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
잉글랜드의 왕비들...(44) 프랑스의 이사벨 : 에드워드 2세의 왕비(여섯번째)
프랑스의 이사벨
잉글랜드의 이사벨라 왕비
Isabella of France
(1295 – 22 August 1358)
아들 에드워드가 오빠에게 봉신으로써의 예를 갖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사벨
이사벨의 남편인 에드워드 2세는 아키텐 공작으로 가스코뉴의 영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프랑스 국왕의 봉신으로 에드워드는 프랑스의 국왕에게 충성맹세를 통해서 봉신으로 인정을 받아야했죠. 하지만 이사벨의 오빠들은 차례로 사망했고 국왕이 바뀔때마다 충성맹세를 해야했었는데 잉글랜드의 국왕신분인 그가 다른 국왕에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때문에 이 충성맹세를 피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었는데 1322년 샤를 4세가 즉위하면서 다시한번 충성맹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충성맹세를 하지 않을 경우 무력충돌의 계기가 되기 때문에 미묘한 문제이기도 했었죠.
어쨌든 충성맹세의 의지가 보이지 않았기에 프랑스측은 가스코뉴를 침공했고, 이 전쟁은 꽤나 성공적이 됩니다. 그리고 1324년 샤를 4세는 충성맹세를 하지 않는다면 아키텐 공작령을 환수하겠다고 까지합니다.
이사벨의 오빠 샤를 4세
상황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에드워드 2세는 프랑스로 가길 거부했는데 그가 잉글랜드를 떠날경우 드스펜서 가문이 보복당할것을 우려했으며 그 자신도 이미 암살위기를 겪었기에 더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결국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사벨이 나서게 됩니다. 샤를은 교황을 통해서 매제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보냈으며 교황은 에드워드에게 이사벨을 파리로 보내서 협상하라고 충고해주게 됩니다. 1325년 이사벨은 오빠와의 협상을 위해 다시한번 파리로 가게 되죠. 이미 남편과 그의 총신인 휴 르 드스펜서와의 불화가 극심했던 이사벨은 아마도 이 기회를 또다른 돌파구로 여겼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이사벨은 여름까지 잉글랜드로 돌아가기로 하고 프랑스로 갑니다. 3월에 파리에 도착한 이사벨은 협상을 통해 에드워드와 그녀의 장남인 13살의 에드워드 왕자가 아버지를 대신해 충성맹세를 하기로 합의를 보게 되죠. 에드워드 왕자는 9월에 파리에 도착했으며, 이사벨은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고 파리에서 아들과 친정식구들과 함께 지내게됩니다. 에드워드 2세는 교황과 처남에게 아내를 돌려보내라고 요구하지만 샤를 4세는 이를 거절합니다. 샤를 4세는 "왕비는 자신이 원하는때 자유롭게 돌아갈것이오. 만약 그녀가 여기에 머물길 원한다면 그녀는 내 여동생이며 나는 그녀를 쫓아내지 않을것이오"라고 답변을 보내면서 동생을 돌려보내길 거부합니다. 또 아키텐의 영지들 역시 여전히 돌려주지 않고 프랑스가 점령하게 됩니다.
오빠 샤를 4세와 만나는 이사벨
에드워드2세는 이 상황에서 아내가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키려한다는 상황을 깨닫게 됩니다. 에드워드 2세가 보낸 사람은 프랑스에서 이사벨의 상황을 보고했었습니다. 그는 왕비가 상복을 입고 휴 르 드스펜서가 자신의 결혼생활을 깼다고 이야기한다고 보고합니다. 이런 상황은 프랑스 궁정에 에드워드 2세의 정적들이 몰려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게다가 에드워드 2세의 장남이자 후계자가 될 에드워드 마저 이사벨과 함께 있었기에 정적들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이기도 했었습니다.
이사벨과 샤를 4세 그리고 이사벨의 아들 에드워드
남편의 정적들을 만나 세력을 규합하던 이사벨은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위그모어의 로저 모티머였죠. 위그모어의 로저모티머는 "마처 로드"중 한명이었으며 드스펜서 가문을 경계하던 인물중 하나였죠. 그는 드스펜서 전쟁이후 런던탑에 갇혔는데 런던탑에 구멍을 뚫고 탈옥해서 프랑스로 도망쳐와있었습니다. 재미난것은 빅토리아 시대 학자들이나 현재의 몇몇 학자들은 이사벨이 로저 머티머의 탈옥을 도왔으며 이때 왕비와 그가 이미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증거가 없으며, 아마도 이사벨은 이전에는 로저 모티머를 만난적이 없었으며 아마도 파리에서 그를 만났을듯합니다.
이사벨은 사촌인 에노의 백작부인 잔 드 발루아를 통해서 로저 모티머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사벨은 곧 로저 모티머와 열렬한 관계가 됩니다. 이 상황은 이사벨에게 나쁜것으로 이미 그녀는 이전에 자신들의 올케들이 부정을 저질렀다고 프랑스 궁정을 발칵 뒤집은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이었죠. 그녀의 올케들은 감옥에 갇힌채 사망했었고 그녀 역시 이런 일에 자유로울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사벨이 위험을 무릅쓰고 로저 모티머와 연인관계가 된것에 대해서 학자들 간의 여러 이견이 있지만, 이사벨과 로저 머티머는 서로에게 빠져들었으며 빠져들었다는 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둘다 매력적이었기에 서로에게 끌렸으며 아서왕의 전설이나 예술 분야등에 공통 관심사가 많았던 이들이 서로 눈맞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수도 있습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둘의 관계에 대해서 "중세 최고의 로맨스 중 하나"라고 언급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사이에는 공통의 적도 있었죠. 바로 에드워드 2세와 드스펜서 였죠.
모티머 가문의 문장
1326년 이사벨과 로저 머티머는 이사벨의 아들인 에드워드와 함께 에노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노 백작의 딸인 필리파를 에드워드와 결혼시키기로 하고 상당한 지참금을 미리 얻어내죠. 이 지참금을 가지고 이사벨은 병사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에노 백작은 이사벨을 지원하기 위해 배를 준비하기도 했고 적은 수의 병력도 지원해주기도 했습니다. 이사벨은 또한 스코틀랜드와도 비밀리에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1326년 9월 22일 이사벨과 로저 머티머 그리고 병력들은 잉글랜드를 침공하기 위해 출발합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영국의 왕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잉글랜드의 왕비들...(46) 프랑스의 이사벨 : 에드워드 2세의 왕비(여덟번째) (0) | 2015.09.24 |
---|---|
잉글랜드의 왕비들...(45) 프랑스의 이사벨 : 에드워드 2세의 왕비(일곱번째) (0) | 2015.09.17 |
잉글랜드의 왕비들...(43) 프랑스의 이사벨 : 에드워드 2세의 왕비(다섯번째) (0) | 2015.09.03 |
잉글랜드의 왕비들...(42) 프랑스의 이사벨 : 에드워드 2세의 왕비(네번째) (0) | 2015.08.27 |
잉글랜드의 왕비들...(41) 프랑스의 이사벨 : 에드워드 2세의 왕비(세번째) (0) | 2015.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