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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1) 들어가면서

엘아라 2015. 10.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을 3년정도 했었네요.

100명정도 되는것같은데 솔직히 저도 다 기억이 안나드랩니다.--;;;


어쨌든 대충 정리하고 나니 어딜할까 고민이었는데 먼저 프리드리히 3세 이전의 합스부르크가문으로 갈려니 아시다시피 중세는 여성들이 자료가 없어서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다음으로 프랑스를 할려니 이 프랑스가 워낙 오래된 나라다 보니 또 여성들 자료가 없는 시기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서 말입니다.

결국 만만한 에스파냐하기로 했습니다. 에스파냐는 딱 자료 많은 시기거든요-0-;;

처음에는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세딸들 이야기하고 나서 합스부르크 건너뛰고 부르봉으로 갈 예정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인판타들은 이미 다 해서 말입니다. 아하하..-0-;;;;


에스파냐의 인판타들...(1) 들어가면서


에스파냐는 카스티야의 여왕이었던 이사벨과 아라곤의 국왕인 페르난도가 결혼하면서 두 왕국이 합쳐지면서 생겨나게 됩니다. 사실 이베리아 반도의 상황은 매우 복잡한데 이사벨은 원래 왕위계승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사벨의 오빠였던 카스티야와 레온의 엔리케 4세는 모두에게 성적 불구라고 알려져있었습니다. 이때문에 그의 첫아내였던 나바라의 블랑쉬가 "처녀"로 이혼했던것이라고 알려져있었죠. 하지만 포르투갈의 후아나와 재혼한뒤 딸인 후아나가 태어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귀족들은 국왕에게 후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남동생인 알폰소를 후계자로 생각했었는데 느닷없이 딸이 태어나자 당황하게 되었고 국왕의 딸이 아닐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반란으로 이어졌으며 엔리케 4세는 딸이 아닌 동생인 알폰소를 왕위계승자로 인정해야했죠. 문제는 알폰소가 왕위에 오르기전 사망하면서 시작됩니다. 알폰소의 누나였던 이사벨이 알폰소의 권리를 이어받았는데, 반 이사벨측에서 다시 엔리케 4세의 딸인 후아나를 왕위계승자로 밀게 됩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은 이사벨이 친척이자 이웃나라였던 아라곤의 왕위계승자인 페르난도와 결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둘은 서로 대등한 관계로 왕위에 있었으며 이때문에 아라곤과 카스티야와 레온은 하나의 나라로 합쳐지게 되죠. 그리고 그 나라가 바로 "에스파냐"가 된것입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가톨릭 공동 군주"라는 칭호로 에스파냐를 통치했는데, 이들은 그라나다를 함락시키므로써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있던 마지막 이슬람 세력을 몰아냈고 이때문에 이런 특별한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 콜롬버스의 항해를 지원해주므로써 신대륙의 엄청난 재화도 얻게 되죠.



이사벨과 페르난도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자녀들중 유일한 아들은 후계자 없이 사망하죠. 이후 큰딸인 이사벨에게 계승권이 있었지만 이사벨 역시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고 그 아들 역시 어려서 사망합니다. 이후 계승권리는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시집간 후아나(일명 후아나 라 로카)에게 돌아가죠. 그리고 후아나의 자손들이자 합스부르크가문의 후계자들이 에스파냐의 국왕이 됩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막내딸은 바로 헨리 8세의 아내였던 캐서린이기도 했습니다.



필립과 후아나



합스부르크가문의 지배는 카를로스 2세때 끝나게 되는데, 카를로스 2세는 후계자없이 사망했으며 또 에스파냐를 계승할만한 남성 직계는 없었기에 결국 여성들의 후손에게 권리가 넘어가게 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에스파냐를 잃지 않기 위해 두가문간의 근친결혼이 극심했었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 복잡한 과정을 거쳐 에스파냐 왕위는 펠리페 4세의 증손자이자 루이 14세의 손자였던 앙주 공작 필리프에게 돌아가고 그는 에스파냐에서 "펠리페 5세"로 즉위하게 되죠.


