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50)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 : 펠리페 4세의 딸(두번째)

엘아라 2015. 9. 2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다음편은 대충 에스파냐-합스부르크 마무리하는걸로 정리할건데 그러고 나면 이제 합스부르크 가문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입니다.-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50)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 : 펠리페 4세의 딸(두번째)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

에스파냐의 인판타

신성로마제국의 마르가레테 테레지아 황후

황제 레오폴트 1세의 황후

Margaret Theresa of Spain 

(Margarita TeresaMargarete Theresia)

(12 July 1651 – 12 March 1673)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아버지인 펠리페 4세는 1665년 사망합니다.그리고 애도기간이 끝난뒤인 1666년 여름 15살의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이제 에스파냐를 떠나 약혼자가 있는 오스트리아로 가서 그와 결혼하게 되죠.1666년 12월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황제 레오폴트 1세와 정식으로 결혼했고 이제 그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후가 됩니다.



아버지의 상복을 입고 있는 마르가리타 테레사

후안 마르티네스 델 마소의 작품



마르가리타 테레사와 레오폴트 1세는 열한살차이나 났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행복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둘은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했었고 이런 상황은 부부간에 나이차가 많았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죠.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초상화를 보면서 어린 약혼녀를 기다렸었던 레오폴트 1세는 아내를 많이 사랑했다고 하죠.



레오폴트 1세


하지만 몇몇 상황은 매우 문제가 있기도 했었죠.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에스파냐 궁정 사람들을 데려왔으며 아내를 사랑했었던 레오폴트 1세는 아내의 에스파냐 수행원들을 주변에 그대로 두게 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에스파냐 수행원들이 빈의 궁정에서 매우 거만하게 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곧 궁정에서는 에스파냐쪽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나타나게 되죠. 그리고 이런 반감은 마르가리타 테레사에 대한 반감으로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연약했던 마르가리타 테레사에게 대놓고 그녀가 죽는다면 황제가 곧 다른 여인과 결혼할것이라 말하는 사람까지 나타나게 해서 어린 황후를 힘들게 했었다고 합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아마도 연약했던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결혼 직후부터 임신을 연이어 했었기에 건강을 해치게 되었을듯합니다 뿐만아니라 아이들 역시 잘 자라지 못했죠.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많이 유산을 했을뿐만 아니라 그녀가 낳은 아이들 역시 그렇게 오래살지 못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마르가리타 테레사가 결국 21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게 만들었죠.


아내를 잃은후 황제 레오폴트 1세는 진심으로 슬퍼했었다고 합니다만, 그는 결혼해서 후계자를 얻어야하는 의무가 있었고 두번이나 더 결혼하게 되죠.-0-;;;;


마르가리타 테레사와 레오폴트 1세 사이에서는 네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만 둘째이자 딸인 마리아 안토니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아기를 넘기지 못했었습니다. 마리아 안토니아는 성인으로 성장했고 바이에른의 선제후와 결혼했었죠. 후계자가 없었던 카를로스 2세에게 그녀와 그녀의 아들은 가장 유력한 에스파냐 왕위계승 후보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다 일찍 죽음으로써 에스파냐 왕위계승문제는 복잡하게 되게 됩니다.


딸 마리아 안토니아와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테레사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