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51) 에노의 필리파 : 에드워드 3세의 왕비(네번째)

엘아라 2015. 10. 2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책 읽기 싫습니다..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51) 에노의 필리파 : 에드워드 3세의 왕비(네번째)




에노의 필리파

잉글랜드의 왕비

Philippa of Hainault 

(24 June 1314 – 15 August 1369)

역시 후대의 상상화


잉글랜드에서 필리파는 왕비로써 매우 모범적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술과 학문을 후원했으며 연대기 저자들을 후원했고 신앙심도 깊어서 여러 건물들을 교회에 기부하기도 했었죠. 그리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궁정을 주도해나갔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남편과 함께 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녀는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치중합니다. 에드워드 3세와 필리파 사이에서는 25년동안 14명의 아이가 태어났죠.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고 또 다른 귀족들의 아이들의 후원자가 되는 것이 왕비로써 필리파의 중요한 의무중 하나였습니다.



배를 타고 있는 필리파 왕비

캐노피 아래의 여성이 필리파 왕비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속담처럼 많은 아이들은 필리파에게 기쁨이 되기도 했지만 근심이 되기도 합니다. 열네명의 아이들중 다섯명의 아이가 유아기를 넘기지 못합니다. 또 에드워드 3세가 사랑했던 딸인 조앤이 카스티야의 왕위계승자와 결혼하러 가던 도중 흑사병으로 사망하죠. 필리파가 딸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슬픔을 느꼈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만, 적어도 남편이 느낀 슬픔만큼은 그녀 역시 느꼈을것입니다. 게다가 두딸인 메리와 마거릿이 결혼한 뒤에 같은해에 어머니보다 먼저 사망했으며 필리파가 가장 사랑한 아들이었던 클라렌스 공작인 앤트워프의 라이오넬 역시 필리파보다 먼저 사망했었죠. 필리파는 흑사병 시기도 견뎠었지만 이런 자녀들의 죽음은 아마도 그녀에게 큰 충격이 되었을듯합니다.



앤트워프의 라이오넬의 문장


또 자녀들의 결혼 문제 역시 필리파를 머리아프게 합니다. 필리파의 장녀이자 에드워드 3세가 아꼈던 딸인 이사벨라는 오래도록 궁정에 남아서 스캔들을 만들었었습니다. 잉글랜드 국왕의 장녀이며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받았으며 아름답기까지 했던 이사벨라는 많은 구혼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결혼을 결정한뒤에 결혼 직전에 파혼하는 등의 일을 벌리게 되죠. 이런 상황은 중세시대 여성들의 상황으로는 매우 큰 스캔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궁정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오래도록 결혼을 미룹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결혼하기 힘든 나이라고 여겨지던 32살의 나이로 젊고 잘생긴 "꾸시의 영주"에게 반해서 결국 그와 결혼을 하죠. 



또 다른 문제는 장남인 웨일즈 공 에드워드였습니다. 그 역시 오래도록 결혼하지 않았는데 사랑하는 여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바로 친척이었던 켄트 백작령의 상속녀인 켄트의 조앤이었습니다. 켄트의 조앤은 에드워드 3세의 숙부였던 켄트 백작 에드먼드의 딸이었는데, 조앤은 이미 결혼문제때문에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킨 상황이었습니다. 그녀는 기사였던 토마스 홀랜드와 비밀결혼했었는데 그 사실을 숨긴채 샐리스버리 백작과 결혼했었죠. 후에 토마스 홀랜드가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뒤 자신이 조앤과 결혼한 사실을 밝히고 교황에게 호소하게 됩니다. 게다가 조앤 역시 샐리스버리 백작이 아니라 토마스 홀랜드를 택하므로써 큰 스캔들을 일으켰던 것이죠. 1360년 조앤의 남편인 토마스 홀랜드가 죽고 난뒤 웨일즈공은 이 말많은 켄트의 조앤과 결혼하고 싶어합니다. 필리파와 에드워드 3세는 이 결혼이 탐탁치 않았지만 아마도 이미 30살을 넘긴 아들이 오직 결혼하고 싶어하는 여성이 조앤이었기에 결혼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켄트의 여백작 조앤

웨일즈 공비


물론 속만 썩은것은 아니었는데 이를테면 앤트워프의 라이오넬은 얼스터 백작의 상속녀였던  엘리자베스 드 버그와 결혼했었으며, 곤트의 존은 잉글랜드 최고의 상속녀였던 랭카스터의 블랜치와 결혼하므로써 "랭카스터 가문"의 시조가 되기도 하죠. 


열네명의 아이를 낳았고 흑사병 시기도 견뎠던 필리파는 나이가 들면서 수족의 부종이 점점 심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건강이 점차 나빠지게 되죠. 많은 자녀들이 죽었을때도 견뎠었던 필리파였지만 아마도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앤트워프의 라이오넬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는지 그가 죽은 다음해인 1369년 55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녀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으며 남편인 에드워드 3세 역시 죽은뒤 아내 곁에 묻힙다.



필리파의 묘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