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마담 드 몽테스팡의 자녀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
사실 마담 드 몽테스팡의 자녀들이 잘나간 가장 큰 이유는 마담 드 멩트농이 이 아이들을 돌봐서였다죠.
궁정에서 왕비로 대접받았다고 알려진 마담 드 멩트농이 친자식처럼 여겼으니 당연히 잘나갈수 밖에요=-=
정부들과 그 후손들...(55) 멘 공작 루이 오귀스트 드 부르봉 : 마담 드 몽테스팡과 루이 14세의 아들(첫번째)
루이-오귀스트 드 부르봉
멘 공작
Louis-Auguste de Bourbon,
duc du Maine
(31 March 1670 - 14 May 1736)
루이 오귀스트 드 부르봉은 1670년 생제르멩에서 루이 14세와 그의 정부였던 마담 드 몽테스팡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의 어머니인 마담 드 몽테스팡은 남편과 정식으로 별거하기 전이었기에 결국 그는 태어나자마자 다른곳으로 보내져서 키워졌었습니다. 루이 오귀스트를 돌본 사람은 바로 "마담 스카롱"으로 이후 태어난 마담 드 몽테스팡의 자녀들 역시 마담 스카롱이 돌보게 되죠.
마담 드 몽테스팡은 베르사유궁전에서 지냈으며 아이들을 잘 찾아오지 못했었습니다. 이때문에 루이 오귀스트는 자신을 돌봐준 마담 스카롱을 친어머니처럼 따르게 됩니다.
멘공작의 어머니
마담 드 몽테스팡
루이 오귀스트는 선천적으로 한쪽 다리가 다른 다리보다 짧았고 이런 사실을 알게된 마담 스카롱은 루이 오귀스트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곳을 다녔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도 훗날 마담 드 멩트농이 멘공작을 더 아낀 원인중 하나였을듯합니다.
마담 드 몽테스팡의 아이들과 함께 있는 마담 드 멩트농
마담 드 멩트농은 원래 포르투갈 왕비의 시녀가 될려고 했으나 마담 드 몽테스팡의 부탁으로 그녀의 아이들을 키워주게 됐다고 합니다.
1673년 루이 오귀스트가 3살이 되었을때 루이 14세는 마담 드 몽테스팡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적자로 인정하게 됩니다. 루이 오귀스트는 이때 "멘 공작"지위를 부여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674년 궁정에 소개되면서 이제 베르사유로 가서 살게 되죠. 아마 아이들의 가정교사였던 마담 스카롱 역시 아이들과 함께 궁정에 와야했는데 이때문에 마담 스카롱에게도 궁정을 출입할수 있는 지위인 "멩트농 여후작"칭호가 부여되었을듯합니다.
루이 오귀스트는 루이 14세가 제일 사랑한 아들이 되었는데 루이 14세는 아들에게 장군지위를 부여했으며 훌륭한 군인이 되도록 최상의 교육을 부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군인이 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또 루이 14세는 루이 오귀스트에게 멘공작 외에도 다른 지위들을 부여했는데 특히 루이 14세가 사촌인 라 그랑 마드무아젤(안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이 신분이 낮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빌미로 그녀의 영지 일부를 멘공작에게 넘기도록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라 그랑 마드무아젤"
안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
루이 14세는 자신의 서자들을 왕실의 적통 후손들과 결혼시키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루이 14세는 멘 공작을 자신의 조카인 오를레앙 공작의 딸과 결혼시키려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를레앙 공작부인은 이 상황을 결사반대했었죠. 하지만 또다른 방계 왕족이었던 콩데 공은 이 혼담을 괜찮게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손녀 셋중 하나를 멘 공작의 신부감으로 선택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드무아젤 드 샤롤레 (루이즈 베네딕트 드 부르봉)가 멘공작과 결혼하게 되죠. 열여섯살의 마드무아젤 드 샤롤레는 21살의 멘 공작과 이렇게 결혼하게 됩니다. 마드무아젤 드 샤롤레는 팔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때문에 궁정에서 누군가는 신랑신부가 둘다 장애를 가진것에 대해서 "이 얼마나 완벽한 한쌍인가"라고 비꼬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둘은 매우 불행했는데 마드무아젤 드 샤롤레는 자신의 왕실의 적통 후손임에도 국왕의 사생아 아들과 결혼한것에 매우 불쾌해했으며 또 둘은 서로 성격도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둘사이에서는 다섯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만 세명의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죠. 하지만 셋다 모두 후손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루이즈 베네딕트 드 부르봉
"그랑콩데"의 손녀
멘 공작부인
멘 공작은 친어머니인 몽테스팡 후작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친자식처럼 돌봤으며 궁정에서 왕비로 대접받던 마담 드 멩트농을 더 좋아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때문에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그다지 슬퍼하지 않았다고 알려져있죠. 하지만 어머니가 죽음으로써 어머니의 막대한 재산 역시 그가 물려받게 됩니다.
루이 14세의 치세가 끝나가면서 멘공작의 지위는 점차 올라가게 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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