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네번째인데 아직도 이사벨이 망명도 안했어요..ㅠ.ㅠ
이사벨은 책도 안 읽었는데 왜 이리 길어지는거랩니까..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42) 프랑스의 이사벨 : 에드워드 2세의 왕비(네번째)
프랑스의 이사벨
잉글랜드의 이사벨라 왕비
Isabella of France
(1295 – 22 August 1358)
드스펜서 부자가 권력을 잡아가고 있는 동안 여전히 에드워드 2세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고 남편의 어려움은 곧 이사벨의 어려움이 되었죠. 1314년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 또 패배한 에드워드에 대해서 잉글랜드 귀족들은 다시한번 국왕에게 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랭카스터의 토마스가 다시 한번 권력을 잡게 되지만, 스코틀랜드와의 패배는 심한 패배였기에 랭카스터 백작 역시 스코틀랜드를 막을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시기 이사벨은 매우 곤궁한 처지가 되는데 랭카스터 백작은 이사벨을 자신의 적으로 간주했었기 때문이죠. 랭카스터 백작은 이사벨에게 지급되는 돈을 깍았으며 궁정에 있던 식솔들을 쫓아내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1316에서 1317년 사이 일어난 대기근은 잉글랜드에 엄청난 재앙으로 닥쳤기에 왕실뿐만 아니라 모든 잉글랜드 인들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게다가 대기근 이후 혹한이 몰아닥쳤고 이런 상황은 잉글랜드 산업의 기반중 하나였던 양모산업에 큰 타격을 주게 됩니다. 혹독한 추위에 양들이 죽어버렸기 때문이었죠. 식량과 교역품이 없어지면서 물가는 폭등하게 되고 이 상황은 결국 국왕에게 나쁜 영향으로 나타나게 되죠.
"대기근"시기 경에 그려진 그림
죽음이 사자를 타고 가고 있고 아래에는 지옥이 묘사되어있는데 그 쪽에 "기근"이라는 단어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사벨은 1316년 둘째아들인 존을 낳았습니다만, 이미 재난이 닥친 잉글랜드 내에서 국왕의 인기는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져있었습니다.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심지어 에드워드가 진짜 국왕이 아니라 바꿔치기 당했으며 자신이 진짜 에드워드라고 주장하는 인물까지 나오게 될 정도였습니다. 이 시기 사람들은 에드워드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고난을 내리신다고 믿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이사벨이 국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듯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지지세력이자 랭카스터 백작의 적이었던 버몬트 가문을 통해서 영향력을 증대시켜나갔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스코틀랜드는 이런 혼란한 잉글랜드 상황을 노리고 침공을 했으며 성공적으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심지어 스코틀랜드에서는 이사벨을 포로로 잡으려 했고 이사벨이 간신히 도망치기도 햇었다고 합니다.
1319년경 랭카스터 백작은 실각했지만 그렇다고 랭카스터쪽을 지지한 귀족들을 평정한것도 아니었기에 이사벨은 남편과 함께 다시 프랑스의 지지를 얻기위해 오빠인 샤를 4세를 만나러 가기도 했었습니다.
오빠 샤를 4세와 만나는 이사벨
이러는 동안 에드워드 2세의 궁정에서는 다시한번 권력자가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1대 윈체스터 백작의 아들이자 아버지와 같은 이름이었기에 younger 라는 이름이 더 붙는 휴 르 드스펜서였죠. 아들쪽 휴 르 드스펜서는 에드워드와 같은 또래였었습니다. 드스펜서 부자가 권력을 얻게 되자 이를 반대하는 인물들도 등장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로저 모티머 드 크릭과 그의 조카인 위그모어의 로저 모티머였습니다. 이들 역시 드스펜서 가문처럼 "마처 로드"들중 한명이었는데 드스펜서가문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받았기 때문에 이들을 반대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이사벨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데 이사벨은 개버스턴과는 달리 남편의 새로운 총신이었던 아들쪽 휴 르 드스펜서와 친하게 지내지 못했었습니다. 게다가 드스펜서 부자와 적대적이었던 랭카스터 백작측에서도 이사벨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죠. 대립하는 두세력에게 모두 적대시 당한 이사벨은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게 됩니다.
휴 르 드스펜서 younger
어쨌든 잉글랜드는 다시한번 내전의 위협에 직면하게 됩니다. 남아있던 랭카스터 백작을 지지하던 귀족들은 드스펜서 부자를 추방하라고 요구하게 되죠. 국왕이 이를 거부할경우 다시한번 내전이 시작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중도적 입장이었던 귀족들은 내전이 일어나는것을 원치 않았으며 이들은 결국 왕비인 이사벨에게 중재를 요청하게 됩니다. 이사벨은 공개적으로 남편에게 무릎을 꿇고 드스펜서 부자를 추방하라고 간청합니다. 이것은 사실 남편의 체면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죠. 하지만 전쟁을 막을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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