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인판타 카타리나 미카엘라는 어디선가 했는데 말입니다.-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41) 인판타 카타리나 미카엘라 : 펠리페 2세의 딸
인판타 카타리나 미카엘라
사보이 공작부인
Catherine Michelle of Spain
(Catalina Micaela de Austria)
(10 October 1567 – 6 November 1597)
1588년경
인판타 카타리나 미카엘라는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와 그의 세번째 부인인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의 딸이었습니다.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는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그의 부인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딸이었죠. 재미난 것은 그녀의 어머니는 사실 펠리페 2세의 아들인 돈 카를로스의 약혼녀였었는데 정치적 상황이 변하면서 엘리자베트가 펠리페 2세와 결혼하게 된것이었죠.
펠리페 2세와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
인판타 카타리나의 어머니인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는 카타리나 미카엘라가 1살이되던 1568년 10월 아이를 사산한뒤 23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같은해에 후계자가 될 아들이었던 돈 카를로스를 잃었던 펠리페 2세는 남성 후계자를 얻기 위해 서둘러 재혼해야했는데 그 재혼 상대가 아들의 약혼녀였던 조카인 오스트리아의 안이었습니다. 1670년 안은 에스파냐에 왔으며 남편 전처의 두딸들인 이사벨 클라라와 카타리나 미카엘라를 친자식처럼 키웠으며 두 딸들 역시 안을 친어머니처럼 따랐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안나
...역시 미화 추정
차가운 이미지에 아들인 돈 카를로스와 사이가 나빴기에 펠리페 2세는 매우 차가운 사람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아들을 바랬던 펠리페 2세는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와의 사이에서 딸들이 자꾸 태어나자 실망스러워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펠리페 2세는 딸들에게 무척이나 다정한 아버지였는데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매우 친근하고 자상한 모습을 보여줬었다고 합니다.
인판타 카타리나 미카엘라는 매우 아름답고 지적이었다고 묘사되지만 높은 신분에 걸맞는 오만함도 가지고 있었다고 이야기됩니다. 아마도 카타리나 미카엘라의 이런 오만한은 그녀의 지위와 가문에 대한 자부심때문이 아니었을까합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황제였고 숙부도 황제였죠. 아버지는 에스파냐와 신대륙을 통치하는 국왕이었으며 어머니는 프랑스 공주로 외할아버지,외삼촌들이 모두 프랑스 국왕이었죠.
카타리나 미카엘라
1570년대 후반
인판타 카타리나 미카엘라는 1585년 사보이 공작이었던 카를로 엠마누엘레 1세와 결혼합니다. 그는 매우 야심만만한 인물로 카타리나 미카엘라와는 오촌관계이기도 했습니다.(그의 어머니인 마르거리트 드 발루아는 프랑수아 1세의 딸로,카를로 엠마누엘레와 카타리나 미카엘라의 어머니인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가 사촌간이었죠.) 카를로 엠마누엘레는 펠리페 2세에게 자신과 동맹을 맺는다면 에스파냐의 영향력을 사보이까지 확대할수 있을것이며 상대적으로 프랑스의 영향력을 축소시킬수 있다고 이야기햇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펠리페 2세가 사랑하는 딸인 카타리나 미카엘라를 사보이 공작에게 시집보내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펠리페 2세는 카타리나 미카엘라가 떠날때 그녀가 배로 떠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그리고 카타리나 미카엘라는 결혼하고서도 아버지와 다정한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사보이의 카를로 엠마누엘레 1세
카타리나 미카엘라의 남편
사보이 공작령으로 온 카타리나 미카엘라는 처음에는 사보이 공작의 궁정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거만"했었으며 에스파냐식 옷차림등의 외국인으로 낯선 존재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곁에서 정치에 대해서 뭔가를 배웠던 카타리나 미카엘라는 곧 궁정 사람들의 호의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단순히 에스파냐의 이익을 위해 궁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보이의 이익을 위해 궁정에 있다는 것을 보여줬는데 이를테면 그녀의 보호를 위한 군대를 제공하겠다는 에스파냐측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에스파냐 군의 주둔을 거절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프랑스와 에스파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던 남편의 행동을 지지했으며 전쟁때문에 수년간 남편이 떠나있을때는 섭정의 일을 맡기도 했었죠.
카타리나 미카엘라는 남편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런 영향력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또 예술과 건축을 후원했고 여러 건물들을 지어서 사보이의 문화적 환경을 좀더 윤택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인판타 카타리나 미카엘라
카타리나 미카엘라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10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막내인 딸을 유산한 뒤 그해 말에 30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아버지 펠리페 2세는 사랑하는 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카타리나 미카엘라와 카를로 엠마누엘레의 후손들은 계속 이탈리아 지방을 통치하는데 결국 통일 이탈리아의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역시 카타리나 미카엘라의 후손이었습니다.
인판타 카타리나 미카엘라의 아들
토마소 프란치스코 디 사보이아
카리냐노 공
사보이-카리냐노 분가의 시조
이 가문이 사르데냐 왕위를 이어받아서 이탈리아 왕국을 형성하는 가문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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