춰졌을듯합니다.


필리파는 사랑받던 많은 아내들처럼 남편이 전쟁에 나갈때마다 따라갔었습니다. 사실 현재도 그렇지만 중세시대의 전장은 비전투요원인 여성들이 지내기에는 매우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국왕이 이런 곳까지도 아내를 데려가고 왕비 역시 남편을 따라간다는 것은 둘이 서로를 매우 아끼기 때문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이런 상황은 필리파가 전장에서도 매우 자비로운 인물이었다는 이야기를 퍼지게 만듭니다. "칼레의 시민"이라는 로댕의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건인 1346년 칼레 함락과 필리파가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죠.  칼레는 프랑스 국왕에 충성스러웠으며 에드워드에 저항했는데, 필리프 6세는 칼레를 구하는데 실패했고 결국 칼레는 잉글랜드에 항복해야했죠. 이때 에드워드는 도시 시민 여섯명이 목에 밧줄을 걸고 목숨을 구걸한다면 모두를 살려주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여섯명의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나왔죠. 에드워드는 이들을 처형하려했지만 임신중이었던 필리파 왕비가 자신의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 이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이들은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칼레 주민들을 위해 국왕에게 청원을 하는 필리파 왕비



필리파는 당대 매우 교양있는 인물이었으며 또 자비심이 많은 여성이었죠. 이런 상황은 그녀가 주인이었던 잉글랜드 궁정을 매우 화려하고 교양있는 곳으로 만들었으며 많은 자선 사업을 하게 했습니다. 여러 연대기 작가들이 필리파의 궁정에 있었으며 또 이들을 후원했었죠. 이런 상황은 필리파의 자녀들에게도 이어지는데 이때문에 연대기작가들이 필리파에게 호의적인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궁정의 패션을 주도하게 했으며 화려한 장식의 가구나 침구류를 사용해서 매우 세련된 모습을 보이게 했습니다.  또 병자들을 위한 병원등을 설립하고 교회를 짓는등의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필리파를 기리기 위한 여러것들이 남아있는데 가장 대표적인것이 바로 옥스퍼드의 퀸스칼리지입니다. 퀸스칼리지는 1341년 필리파의 시종무관이었던 로버트 드 에겔스펠트에 의해서 건립되었는데 왕비였던 필리파를 기념하기 위해 "Queen's College"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앞의 책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