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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 포르투갈의 후아나 : 카스티야와 레온의 엔리케 4세의 왕비(첫번째)

엘아라 2015. 6.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후아나나 딸인 후아나는 자료가 그다지 많지가 않아요..ㅠ.ㅠ


[Isabel] 포르투갈의 후아나 : 카스티야와 레온의 엔리케 4세의 왕비(첫번째)



포르투갈의 후아나

카스티야와 레온의 왕비

Joana of Portugal

(20 March 1439 – 12 December 1475)


카스티야와 레온의 국왕 엔리케 4세의 왕비가 되는 포르투갈의 후아나는 1439년 남부 포르투갈의 알마다에서 포르투갈의 국왕인 두아르테와 그의 부인인 아라곤의 레오노르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후아나의 아버지인 두아르테는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1세와 그의 부인인 랭카스터의 필리파의 아들로 랭카스터의 필리파는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과 그의 첫번째 부인인 랭카스터의 블랜치의 딸이었습니다. 


후아나의 아버지

포르투갈의 두아르테


포르투갈의 주앙 1세가 즉위할무렵 포르투갈 역시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이었으며 카스티야와의 관계도 문제가 됐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역시나 카스티야쪽과 문제가 있었던 랭카스터 공작이 포르투갈과 동맹을 맺도록 했을것이며 이에 필리파가 주앙 1세와 결혼한것이었죠.

후아나의 고모와 숙부들은 유명한 인물들이었는데 후아나의 고모였던 포르투갈의 이사벨은 후에 부르고뉴 공작과 결혼했고 이사벨의 손녀가 바로 합스부르크가문으로 시집가는 부르고뉴의 상속녀인 마리 드 부르고뉴였었죠.



후아나의 고모

포르투갈의 이사벨

부르고뉴 공작부인

마리 드 부르고뉴의 할머니


후아나의 어머니인 아라곤의 레오노르는 카스티야의 왕자이자 아라곤의 국왕이 된 페르난도 1세의 딸이었습니다. 레오노르의 언니인 마리아는 카스티야 왕비로 엔리케 4세의 어머니이기도 했었습니다. 또 레오노르의 오빠인 후안은 나바라 여왕의 남편으로 나바라 국왕은 물론 형의 뒤를 이어 아라곤과 시칠리의 국왕이 된 인무로 후안의 아들인 페르난도는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결혼해서 가톨릭 공동군주로 에스파냐를 세웠었죠.



후아나의 어머니

아라곤의 레오노르

레오노르의 언니는 카스티야의 왕비로 엔리케 4세의 어머니였습니다.



후아나의 큰오빠인 아폰수는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로 후에 조카이자 엔리케 4세의 딸인 후아나와 결혼해서 카스티야 왕위를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후아나의 언니인 레오노르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와 결혼했고 그녀의 아들이 바로 마리 드 부르고뉴와 결혼하는 황제 막시밀리안 1세였습니다.



후아나의 언니 

레오노르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막시밀리안 1세의 어머니



후아나는 유복자로 태어났는데 그녀가 태어나기 전해에 그녀의 아버지인 두아르테는 전염병으로 사망했으며 아버지가 죽은 육개월후 후아나가 태어났었죠. 그녀의 어머니 레오노르는 아들의 섭정이 되었지만 그녀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특히 야심 가득했던 그녀의 남자형제들은 이 기회를 빌어 포르투갈에도 영향력을 확대하려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후아나의 숙부였던 엔리크의 반발을 일으켰으며 결국 레오노르는 궁정을 떠나야했다고 합니다. 후아나는 이런 어머니와 함께 있었으며 어머니가 죽은 1445년이 되어서야 궁정으로 돌아왔다고합니다.자라면서 후아나는 검은 머리에 매우 예쁘고, 뽀얀 피부에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후아나의 숙부

엔리크

"항해왕자"



카스티야의 엔리케 4세는 1453년 아내인 나바라의 블란카와 결혼을 무효화 합니다. 그는 아내와의 결혼을 무효화한뒤 포르투갈의 공주였던 후아나와의 결혼을 추진하게 됩니다. 엔리케 4세는 아마도 아라곤을 견제하기 위해서 포르투갈과의 동맹을 원했던것일 겁니다. 그리고 이시대의 동맹은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결혼동맹이었죠. 하지만 엔리케 4세의 결혼 무효 이유가 그가 성불구이기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으며 이런 상황은 결혼협상을 오래끌게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후아나는 1455년 5월 11일 코르도바에서 결혼했으며 이제 그녀는 카스티야의 왕비가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