이후 에스파냐는 부르봉 가문의 후손들이 계속 왕위를 잇습니다. 펠리페 5세는 한때 루이 15세를 제외하고 직계 계승자가 남아나지 않았던 프랑스 왕위도 넘봤었지만, 위트흐레트 조약의 조건이 "에스파냐와 프랑스 왕위를 같은 사람이 상속받지 않는다"라는 것이었기에 뜻을 이룰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에스파냐가 이 조약을 뒤집을만큼 힘도 없었구요.



펠리페 5세


나폴레옹 전쟁때 잠시 에스파냐는 나폴레옹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국왕으로 즉위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에 반발한 에스파냐 사람들의 저항에 힘입어 결국 프랑스군을 물러났고 부르봉 가문은 다시 복위합니다.

조제프 보나파르트에게 왕위를 뺏겼던 페르난도 7세는 복위한뒤에 후계자 문제에 휩쌓이게 됩니다. 그는 네번 결혼했는데 앞의 세번의 결혼헤서는 딸만 태어났으며 역시 그 딸들도 오래살지 못햇습니다. 페르난도의 네번째 결혼으로 두 딸이 태어나는데 두딸이 건강하게 성장하면서 그는 왕위계승법을 바꿔서 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합니다. 사실 에스파냐는 여성의 계승권을 인정했었지만, 부르봉 가문은 여성의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았죠. 이런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페르난도 7세의 후계자로 동생인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를 왕위계승자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페르난도 7세는 법률을 개정해서 딸인 이사벨을 왕위계승자로 지정하죠. 그리고 그는 딸이 미성년일때 사망합니다.



세딸들과 함께 있는 이사벨 2세



이 상황은 에스파냐의 내분을 초래하는 것으로 이사벨을 지지하는 사람과 카를로스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에스파냐는 나뉘게 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이사벨 2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결국 자녀들과 망명해야했고 의회는 다른 인물들을 국왕으로 선출하다가 다시 이사벨의 아들인 알폰소를 국왕으로 받아들이는 등의 일을 했습니다. 알폰소 12세가 국왕이 되었을때도 여전히 몰리나 백작의 후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죠. 


이후 알폰소 12세의 유복자인 알폰소 13세가 태어납니다만, 결국 복잡한 에스파냐 상황은 결국 알폰소 13세가 에스파냐를 떠나 다른 나라로 망명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에스파냐에서는 군부 독재가 시작되죠.  에스파냐를 통치하던 독재자 프랑코는 나이가 들면서 후계자가 필요하게 됩니다. 프랑코는 만만해보이던 알폰소 13세의 손자인 "후안 카를로스"를 후계자로 선택하죠. 그리고 프랑코가 죽은뒤 후안 카를로스는 에스파냐의 국왕으로 돌아올수 있었고 에스파냐는 다시 군주제로 돌아가죠. 



알폰소 13세


후안 카를로스는 군부독재중심의 국가를 입헌군주국으로 성공적으로 개혁한 인물이었습니다만, 최근 스캔들로 인해서 결국 퇴위했고 현재는 그의 아들인 펠리페가 국왕이 되었습니다.


인판타 칭호는 이베리아 반도의 왕녀들에게 부여되던 칭호로 에스파냐가 성립하기 이전부터 쓰이던 칭호였다고 합니다. 에스파냐의 인판타들 시작은 가톨릭공동군주인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세딸들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인판타들은 이미 앞에서 해서 이번 시리즈에서는 다루지 않을 겁니다. 가톨릭 공동군주의 딸들이 끝난후에는 바로 펠리페 5세의 딸들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시리즈의 마지막은 아마도 알폰소 13세의 딸들 정도에서 끝낼까합니다. 아시다시피 살아있는 사람들은 제가 관심이 없고 더 중요한것은 이미 후안 카를로스의 두 누이들에 대해서 이미 글을 적은것이 있다죠.^^*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