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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카스티야와 레온의 후아나 : 포르투갈의 왕비(첫번째)

엘아라 2015. 6. 1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딸인 후아나입니다.

후아나 보면 뭐랄까 참 인생이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음냐 그나저나 후아나 결혼 이야기나 뒷이야기는 이사벨 시즌2에 나오는데 ㅠ.ㅠ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아직도 봐야하나 고민중입니다.ㅠ.ㅠ



[Isabel]카스티야와 레온의 후아나 : 포르투갈의 왕비(첫번째)



카스티야의 후아나

"후아나 라 벨트라네하"

Joanna la Beltraneja 

(21 February 1462 – 12 April 1530)


"후아나 라 벨트라네하"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진 카스티야의 후아나는 카스티야의 국왕 엔리케 4세와 그의 부인인 포르투갈의 후아나의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태어난것 자체가 궁정내에서 큰 스캔들중 하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엔리케 4세가 성적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으며 이때문에 후계자를 얻을수 없을것이라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6년만에 후아나가 태어나면서 많은 귀족들이 후아나가 엔리케의 딸이 아니라 엔리케의 총신이었던 벨트란 드 라 쿠에바의 딸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벨트란의 딸 후아나"라는 이름인 "후아나 라 벨트라네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어랏 그러고 보니 덴마크쪽 어딘가에도 이런 별명 가진 공주가 기억나는듯하네요.)



엔리케 4세와 그의 총신이었던 벨트란 드 라 쿠에바



엔리케 4세는 딸인 후아나가 태어난 직후 그녀를 후계자인 "아스투리아스 여공"으로 선포합니다. 하지만 많은 귀족들은 이에 반발하면서 엔리케의 동생인 알폰소를 지지했고 결국 카스티야는 내전상황에 돌입되게 됩니다. 결국 알폰소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승리했으며 알폰소는 후계자인 "아스투리아스 공"칭호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엔리케 4세는 동생과 딸인 후아나를 결혼시키기로 하죠. 다시 말해서 딸을 국왕이 될 알폰소와 약혼시키므로써 후에 그가 죽은뒤에 딸이 Queen이 될수 있도록 한것이었죠.

하지만 이 상황은 알폰소가 사망하면서 무산되었고, 알폰소의 누나인 이사벨이 동생의 권리를 이어받아 왕위계승을 주장하면서 결국 후아나의 처지는 바뀌게 됩니다. 이사벨의 권리 주장은 후아나가 엔리케 4세의 딸이 아니라는 주장을 강화하는 것이었는데 게다가 후아나의 어머니였던 후아나 왕비가 다른 남자 사이에서 아이를 낳으면서 후아나의 지위는 매우 약해지게 되죠.



어머니

포르투갈의 후아나


후아나는 당대 많은 다른 왕족들처럼 부모와 떨어져지냈었는데 카스티야의 복잡한 정치 상황 역시 그녀가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했던 원인중 하나였을듯합니다. 1465년부터 1470년까지는 엔리케 4세의 강력한 지지자들이었던 멘도사 가문으로 보내져서 성장합니다. 재상이었던 디에고 데 멘도사의 동생이었던 이니고 로페스 데 멘도사의 성에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재미난것은 후에는 그녀의 지위를 위협했던 인물중 하나였던 후안 파체코에게 보내지게 되죠.


후안 파체코와 이사벨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서 후안 파체코는 다시 엔리케 4세의 후계자로 후아나를 지지하게 됩니다. 그는 1470년부터 1475년까지 후아나를 보호하고 있으면서 이사벨에 대항해서 후아나의 계승권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1470년 후아나는 프랑스의 루이 11세의 막내동생이었던 기옌 공작 샤를과 약혼하게 됩니다. 이것은 당시 아라곤과 프랑스사이의 갈등관계를 이용하려는 것으로 이사벨의 남편인 페르난도가 아라곤의 왕자였고 결국 카스티야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음으로써 간접적으로 이사벨을 압박할수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었죠. 대리결혼이 치뤄질때 후아나는 국왕의 적자이며 왕위계승자라고 선포되었다고 합니다만, 공작은 후아나를 도울수는 없었죠. 샤를은 형인 루이 11세에게 아들이 태어나면서 그의 지위가 애매해진것을 알게 됩니다. 평생 형인 루이 11세와 반목했던 샤를은 루이 11세가 부르고뉴 공작령을 탐내는것을 알고 공작의 상속녀였던 마리 드 부르고뉴와 결혼을 시도하기 위해 후아나와의 결혼을 깨게 되죠. 하지만 샤를은 아무런 성과없이 1472년 사망합니다.(그리고 마리 드 부르고뉴는 합스부르크가문으로..-0-;;;)



기옌 공작 샤를의 문장


이후 후아나는 여러 사람들과의 혼담이 오가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계승권을 지켜주기 위한 남편감으로 외삼촌인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 5세를 선택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의 어머니였던 포르투갈의 후아나의 영향이었을것입니다.


리고 1474년 아버지 엔리케 4세가 사망하자, 몇몇 귀족들은 후아나를 국왕의 적자이자 후계자로써 카스티야와 레온의 여왕으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포르투갈로부터 아폰수 5세가 군대를 이끌고 오게 되죠.

1475년 5월 후아나는 외삼촌인 아폰수 5세와 결혼했고 아폰수 5세는 아내의 권리를 통해 카스티야의 왕위를 주장합니다. 이것은 역시 카스티야의 여왕으로 선포한 후아나의 고모 이사벨과 그녀의 남편인 페르난도와의 전쟁을 불러오게 됩니다. 이렇게  카스티야 왕위계승전쟁이 시작되게 되죠. (카스티야 왕위계승전쟁이 몇번 있었습니다.-0-;;;)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