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세개로 끝낼수 있을까요..ㅠ.ㅠ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44) 인판타 아나 : 펠리페 3세의 딸(세번째)
에스파냐의 인판타 아나
프랑스의 안 왕비
안 도트리슈
Anne of Austria
(22 September 1601 – 20 January 1666)
1638년 임신중인 안 왕비
1638년 9월 5일 37살의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와 37살의 프랑스 왕비 안 도트리슈 사이에서 건강한 아이 그것도 후계자가 될 아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당시 국왕 부부의 나이는 자식을 포기할만한 나이였으며 이때문에 국왕 부부는 후계자가 될 아들이 태어난것을 하느님이 내려준 기적이라고 여길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기적의 아이가 바로 프랑스의 유명한 루이 14세가 될 아이였죠.
후계자가 될 아들과 함께 있는 루이 13세 부부
기적과도 같은 상황에는 그에 걸맞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게 됩니다. 사실 그때 기적이라고 표현한것은 여자에게 별 관심없는듯한 루이 13세와 당시로는 출산을 포기해야할 나이로 여겨졌던 왕비 사이에서 후계자가 태어난것 때문이었죠. 하지만 후대에는 이에 대해서 루이 14세가 국왕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돌게 되죠. 아마 이것은 루이 13세 생전에 나왔던 이야기일 가능성이 커보입니다만, 중요한 사실은 안 왕비가 리슐리외의 감시속에 살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남자와 동침한다는 것은 꿈도 못꿀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2년후에 왕비는 아들을 또한명 더 낳습니다. 바로 루이 14세의 동생이자 오를레앙 가문을 세우는 필리프였죠.
안의 두아들
루이와 필리프
두아들이 태어난뒤에도 국왕과 왕비사이는 그다지 변한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국왕은 후계자가 태어난 것에 기뻐하긴 했지만 그 역시 아버지에게서 사랑받지 못했었기에 아마도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하는지 잘 몰랐던것같습니다. 그는 아이가 아이다운 행동을 하는것에 짜증을 냈으며,아기인 아들에게 살가운 아버지가 아니었었죠.
루이 13세
대관식복장
하지만 안 왕비는 이런 남편을 적대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녀는 프랑스 왕국을 물려받을 아들이 있었으며 이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고 있었던것입니다. 안 왕비는 남편은 물론 리슐리외 추기경에게도 공손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음모를 꾸미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 매우 조용히 살아가죠. 아마도 그녀는 그녀의 남편과 리슐리외 추기경이 오래 살지 못할것을 파악하고 있었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승자는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것을 보는 자신이 될것이라고 알수 있었던 것이죠.
두 아들과 함께 있는 안 왕비
리슐리외가 사망한뒤 그의 뒤를 이은 인물은 바로 "마자랭"이었습니다. 마자랭은 왕비에게 매우 호의적인 인물이었는데 이것은 안 왕비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죠.
루이 13세는 여전히 아내를 의심했으며 죽어가면서 아내를 섭정단에서 배제하려했다고 합니다.
1643년 5월 안의 남편인 루이 13세가 파리에서 사망하고 이제 그녀의 아들인 4살의 루이가 즉위하게 됩니다. 이것은 안 왕비가 또다른 삶을 살게되는 계기가 되는것이었죠.
상복을 입은 안 왕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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