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어쩌다가 보니 글이 또 길어집니다.-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40) 인판타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 펠리페 2세의 딸
인판타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의 총독
Isabella Clara Eugenia
(Isabel Clara Eugenia)
(12 August 1566 – 1 December 1633)
1599년
인판타 이사벨 클라라는 1599년 사촌이자 전 약혼자의 동생이었던 오스트리아의 대공 알브레히트와 결혼하게 됩니다.
알브레히트 대공은 황제 막시밀리안 2세와 그의 부인인 에스 파냐의 인판타 마리아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어린시절 외삼촌 펠리페 2세의 궁정으로 보내져서 키워졌는데 펠리페 2세는 그를 톨레도 대주교로 만들 계획을 세웠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알브레히트 대공은 어린시절부터 사제로써 교육을 받게 되죠. 하지만 톨레도대주교가 예상보다 너무 오래 살았고 대공이 주교나 일반 사제가 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여겨졌기에 톨레도 대주교가 죽을때까지 알브레히트 대공은 그냥 에스파냐 궁정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을 합병한뒤 포르투갈 총독으로 일을 하기도 했으며 1589년 리스본을 공격한 잉글랜드의 공격을 무찌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에스파냐로 돌아온 뒤에는 에스파냐에서 국왕 대리로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었죠. 그리고 형인 에른스트 대공이 사망한 뒤에는 그의 뒤를 이어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총독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형이 죽은 그해 톨레도 대주교가 사망했기에 톨레도 대주교의 지위도 이어받았었죠.
알브레히트 대공
1599년경
대공은 원래 성직자로 키워졌는데 저렇게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하면서 평범한 군인 초상화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펠리페 2세는 이사벨 클라라와 알브레히트 대공을 결혼시키면서 둘에게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를 통치 영지로 부여하게 됩니다. 둘은 공동 통치자로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를 다스리고 둘의 후손이 이 영지의 통치자로 상속받는 것이었죠. 단 둘의 여성후손밖에 없다면, 그녀는 에스파냐 국왕 또는 국왕이 지정한 사람과만 결혼할수 있으며 만약 둘사이에 후손이 없다면 다시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는 다시 에스파냐 국왕에게 돌아간다는 내용이었죠. 알브레히트 대공은 결혼전 톨레도 대주교였기에 이사벨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환속절차가 필요했고 비록 둘은 1598년에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의 공동통치자로 선포되었지만, 환속절차가 끝난 1599년에 결혼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공 부부
이사벨 클라라와 알브레히트 대공이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로 갔을때는 전란의 시기였습니다. 독립한 네덜란드는 계속 에스파냐와 싸우고 있었는데 슈타터호우더였던 마우리츠 공은 알브레히트 대공보다 군사적으로 뛰어난 인물이었고 이때문에 알브레히트 대공은 패배를 지속할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리고 결국 12년간의 휴전이 1609년 체결이 됩니다. 아마 전쟁의 시기 이사벨 클라라는 다른 많은 여성들처럼 그저 남편이 전장에서 승리하기만을 기다릴수 밖에 없었던듯합니다.
알브레히트 대공과 이사벨 클라라 여대공
이 휴전기간동안 대공부부는 자신의 영지를 재정비하고 발전시킬수 있었으며 이런 발전은 결국 부부가 예술등을 후원할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둘사이에는 자녀가 없을것이 거의 확실시 되면서 다시 정치적인 문제가 부상하게 됩니다.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 측에서는 에스파냐 국왕을 다시 군주로 맞이해야하는데 이런상황은 네덜란드와의 휴전이 끝날때쯤 다시 전쟁을 해야한다는 부담과 더불어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 상황과 맞지 않는 에스파냐 국왕의 정책을 따라야하는 불안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사벨 클라라의 남편인 알브레히트 대공은 1621년 사망하게 됩니다. 남편이 죽으면서 에스파냐 국왕이 다시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의 군주가 되었으며 그녀는 공동통치자로써 국왕 대리의 임무를 맡게 되었죠.
예술품을 모아놓은 갤러리에 있는 부부
저런 카탈로그식 그림이 유행했었다고 해요.
남편이 죽은후 이사벨 클라라는 여전히 네덜란드 총독이긴 했었지만, 과부로써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수녀로써 서원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사벨 클라라는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의 이익을 위해 에스파냐와 잉글랜드 사이에 평화협상을 시도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뒤 수녀 복장의 이사벨 클라라
1633년 이사벨 클라라는 사망했고 그녀의 지위는 조카인 추기경 인판테 페르난도가 이어받게 됩니다.
이사벨 클라라의 조카
인판테-추기경
인판테 페르난도
펠리페 3세의 아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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