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안 왕비 할차례입니다만..-0-;;;;
대충 적당히 하고 싶습니다만 그게 될까요..흑..ㅠ.ㅠ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42) 인판타 아나 : 펠리페 3세의 딸(첫번째)
에스파냐의 인판타 아나
프랑스의 안 왕비
안 도트리슈
Anne of Austria
(22 September 1601 – 20 January 1666)
1616년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어머니로 프랑스식 이름인 "안 도트리슈"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인판타 아나는 펠리페 3세와 그의 부인인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의 첫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펠리페 3세는 펠리페 2세와 그의 네번째 부인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안나의 아들로 펠리페 2세의 유일한 남성 후계자였죠.
인판타 아나의 아버지
펠리페 3세
미화-0-;;;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는 황제 페르디난도 1세의 아들이자 인너 오스트리아의 공작이었던 카를 2세와 그의 부인이자 조카였던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르가레테의 부모는 모두 열다섯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마르가레테의 오빠인 페르디난트는 후계자가 없던 루돌프와 마티아스 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 지위에 오르게 되죠. 언니였던 안나와 여동생이었던 콘스탄체는 스웨덴과 폴란드의 국왕이었던 시기스문드(지그문트3세)의 아내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어머니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리타 여대공
...역시나 미화-0-;;;
아나 마리아 마우리시아 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아나는 에스파냐에서 인판타 아나 데 아우스트리아라고 불렸을듯합니다.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국왕들이 에스파냐를 통치하던시절 왕가는 "오스트리아"가문으로 불렸고 이때문에 이 이름을 쓰게 된것이라고 합니다. 이 이름은 후에 그녀가 프랑스에 갔을때 그대로 프랑스식으로 "안 도트리슈"라고 번역되게 되죠.
어린시절의 아나
어린시절 아나는 당시 다른 많은 왕족 아이들과 달리 부모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왕실아이들은 부모를 자주 보지 못했었는데 아마 첫 아이였던 아나는 부모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듯합니다. 아나의 부모는 모두 신앙심이 깊었고 아나 역시 이런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신앙심이 매우 깊었다고 합니다.
아나가 10살때였던 1611년 아나의 어머니인 마르가레테는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고 그녀의 아버지인 펠리페 3세는 재혼하지 않았죠. 아나는 아버지가 재혼하지 않은 궁정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이었으며 이런 상황은 비슷한 처지의 많은 왕실 여성들이 그러는것처럼 그녀가 아버지를 보좌하고 동생들을 돌보게 했었던듯합니다. 아나는 동생들을 매우 잘 돌봤고 동생들에게 아나는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남동생인 펠리페와 함께 있는 아나
하지만 아나는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이었으며 결국 이런 상황은 그녀가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에스파냐 국왕의 딸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조카인 아나에게는 그녀의 신분에 걸맞는 남자와 혼담이 오가게 됩니다. 바로 프랑스의 국왕인 루이 13세였죠.
사실 원래 루이 13세의 아버지인 앙리 4세는 에스파냐의 인판타보다는 다른 신부감을 원했다고 합니다만 그가 암살당한후 섭정이 된 루이 13세의 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시스는 에스파냐와의 전통적 결혼동맹을 선호했으며 이 결과 루이 13세와 아나, 그리고 아나의 동생이자 왕위계승자인 펠리페와 루이 13세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 드 부르봉의 결혼이 성사되게 됩니다. 아나의 아버지인 펠리페 3세는 딸이 프랑스로 시집가는 것이 에스파냐에 이익이 될것으로 여겨서 결혼을 승락했다고 합니다.
10살의 루이 13세
아나는 11살때 같은 나이였던 루이 13세와 약혼합니다. 프랑스와 달리 에스파냐는 여성의 왕위계승을 인정했기에 아나는 결혼전 자신과 프랑스 국왕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의 왕위계승권을 포기했었습니다. 또 그에 따른 댓가로 엄청난 지참금을 가지고 갑니다. 에스파냐 측에서는 루이 13세가 일찍 죽을 것을 우려해서 만약 아나가 과부가 될 경우 자신의 지참금을 그대로 다 가지고 에스파냐로 돌아올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아나는 1615년 10월 남동생인 펠리페와 함께 대리혼을 치뤘으며 같은날 프랑스에서는 루이 13세와 여동생인 엘리자베트가 대리혼을 치뤘죠. 그리고 두 공주는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중간지점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아나는 프랑스로, 엘리자베트는 에스파냐로 가서 각자의 남편들을 만나게 되죠. 아나는 1615년 11월 루이 13세와 정식으로 결혼해서 이제 프랑스의 왕비가 됩니다.
에스파냐 남매와 프랑스 남매간의 결혼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의 결혼
하지만 프랑스에서 아나의 삶은 쉽지 않은 것이었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합스부르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44) 인판타 아나 : 펠리페 3세의 딸(세번째) (0) | 2015.08.11 |
---|---|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43) 인판타 아나 : 펠리페 3세의 딸(두번째) (0) | 2015.08.04 |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41) 인판타 카타리나 미카엘라 : 펠리페 2세의 딸 (0) | 2015.07.21 |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40) 인판타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 펠리페 2세의 딸 (두번째) (0) | 2015.07.14 |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39) 인판타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 펠리페 2세의 딸 (첫번째) (0) | 2015.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