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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2) 인판타 이사벨 : 가톨릭 공동군주의 딸(첫번째)

엘아라 2015. 10.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네 사실 드라마 "이사벨"을 미친듯이 보면서 이쪽 시대가 좀 익숙합니다.

물론 자녀들 나오는 시즌3이야기는 아예안봤고, 그라나다 함락이 나오는 시즌2는 보다 말았지만 말입니다.-0-;;;;;;


에스파냐의 인판타들...(2) 인판타 이사벨 : 가톨릭 공동군주의 딸 (첫번째)





아라곤의 이사벨

아스투리아스 여공

포르투갈의 왕비

Isabella, Princess of Asturias 

(2 October 1470 – 23 August 1498) 



아라곤의 이사벨은 가톨릭 공동군주였던 카스티야와 레온의 이사벨(이사벨 1세)과 그녀의 남편인 아라곤과 시칠리의 페르난도(페르난도 2세)의 첫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이사벨이 태어났을때 그녀의 어머니인 카스티야의 이사벨은 카스티야의 왕위계승자로 "아스투리아스 여공"칭호를 가지고 있었죠. 또 아버지인 페르난도는 아라곤의 후계자이자 당시에는 시칠리의 국왕이기도 했었습니다.


이사벨은 부모와 함께 카스티야에서 살았었는데, 당시 카스티야에서는 국왕인 엔리케와 후계자인 이사벨 사이에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엔리케는 이사벨이 페르난도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었기 때문이죠. 여러가지 정치적 이유가 있었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엔리케가 카스티야의 내정을 간섭했던 "아라곤의 인판테"들을 싫어했고 그들중 한명이 바로 페르난도의 아버지였던 아라곤의 후안 2세였기 때문일것입니다.



자녀들과 함께 있는 가톨릭 공동 군주


1474년 이사벨의 외삼촌이었던 카스티야의 국왕 엔리케가 사망하면서 이사벨의 어머니인 아스투리아스 여공이 이사벨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이때 이사벨의 유일한 자녀였던 이사벨은 후계자로 "아스투리아스 여공"으로 선포되었죠. 하지만 왕위계승을 주장하던 엔리케 4세의 딸인 후아나가 포르투갈과 손잡고 이사벨 1세에 반기를 들게 됩니다. 후아나는 외삼촌인 포르투갈 국왕과 결혼했고, 포르투갈 국왕은 후아나의 남편으로써 아내의 계승권을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카스티야를 침공합니다. 카스티야 내 몇몇 유력 귀족들 역시 후아나를 지지하므로써 계승전쟁은 복잡하게 돌아가게 되죠.


이 계승전쟁 동안 이사벨의 부모는 전장에 있었으며, 이사벨은 세고비아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사벨은 이곳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곱살의 이사벨은 세고비아의 행정관 부부와 마찰을 빚었으며 이때문에 몇번이고 탑에 갇히기도 했었으며 그녀의 어머니인 이사벨 여왕이 돌아와서 상황을 정리할때까지 이런 아동학대를 당해야했다고 합니다.


1479년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의 전쟁은 "알카코바스 조약"을 통해서 마무리됩니다. 이 조약은 포르투갈의 국왕과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국왕들이 서로의 나라의 왕위계승권을 포기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것으로 다시 말해서 포르투갈이 더이상 카스티야의 왕위계승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조약은 해외 식민지 부분에서 카스티야에 매우 불리한 것으로 결국 이사벨 여왕이 콜롬버스의 탐험을 후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죠. 하지만 아라곤의 이사벨에게는 그녀의 결혼을 결정짓는 조약이기도 했습니다. 당대 많은 조약들처럼 알카코바스 조약 역시 결혼을 통해 평화를 확인했는데 이때 이사벨과 포르투갈의 알폰수 5세의 손자인 알폰수와 결혼하기로 결정됩니다. 포르투갈의 알폰수는 알폰수 5세의 장손이자 그의 계승자인 주앙(후에 주앙 2세)의 아들이었죠. 그는 이사벨보다 다섯살이나 어렸는데 아마도 당시 이사벨 여왕이 딸인 이사벨과 아들인 후안밖에 없어서 그랬을듯합니다. 이사벨의 여동생인 후아나는 조약이 체결된뒤 태어났었죠.



자녀들인 후안과 이사벨과 함께 있는 가톨릭 공동 군주



1480년 알폰수는 무우라 지방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1481년초 이사벨 역시 이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3년간 포르투갈에서 머물다가 다시 카스티야로 돌아왔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어쩌면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는 이제 이슬람세력과 전쟁을 다시 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딸을 약혼자의 집에 잠시 보냈던것이 아닐까합니다. 


이사벨은 부모의 사랑을 받는 아이였는데 특히 이사벨 여왕이 가장 예뻐한 딸이었다고 합니다. 이사벨은 어머니의 외모나 성격을 가장 많이 닮을 딸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아버지인 페르난도 역시 딸을 예뻐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도 이사벨이 전장에 있는 부모 곁에 자주 머물렀던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이사벨은 부모가 이슬람 세력과 전쟁중일때 함께 있었던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머니 이사벨이 그라나다의 도시중 하나였던 바사(Baza)를 함락시키고, 항복을 수락했을때 아라곤의 이사벨 역시 어머니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1490년 이사벨은 드디어 약혼자인 알폰수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때 알폰수의 아버지인 주앙이 포르투갈의 국왕으로 즉위한 상황이었으며 그의 외아들이었던 알폰수가 유일한 왕위계승자였습니다. 1490년 세빌리아에서 대리혼을 치룬뒤 그해 11월에 포르투갈로 가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시숙부가 되는 마누엘의 영접을 받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는 후에 이 마누엘과 재혼하게 되죠.

그리고 알폰수와 다시만나 그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사벨과 알폰수의 결혼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습니다만, 둘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사벨은 포르투갈 왕실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되는데 그녀는 잠시 포르투갈에서 살았기에 포르투갈어를 했으며, 이런 상황은 이사벨이 포르투갈에서 잘 지낼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뿐이었고 곧 끝나게 됩니다. 이사벨의 남편인 알폰수가 1491년 낙마하면서 사망하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매우 충격을 받은 이사벨은 후에 남편의 죽음이 자신의 부모가 에스파냐에서 추방한 유대인들을 포르투갈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느님이 노여워해서 생긴 일이라고 까지 생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알폰수의 죽음


이사벨은 남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고 있었지만 정치적 문제는 좀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이사벨은 동생인 후안 다음으로 중요한 왕위계승자였기에 젊은 나이에 포르투갈에 있는 것은 좀 곤란한 일이었죠. 만약 후안에게 무슨일이 생긴다면 이사벨이 왕위계승자가 되어야하는데 남편도 없는 포르투갈에 있는것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이사벨은 고향인 에스파냐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죠. 하지만 왕녀로 태어난 이상 결혼은 그녀 마음대로 되는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