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 두개로 끝낼수 있을줄 알았더니...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37) 프랑스의 마르거리트 : 에드워드 1세의 왕비 (두번째)
프랑스의 마르거리트
잉글랜드의 왕비
Margaret of France
(c. 1279 – 14 February 1318)
후대의 상상화
마르거리트와 에드워드 1세는 아주 정치적인 목적으로 결혼했었습니다. 게다가 둘 사이에서는 나이차도 엄청났으며 심지어 그녀의 남편은 첫아내를 너무나 사랑했었으며 그녀에게 왕비로써 대관식까지 치뤄주지 않았었죠. 하지만 둘은 결국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는 아내가 매우 아름답고 선량하며 질투심없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를 위해 처형인 블랑쉬가 죽었을때 궁정에서 블랑쉬의 죽음을 애도하도록 허락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마르거리트는 1306년 딸을 낳는데 그녀는 새로 태어난 딸의 이름을 남편의 첫번째 아내 이름을 따서 엘레노르라고 지었으며 이런 그녀에 행동에 많은이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아마 남편인 에드워드는 아내의 이런 행동에 큰 감동을 받았을듯합니다.
에드워드와 마르거리트
마르거리트의 성품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내도록 만들었는데 특히 남편의 아들이자 의붓아들이었던 웨일즈 공 에드워드와도 잘 지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겨우 두살 어린 의붓아들에게 잘 대해줬으며 웨일즈 공 역시 새어머니를 잘 따르게 됩니다. 웨일즈공은 새어머니에게 여러가지 선물을 하는등의 호의를 보였으며 마르거리트는 남편에게 의붓아들의 주변인물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말해주는등의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또 그녀는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후원하기도 했으며 자선을 베풀기도 했었죠.
마르거리트는 1307년 남편이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 참가하러 갈때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로 가던중 마르거리트의 남편인 에드워드는 사망했고 그녀는 과부가 되었죠.
남편이 죽었을때 겨우 26살이었던 마르거리트는 충분히 재혼할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은 평생 재혼하지 않았습니다. 마르거리트는 "에드워드가 죽었을때 나를 위한 남자들 모두가 죽었다"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마르거리트의 씰
마르거리트는 에드워드 2세가 피어스 개버스턴을 콘웰 백작으로 만들었을때 매우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 지위는 자신의 아들중 한명을 위한 지위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죠. 그녀는 조카인 이사벨라가 에드워드 2세와 결혼할때 그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부산중 하나였던 말버러 성으로 은퇴하죠. 하지만 그녀는 조카인 이사벨라 왕비와 이복오빠인 필리프 4세와 연락하고 지냈다고 합니다. 마르거리트 역시 에드워드 2세 시대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 휩쓸리게 됩니다. 그녀는 피어스 개버스턴에 대항하는 음모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후에 마르거리트는 조카인 이사벨라가 아들인 에드워드(후에 에드워드 3세)를 낳을때 증인이 되었었다고 합니다.
필리프 4세와 가족들
왼쪽의 붉은 옷이 이사벨입니다.
마르거리트는 1318년 말버러 성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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