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33) 카스티야의 레오노르 : 에드워드 1세의 왕비 (세번째)

엘아라 2015. 6.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레오노르는 뭐랄까 이야기가 참 많은것같아요.-0-;;;;

...그런데 맞는 이미지를 찾을수 있을래나..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33) 카스티야의 레오노르 : 에드워드 1세의 왕비 (세번째)




카스티야의 레오노르

잉글랜드의 왕비

Eleanor of Castile 

(1241 – 28 November 1290)

후대의 상상화


1270년 레오노르는 8차 십자군에 참여하려는 남편을 따라 함께 성지를 향해 갑니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이모부이자 훗날 성인으로 추대되는 프랑스의 루이 9세는 카르타고지방에서 병사합니다. 이때 에드워드는 이모부의 군대에 합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와 레오노르는 시칠리아로 가서 그곳에서 겨울을 지낸뒤 다시 성지를 향해 갑니다. 1271년 둘은 아크레에 도착했으며 이곳에서 레오노르는 딸인 조안을 낳습니다. 



아크레의 조안

레오노르와 에드워드 1세의 딸


루이 9세의 죽음에 한시름 놨었던 술탄 바이바르스는 에드워드가 이끄는 군대에 다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게다가 그는 몽골의 침입까지 맞이해야했기에 결국 에드워드를 암살하려합니다. 1272년 6월 술탄의 지령을 받은 암살자가 독이든 칼을 들고 에드워드를 공격합니다.에드워드는 죽지는 않았지만 독이 묻은 칼에 팔을 베였다고 합니다. 에드워드는 곧 중독되었으며 의사는 그가 중독된 부위 전체를 도려냈었다고 합니다. 레오노르는 이때 아이를 갓 낳았으며 남편의 침상 곁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후대에 전해지게 된 이야기에서는 레오노르가 남편의 상처에서 독을 입으로 빨아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실제의 이야기가 아니라 낭만적인 이야기를 원했던 이야기꾼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봤던 다큐에는 이 이야기 나오던데..ㅠ.ㅠ)



에드워드 1세에 대한 암살 시도



남편 팔의 독을 입으로 빨아내는 레오노르


이 사건이후 에드워드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아마도 그가 회복한 무렵인 1272년 9월 아크레를 레오노르와 함께 아크레를 떠납니다. 그리고 1272년 12월 시칠리에 머무르고 있을때 레오노르와 에드워드는 에드워드의 아버지인 헨리 3세가 사망했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둘러 잉글랜드를 향해 갑니다. 가스코뉴를 통해서 잉글랜드로 향했는데 이때 레오노르는 가스코뉴에서 아들인 알폰소(이복오빠인 알폰소 10세의 이름을 땃따고 합니다.)를 낳았다고 합니다. 

둘은 1274년 8월에서야 잉글랜드로 돌아올수 있었고, 돌아온 직후 잉글랜드의 국왕과 왕비로 대관했습니다.

이제 레오노르는 잉글랜드의 "엘레노어"왕비가 된것이었죠.



레오노르의 문장


에드워드와 레오노르는 대부분의 중세 왕족들과 달리 매우 행복한 결혼새활을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했기에 남자들은 대부분 정부를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에드워드는 아내들외에는 다른 여성들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은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레오노르가 그의 아이를 열여섯명이나 낳은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가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레오노르와 에드워드는 엄격한 왕실 생활이 아니라 서로 다정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함께 공유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그는 아내의 시녀들이 짖굳은 장난을 쳐도 받아들였으며 연례행사로 이를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또 레오노르는 에드워드의 성품을 잘 알았으며 남편에게 잘 맞춰주는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레오노르를 에드워드는 무척이나 아꼈으며 후에 아내가 죽었을때 무척이나 애통해하면서 아내를 기리는 여러작업을 하게 했었죠.



에드워드 1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