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39) 프랑스의 이사벨 : 에드워드 2세의 왕비(첫번째)

엘아라 2015. 8.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쓸이야기 엄청많은 이사벨까지 왔습니다.

그녀의 삶은 그야말로 남편과의 전쟁같은 삶 되겠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에드워드 2세는 강력한 기사이자 군주였던 아버지 에드워드 1세와는 좀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기사 만렙을 찍었던 아버지와 달리 에드워드는 뭐랄까 믿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그결과....잉글랜드 내전이 치열했습니다.-0-;;;

헨리3세의 유일한 위안이 아들이 에드워드 1세였다는 것인데 에드워드 2세는 그것도 없는듯.....

아내가 자기에 대항해서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전쟁까지...-0-;;;;;;;;


그나저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사벨을 잘 모르나봐요. 나온다는 이야기 대부분이 브레이브하트에 나오는 예쁘디예쁜 소피 마르소 밖에 없네요..ㅎㅎ(그러고 보니 마르소 장군 자료 찾을때 보면 대부분 소피 마르소 이야기 밖에 없더라는...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39) 프랑스의 이사벨 : 에드워드 2세의 왕비(첫번째)




프랑스의 이사벨

잉글랜드의 이사벨라 왕비

Isabella of France 

(1295 – 22 August 1358)

필리프4세와 가족들

왼쪽 붉은 옷이 이사벨이라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주로 "이사벨라"로 불렸고 가끔은 "프랑스의 암늑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이사벨은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4세와 그의 부인인 나바라의 후아나의 막내딸로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였던 필리프 4세는 프랑스의 왕권을 강화하려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잉글랜드와의 투쟁은 물론이고 교황과의 투쟁도 격화했는데 "아비뇽 유수"같은 사건도 필리프 4세가 교황권을 약화시키는데 성공해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또 내정을 위해 악독한 일도 서슴치 않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빚을 안 갚기 위해 유대인들을 추방했으며 템플기사단을 해체하기도 했었죠. 특히 템플기사단의 해체 역시 순전히 돈때문이었으며 이때문에 기사단에게 말도안되는 죄목을 씌웠으며 결국 기사단 단장을 비롯한 고위층은 화형을 당하게되죠. (전설에 따르면 기사 단장이었던 자크 드 멀레이는 불길속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필리프 4세와 교황 클레멘스 5세를 향해 "머지않아 하느님 앞에서 당신들을 만날것이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황은 한달후에 사망했고 필리프 4세는 그해말 사냥하다가 사고로 사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형당하는 템플기사단과 그것을 지켜보는 필리프 4세


이사벨의 어머니인 나바라의 후아나는 나바라의 국왕이었던 엔리케 1세와 그의 부인인 아르투아의 블랑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르투아의 블랑쉬는 프랑스의 국왕 루이 8세의 손녀로 카페 왕가의 방계 가문 출신이었죠. 원래 블랑쉬는 엔리케의 형이자 나바라의 국왕이었던 테오발도 2세와 약혼했었지만 테오발도가 블랑쉬의 사촌이자 프랑스의 루이 9세의 딸인 이사벨과 결혼하면서 블랑쉬는 테오발도의 동생인 엔리케와 결혼하게 된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테오발도는 결혼한지 얼마안되어서 사망했고 블랑쉬의 남편인 엔리케가 국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엔리케 역시 오래 살지 못했고 후계자는 후아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르투아의 블랑쉬가 섭정이 되긴했지만 여성후계자에 여성 섭정이라는 문제는 나바라의 왕위를 주변 다른 나라들이 탐내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블랑쉬는 사촌인 필리프 3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죠. 결국 후아나는 필리프의 아들들중 한명과 결혼하기로 했고, 필리프 3세의 아들중 필리프만이 살아남게 되면서 결국 그와 결혼한것이죠.

재미난 사실은 후아나의 어머니 블랑쉬는 파리에 있으면서 재혼하는데 재혼 상대가 바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의 동생이었던 랭카스터 백작 에드먼드였다는 것입니다. 이 결혼은 에드먼드의 이모이자 필리프 3세의 모후였던 프로방스의 마르거리트의 중재로 그녀는 조카가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하길 바랬고 이때문에 조카에게 블랑쉬를 시집보낸 것이었죠. 블랑쉬와 에드먼드의 두 아들인 토마스와 헨리는 모두 랭카스터 백작이 되었고, 3대 백작 헨리의 아들인 헨리가 바로 1대 랭카스터 공작으로 헨리의 딸인 블랜치가 바로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인 곤트의 존과 결혼하게 되죠. (...이렇게 엮이는 족보-0-;;;)



이사벨의 어머니

나바라의 후아나 1세


다른 많은 중세 시대 여성들처럼 이사벨 역시 정확한 출생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연대기들이나 기록등에 여러 차이가 있기에 그녀가 태어난 해 몇몇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출생연도는 1295년인데 몇몇 연대기의 기록은 물론, 이사벨이 1308년 1월에 결혼하는 것과도 어느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중세시대 최소 결혼연령은 12살로 12살 이전에 성직에 들어가거나 결혼하는 것은 교회법상 허용이 안되던가 그랬었습니다.(예전에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이야기를 읽을때 레이디 마거릿이 최소 12살이 되지 않은 여성에 대한 결혼이나 성직부여를 부정적으로 봤다는 이야기를 봤던것 같거든요.--;;; 이게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잘 안나네요..ㅠ.ㅠ) 그렇기에 결국 1308년 1월에 만 12살이었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사벨은 1295년생이어야 맞는것이죠.하지만 또다른 연대기에서는 이사벨이 1299년 7살이라는 기록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 기록에 의지한다면 이사벨은 알려진것보다 3살이 더많은 1292년생이어야하죠.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사벨이 1295년생이라고 여기는듯합니다.


이사벨은 위로 살아남은 세명의 오빠들이 있었으며 살아남은 막내딸이자 고명딸이기도 햇었습니다. 이사벨은 평범했다고 알려진 어머니 후아나 보다는 "미남"이라고 불렸던 아버지 필리프 4세를 더 많이 닮았으며 이때문에 당대에 미녀라는 평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사벨의 아버지 필리프 4세는 매우 잘생겼을뿐만 아니라 감정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었기에 당대에 그에 대해서 "사람(man)이나 야수(beast)는 아니지만 조각상이다"라고 평가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사벨의 어머니 후아나는 이사벨이 2살무렵이었던 1297년 막내아이를 낳다가 사망했었습니다. 당대 몇몇 기록에서는 후아나의 죽음이 남편인 필리프 4세의 책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만 잘못된 기록일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필리프 4세는 아내가 죽은뒤 재혼하지 않고 살았는데 당시 왕권 강화를 노력하던 필리프4세가 정치적 목적으로 아내를 얻지 않은것을 보면 어쩌면 아내를 사랑해서 평생 홀로지냈을 가능성도 있을듯합니다.



필리프 4세 가계도



이사벨은 어려서 어머니가 사망했지만 당대 전통처럼 어머니의 부재를 그리 크지 않게 느꼈을 것입니다. 많은 왕가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거의 함께 지내지 않았고 자신의 보모나 궁정 조신들과 함께 지냈을 것이죠. 이사벨 역시 테오파니나 드 생-피에르라는 보모의 손에서 성장합니다. 이사벨의 보모는 잘 교육받았으며 책읽는것을 좋아했기에, 후에 이사벨이 책 읽는것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공주이자 중앙집권제를 원했던 국왕 필리프 4세의 딸이었던 이사벨은 정략결혼을 피할수는 없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