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35) 카스티야의 레오노르 : 에드워드 1세의 왕비 (다번째)

엘아라 2015. 7.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레오노르는 열여섯 아이를 낳았는데 살아남은 아이들이 별로 없네요.


잉글랜드의 왕비들...(35) 카스티야의 레오노르 : 에드워드 1세의 왕비 (다번째)



카스티야의 레오노르

잉글랜드의 왕비

Eleanor of Castile 

(1241 – 28 November 1290)



레오노르는 1254년 13살의 나이로 에드워드 1세와 결혼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에 첫아이를 사산했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한동안 아이를 갖지 않다가 1261년부터 계속 아이를 낳습니다. 레오노르는 전쟁에 나가는 남편과도 함께 있었으며, 이런 상황은 그녀가 계속 아이를 낳게 되는 원인이었던듯합니다.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작성된 가계도에서는 레오노르가 에드워드 2세를 낳고 나서도 두명의 쌍둥이 딸을 더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만, 그녀에 대해 나름 상세하게 기술된 1280년대 후반의 당대 기록들에는 아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어쩌면 이 아이들은 레오노르에 대한 기록이 잘 없던 12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아이들일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레오노르와 에드워드는 서로에게 매우 헌신적이었는데 이런 상황은 그들이 아이들에게는 덜 헌신적이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레오노르는 어린 아이들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는 남편을 따라 갔으며, 또 돌아오는길에 태어난 딸인 조안을 어머니에게 맡겨서 키우게 한다거나 했었기에 아마도 이런 평가를 받는듯합니다. 게다가 아들인 헨리가 죽어가고 있을때는 아들 곁에 있지 않기도 했었죠.

하지만 아이들을 여행에 데려가기에는 너무 어렸다던가 하는 것이었을뿐 레오노르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던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레오노르와 에드워드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오래 산 아이들이 별로 없었으며 7살을 넘긴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점차 오래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10대를 넘긴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었죠. 또 레오노르는 자녀들의 건강과 교육에 매우 신경을 썼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녀들의 식솔들에게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또 에드워드 1세는 두번째 아내가 아들들의 건강에 대해 자신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레오노르의 시녀였던 인물에게 맡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부부는 아이들이 너무 일찍 죽었으며, 늘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자신들보다는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랄때까지 한곳에 머물면서 키우는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낫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드워드 1세와 레오노르


레오노르와 에드워드 1세 사이에서는 열여섯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여섯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특히 아들은 막내였던 에드워드 2세밖에 없었죠.


레오노르와 에드워드 1세의 여섯번째 아이이자 성인으로 성장한 첫번째 아이는 엘레노어입니다. 엘레노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모가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러 갔으며 할머니인 엘레오노르 왕비 손에서 컸다고 합니다.  엘레노어는 아라곤의 알폰소 3세와 약혼했었습니다만, 정치적문제로 둘의 결혼은 오래도록 연기되었고 결국 결혼전에 알폰소 3세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후 엘레노어는 바(Bar)의 백작인 하인리히3세(앙리3세)와 결혼해서 두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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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

바의 백작부인


레오노르와 에드워드 1세의 여덟번째 아이이자 성인으로 성장한 두번째 아이는 조안입니다. 조안은 부모가 아크레에서 있을때 태어났으며 이때문에 "아크레의 조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합니다. 조안은 어린시절 외할머니인 몽테외 여백작에게 맡겨져서 프랑스에서 키워졌고 여섯살때 잉글랜드로 왔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1세는 딸을 독일의 국왕인 루돌프의 아들이었던 하르트만과 결혼시키려했지만 결혼전 그가 사망했었죠. 그뒤로 국왕은 딸을  왕국내 최고로 힘있던 귀족이었던 글로스터 백작과 결혼시켰다고 합니다. 글로스터 백작 사이에서 네명의 아이를 낳습니다만 결혼 5년후인 1295년 그녀의 남편은 사망합니다.

이후 조안은 기사였던 랄프 드 몬테르머와 사랑에 빠져 비밀결혼을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1세는 딸을 사보이 백작과 재혼시키려 했었는데 조안은 아버지에게 비밀결혼한 사실을 밝히지 않고 결혼을 거부합니다. 결국 조안은 두번째 남편과의 첫아이를 낳았고 사실이 밝혀지게 됩니다. 에드워드는 딸의 결혼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안이 살아이있는동안 몬테르머는 국왕이 총애한 신하중 한명이었다고 합니다. 조안은 몬테르머와의 사이에서 네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크레의 조안

글로스터 백작부인


레오노르와 에드워드의 열번째 아이이자 성인으로 성장한 세번째 아이는 마거릿입니다. 마거릿은 세살때 이미 브라반트 공작이 되는 요한 2세와 약혼했고 이때문에 약혼자와 매우 잘 아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선량한 성품의 마거릿은 브라반트 공작의 궁정에서 매우 불행했는데 그녀는 남편의 정부들을 받아들여야했으며 정부들의 아이들을 궁정에서 키우는것도 받아들여야했다고 합니다. 이런 결혼생활은 마거릿이 유일한 아들인 요한 3세를 결혼 10년만에 낳았던 것의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거릿은 남편이 죽은 22년뒤에 사망했으며 에드워드 1세의 자녀들중 제일 오래산 사람이라고 합니다.



마거릿 

브라반트 공작부인


레오노르와 에드워드의 열세번째 아이이자 성인으로 성장한 네번째 아이는 메리입니다. 레오노르는 반대했지만 메리는 1285년 열세명의 귀족 소녀들과 함께 일곱살의 나이로 베네딕트 수녀회의 수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부모는 메리를 위해 많은 연금을 주었으며 메리는 수녀로 평온한 삶을 살다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우드스톡의 메리


레오노르와 에드워드의 열다섯번째 아이이자 성인으로 성장한 다섯번째 아이는 엘리자베스입니다.1285년 홀란드 백작이었던 플로리스 5세는 아들인 요한과 엘리자베스의 결혼을 요청합니다. 둘의 약혼은 성사되었고 요한은 잉글랜드에서 교육받게 되죠. 엘리자베스는 동생인 에드워드 2세와 제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1297년 약혼자와 결혼합니다만, 1299년 그녀의 남편은 사망했고 엘리자베스는 잉글랜드로 돌아오죠

이후 엘리자베스는 헤리퍼드 백작인 랄프 드 분과 1302년 재혼했고 둘사이에서는 10명 이상의 자녀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

헤리퍼드 백작부인


막내는 아들이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된 에드워드 2세입니다. 에드워드 2세는 강력한 기사이자 군주였던 아버지보다 못한 인물로 인식되며 이때문에 그의 왕국은 귀족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신하들과의 마찰은 아내인 이사벨과의 마찰로 발전되었고 결국 이사벨은 망명했다가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남편을 붙잡아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만들었었죠.


에드워드 2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