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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 포르투갈의 후아나 : 카스티야와 레온의 엔리케 4세의 왕비(두번째)

엘아라 2015. 6.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자료가 없는데 그냥 글쓰기 싫어서 땡빵으로 글을 막 길게길게 늘립니다.-0-;;;

문득 제가 늘 투덜대는 베르나도트 전기 저자가 떠오르네요."자료가 없어서 글쓰기 힘들었어"라고 서문에서 밝히시더니 그 자료없어서 1766-1799년 까지 이야기만 600페이지 쓰셨드랩니다.-0-;;;;;


그 책은 진짜 속았어요..ㅠ.ㅠ 아직도 덜읽었다는..ㅠ.ㅠ


[Isabel] 포르투갈의 후아나 : 카스티야와 레온의 엔리케 4세의 왕비(두번째)




포르투갈의 후아나

카스티야와 레온의 왕비

Joana of Portugal

(20 March 1439 – 12 December 1475)



사람들은 후아나와 엔리케 4세 사이에 아이가 없을 것이라고 추정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엔리케의 전처였던 나바라의 블란카는 13년동안의 결혼생활동안 결혼이 완성되지 않았으며 그걸 확인까지 받았기 때문이었죠. 이런 상황은 사람들이 엔리케 4세의 후계자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엔리케의 남동생인 알폰소를 후계자로 생각하게 만들었을듯합니다.



엔리케 4세


하지만 1462년 후아나는 결혼 6년만에 아이를 낳게 됩니다.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후아나"라고 이름 붙여진 이 아이의 탄생은 카스티야를 혼돈으로 몰고가게 만듭니다.

이전에 이미 궁정에서 후아나가 정숙하지 못하다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저히 태어날수 없을것 같았던 아이가 태어나게 되자 궁정에서는 그딸이 엔리케 4세의 딸이 아니라 엔리케의 총신이었던 벨트란 드 라 쿠에바의 딸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자 권력자중 한명이었던 후안 파체코를 중심으로하는 귀족들이 엔리케 4세의 딸인 후아나를 국왕의 딸이 아니기에 후계자로 인정할수 없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엔리케 4세는 딸을 후계자들의 칭호인 "아스투리아스 여공"칭호를 부여하려했지만 귀족들은 후아나가 아닌 알폰소가 그 칭호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내전이 벌어지게 되죠.



카스티야의 후아나


결국 내전은 알폰소측의 승리로 돌아갔으며,이것은 포르투갈의 후아나가 엔리케의 딸이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는 소리가 되죠. 이에 엔리케는 아마도 정치적 문제때문에 아내인 후아나를 궁정에서 추방해야했을듯합니다. 그는 아내를 자신의 지지자중 한명이었던 폰세카 주교의 성으로 보내서 머물도록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후아나는 결정적 사고를 치게 되죠. 바로 폰세카 주교의 조카였던 페드로 데 카스티야 이 폰세카(대충 카스티야 국왕중 한명의 사생아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폰세카 주교의 누이였다고)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되죠. 이 사실을 알게된 엔리케는 아내와의 관계를 거의 단절하다시피 했다고 합니다.(영어 위키에는 이혼-하지만 이땐 이혼이 아니라 결혼 무효를 선언해야하는데 그건 아닌것같거든요.-했다고 언급되지만 다른 언어 위키에는 이혼했다는 언급이 없다죠.)

이 상황은 딸인 후아나에게도 나쁘게 돌아가게 되는데 그녀의 부정은 곧 "벨트란의 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카스티야의 후아나가 엔리케 4세의 딸이 아니라 벨트란 드 라 쿠에바의 딸일거라는 확정적 증거로 남게 되죠. 이 상황은 엔리케 4세가 자신의 후계자를 딸인 후아나가 아니라 여동생인 이사벨을 승인하도록 하는데 중요한 계기중 하나였을것입니다.



카스티야 왕비로써의 후아나의 문장


후아나는 이런 상황에서 아마도 궁정에서 조용히 죽어지냈을듯합니다. 엔리케 4세와 이사벨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후아나의 딸인 후아나의 계승권 문제가 대두됩니다. 하지만 엔리케 4세는 후아나의 계승권을 확정짓지 않고 사망했죠.


남편이 죽은뒤 후아나는 자신의 딸인 후아나의 계승권을 다시 주장합니다. 그리고 딸의 계승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오빠인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와 딸인 후아나와의 결혼을 추진하거나 거기에 동조했었을듯합니다.아폰수 5세는 후아나와 결혼한뒤 아내의 권리를 통해 카스티야의 계승권리를 주장하면서 포르투갈 군대를 동원해서 카스티야의 영토를 점령해나가죠. 후아나는 딸이 결혼한 6개월쯤뒤인 1475년 12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고 합니다.



카스티야 대비로써의 후아나의 문장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