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잉글랜드의 왕비들...(40) 프랑스의 이사벨 : 에드워드 2세의 왕비(두번째)
프랑스의 이사벨
잉글랜드의 이사벨라 왕비
Isabella of France
(1295 – 22 August 1358)
이사벨의 언니 오빠들은 물론 남동생까지 필리프 4세는 모든 자녀들을 일찍 약혼시키거나 결혼시켰었습니다. 이것은 필리프 4세의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죠. 이사벨 역시 어린시절부터 이미 혼담이 오가기 시작합니다. 상대는 바로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1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카나번의 에드워드"였습니다. 둘의 혼담은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불화를 어느정도 해소 시킬수 있는 문제였는데 잉글랜드는 이전에 대륙에 있던 가문의 영지에 대한 소유권을 줄기차기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사벨이 아기였을때 이미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의 혼담이 진행되었으며 1298년 교황 보니파치오 8세가 이 결혼을 허락했었다고 합니다.(..아마 친척관계여서 교황의 허락이 필요했을듯) 하지만 정치상황은 순탄하지 않게 돌아갑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오래도록 프랑스에 적대적이었으며 결국 교황의 중재로 프랑스의 공주들과 결혼관계가 되면서 프랑스와의 휴전을 승락하게 되죠. 그 자신은 프랑스 국왕의 누이동생과 결혼하고 아들은 프랑스 국왕의 딸과 결혼하므로써 평화협정을 체결한듯합니다. 1299년 에드워드 1세는 이사벨의 고모이자 필리프 4세의 이복여동생이었던 마르그리트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카나본의 에드워드와 이사벨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진척이 없었죠. 에드워드 1세는 이사벨과 아들과의 약혼을 깨려고 노력했었고 결국 이사벨과 에드워드와의 결혼은 에드워드 1세가 사망한 후에나 가능하게 됩니다.
아들이자 후계자인 에드워드와 함께 있는 에드워드 1세
1307년 에드워드 1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에드워드 2세가 즉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이사벨과의 결혼협상이 다시 진행되게 되죠. 그리고 1308년 1월 이사벨은 잉글랜드의 국왕인 에드워드 2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12살 정도였지만 엄청난 미인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들 모두 당대에는 잘생긴것으로 유명했으며, 또 그녀의 남편인 에드워드 2세는 아내를 "Isabella the fair"라고 부른것으로 봐서 당대 최고의 미녀중 하나였을듯합니다. 결혼식때 이사벨은 엄청난 혼수를 가져가게 됩니다. 프랑스 공주로 잉글랜드 국왕과 결혼하는 지위에 걸맞은 혼수가 필요했던것이었죠.
결혼당시 이사벨은 중세시대 다른 여성들과 비교할수 없을만큼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매우 지적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매우 매력적이었으며 외교적으로도 뛰어났는데 특히 사람들에게 자신을 지지하게 만들도록 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합니다.
이사벨
잉글랜드 왕비가 된 이사벨은 잉글랜드에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인 에드워드 2세는 당대기준으로 키크고 근육질에 잘생긴 남자였습니다만, 당대에는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그는 국왕의 아들로 국왕의 후계자였지만, 노를 젓거나 나무를 심거나 도랑을 만드는 일등 하층민이나 하던 일들을 스스로 하는 것을 즐겼으며 또 이런 일들을 하던 신분이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요즘 같으면 소박하다고 인기있었을듯..-0-;;) 또 그는 자신의 총신들과 "특별한 관계"였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으며, 이런 총신들과의 문제 때문에 잉글랜드의 다른 귀족들과 마찰을 빚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왕비였던 이사벨이 나라를 위해 해야하는 일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의미하게 되죠. 이런 문제는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흘러갔으며, 내전을 거치게 되고 그녀가 남편과 그의 총신과 불화하게 되면서 결국 스스로 잉글랜드를 침공하게 까지 만들게 되었죠.
에드워드 2세
에드워드 2세는 즉위 초기에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잘생긴 외모에다가 젊은 국왕에 대한 기대가 컸던것이었죠. 하지만 에드워드 2세는 사냥이나 전쟁보다는 음악이나 도자기 기술등을 더 사랑했고 집중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것들은 당대에는 "여자들이나 관심갖는 일"이라고 치중했었고 결국 이런 상황은 그의 총신들과 그의 관계에 대해서 에드워드가 총신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이사벨과의 사이에서 네명의 아이가 태어났기에 에드워드가 아마도 "바이섹슈얼리티"를 가지고 있을거라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과연 성적 취향이 어땠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으며(에드워드의 관계를 추측한것뿐이었고 또 중세시대에 "미뇽"이라는 관계가 있었는데 이것은 현재 관점으로 보면 동성연애나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는 친구들 사이에 친밀감을 표시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어떤이들은 그가 동성의 총신들과는 "플라토닉"한 관계였을것이라 추측하기도 합니다.
결혼초기 이사벨은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사벨은 겨우 열두살이었으며 그녀의 남편은 그녀보다 10살정도 더 많았었죠. 게다가 에드워드는 이미 1대 콘웰 백작이었던 피어스 개버스턴과 깊은 관계였다고 여겨집니다. 어린 이사벨이 남편이 이미 마음을 뺏긴 사람이 있는 상황을 대처하기 힘들었었죠. 에드워드 2세는 즉위 직후 이미 피어스 개버스턴에게 콘웰 백작 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사벨이 잉글랜드에 도착한뒤 열린 결혼식 축하 연회에서 이사벨과 함께 앉지 않고 피어스 개버스턴과 함께 앉으므로써 불화를 야기시킵니다. 이사벨의 숙부들이었던 루이 데브뢰와 샤를 드 발루아가 이 상황에 대해서 매우 화를 냈으며 이렇게 되자 에드워드는 보복으로 이사벨에게 왕비로써 독립적 생활을 할수 있게 해주는 영지를 내리는 것을 거부했으며 독립적 궁정을 갖는것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에드워드는 대놓고 피어스 개버스턴에게 이사벨의보석들을 줘버리는 만행까지 저지르게 되죠.(... 이사벨이 전쟁한 이유를 알겠다는..-0-;;)
결국 이 상황은 이사벨의 아버지인 필리프 4세까지 개입하게 만들었으며, 장인의 개입 이후에야 에드워드는 이사벨에게 왕비로써 걸맞는 대접을 해줬다고 합니다.
피어스 개버스턴의 콘웰 백작 수여 서류 같은것쯤 되는 것
저기 보이는 문장에서 위는 영국 왕실의 문장이고 아래는 피어스 개버스턴과 그의 아내 가문인 드 클레어 가문의 문장이 함께 표시되어있는것이라고 합니다.-0-;;;
이런 결혼초의 상황은 이사벨이 처신하기 매우 힘들었을것으로 추정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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