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36) 프랑스의 마르거리트 : 에드워드 1세의 왕비 (첫번째)

엘아라 2015. 7. 1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에드워드 1세의 두번째 왕비할차례인데 여기도 보면 사촌의 딸이라서...둘이 결혼할때 교황의 사면장이 필수였을듯합니다.-0-;;;


잉글랜드의 왕비들...(36) 프랑스의 마르거리트 : 에드워드 1세의 왕비 (첫번째)



프랑스의 마르거리트

잉글랜드의 왕비

Margaret of France 

(c. 1279 – 14 February 1318)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의 두번째 부인이 되는 프랑스의 마르거리트는 프랑스의 필리프 3세와 그의 부인인 브라반트의 마리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의 필리프 3세는 성인으로 추대된 국왕인 루이 9세와 그의 아내인 프로방스의 마르거리트의 아들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는 사촌관계였었죠.필리프 3세는 아라곤의 이사벨과 결혼해서 네명의 아들을 뒀었는데 아내가 죽은뒤 브라반트의 마리아와 재혼한것이었죠.


브라반트의 마리아는 브라반트 공작 하인리히 2세와 슈바벤의 마리아의 딸이었습니다. 슈바벤의 마리아는 호엔슈타우펜 가문 출신으로 그녀의 할아버지는 바로 황제 프리드리히 1세였으며 아버지는 독일의 국왕이 되는 필립이었습니다. 필립은 형인 루드비히 6세가 후계자인 프리드리히 2세가 어린시절 사망하자 조카를 대신해서 후계자인 독일의 국왕 지위에 오른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뵐프가문의 오토와 제위를 두고 다퉜다고 합니다. 



필리프 3세와 브라반트의 마리아의 결혼



마르거리트와 에드워드 1세의 결혼은 좀 복잡한 상황이었습니다.둘의 결혼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죠. 

에드워드 1세는 1290년 아내를 잃었으며 아내의 죽음에 깊이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남성후계자가 아들 에드워드 밖에 없었기에 재혼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때문에 프랑스와의 동맹이 필요했었고 이때문에 프랑스와 결혼동맹을 해야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1세는 아들인 에드워드를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이복여동생이자 마르거리트의 언니인 블랑쉬와 1291년 약혼시켰었습니다. 하지만 당면한 프랑스와의 동맹이 필요했던 에드워드 1세는 1293년 아들과 블랑쉬와의 약혼을 깨고 자신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합니다. 필리프 4세는 두나라의 평화와 가스코뉴 지방에대한 권리를 받는 조건으로 여동생을 에드워드와 결혼시키는데 동의하죠.



아키텐 공작으로 프랑스 국왕인 필리프 4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하지만 에드워드가 자신의 신부를 데릴러 동생인 랭카스터 백작을 프랑스로 보냈을때 랭카스터 백작은 블랑쉬가 이미 다른 남자와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사실에 에드워드는 격분했는데 필리프 4세는 또 다른 동생인 마르거리트와 에드워드와의 결혼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이를 거절하고 프랑스와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결국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전쟁은 프랑스쪽에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1299년 교황의 중재로 에드워드는 거절했었던 필리프 4세의 여동생인 마르거리트와 결혼하며 그의 아들은 필리프 4세의 딸인 이사벨과 결혼시키기로 결정하죠. 게다가 지참금명목으로 연금과 더불어 에드워드의 첫번째 아내인 카스티야의 레오노르의 상속영지였던 퐁티외 백작령을 돌려받았다고 합니다.



마르거리트의 언니 블랑쉬의 씰

블랑쉬는 독일의 국왕인 알베르트 1세의 아들인 루돌프와 결혼했습니다.



1299년 60살의 에드워드 1세와 20살의 마르거리트는 켄터베리에서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마르거리트는 잉글랜드 왕비로 대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복왕 윌리엄 이후에 에드워드 1세때 까지 왕비가 대관하지 않은 예는 마르거리트 밖에 없었으며,이 상황은 마르거리트가 왕비로써의 권위를 내세우는데 어려움을 겪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르거리트는 자신의 지위를 편지나 공문서등에 기록하고 공식적인 자리에 왕관을 쓰고 나오므로써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1세



결혼 직후 에드워드는 스코틀랜드와의 전투를 위해 마르거리트를 런던에 남겨두고 떠나게 됩니다. 마르거리트는 자신이 곧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죠. 남편도 없이 친근한 사람없는 런던에서 홀로 남겨진 마르거리트는 힘들었으며 곧 남편에게 가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상황은 에드워드에게 매우 기쁜 일이었다고 합니다. 마르거리트는 결혼한 다음해인 1300년 6월 그녀는 브라덜톤에서 아들인 토마스를 낳게 됩니다. 아들의 이름은 그녀가 임신중 기원했었던 성인인 토마스 베켓의 이름을 따서 지은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첫아들이 태어난 다음해인 1301년에는 둘째아들인 에드문드를 낳았습니다.



노퍽 백작 토마스의 문장


마르거리트는 아마도 늙은 국왕의 젊은 아내로 두 아들을 낳아줬었기에 남편의 사랑을 얻었을듯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에게 어느정도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을것입니다. 물론 에드워드 1세는 아내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을지는 의문입니다만말입니다. 어쨌든 이런 영향력은 마르거리트가 남편과 의붓아들인 에드워드 사이를 중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1305년 에드워드 1세와 아들인 에드워드는 돈문제로 불화를 겪게 됩니다. 에드워드 1세는 아들이 재무관에게 과도하게 돈을 요구한것을 알고는 화를 내면서 아들의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궁정출입을 금해버립니다. 마르거리트는 이런 상황에서 남편과 의붓아들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한 사람들중 한명이었으며, 결국 부자는 화해했다고 합니다.



아들 에드워드 2세와 함께 있는 에드워드 1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