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몽테스팡 후작부인 결국 세번째 글까지 갑니다....
마담 드 몽테스팡은 애들도 많은데 말입니다.-0-;;;
정부들과 그 후손들...(54) 몽테스팡 후작부인 프랑수아즈 아테나이 : 루이 14세의 정부(세번째)
프랑수아즈-아테나이 드 로슈슈아르 드 모르마트
몽테스팡 후작부인
"마담 드 몽테스팡"
Françoise Athénaïs de Rochechouart de Mortemart,
marquise of Montespan
Madame de Montespan
(5 October 1640 – 27 May 1707)
루이 14세의 지속적인 여성 편력은 아마도 마담 드 몽테스팡이 걱정하는 것들중 하나였을것입니다. 게다가 교회에서는 유부녀인 자신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루이 14세에게 헤어지라고 강요를 하기도 했었죠. 또 시시때때로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여성들과 그 여성들을 후원하는 사람들 (특히 마담 드 몽테스팡의 적들) 역시 있었죠.
1670년대 후반 마담 드 몽테스팡은 이제 점차 루이 14세의 사랑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것입니다. 심리적인 면에서는 아이들의 보모였으며 그다지 뛰어난 미모가 아니라고 여겨졌었던 마담 드 멩트농에게 밀리고 있었으며 미모에서는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루이 14세가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마드무아젤 드 퐁탕주에게밀리고 있었죠. 이런 상황은 결국 마담 드 몽테스팡이 일명 "독살사건"이라고 알려지게 되는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마드무아젤 드 퐁탕주
퐁탕주 여공작
매우 아름다웠던 그녀에게 루이 14세는 정신없이 빠져들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원래 1672년 장교였던 고댕 드 생트-크로이라는 한 인물의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죽으면서 자신의 애인이 아버지와 오빠들을 독살하고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자연사였지만 이 편지가 그의 채권자들에게 넘어가면서 파장을 몰고오게 되죠. 결국 생트-크로이의 애인이었던 마담 드 브랭빌리에르가 체포되고 그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점차 일이 커지게 되죠.
이 독살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많은 이들이 독을 사용했다고 사실이 밝혀지게 되고 이런 독을 제조한 주범으로 1679년 "라 브와쟁"이라는 점쟁이가 체포됩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의 고객중에는 높은 신분의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고객중 한명이 바로 마담 드 몽테스팡이었다는 것이었죠. 마담 드 몽테스팡은 루이 14세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라 브와쟁을 찾았고 주술(흑마술)을 사용해서 국왕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무론 라 브와쟁의 고객에는 마담 드 몽테스팡 뿐만 아니라 수아송 백작부인이나 부이용 공작부인등도 포함되어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마담 드 몽테스팡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지만 그녀는 국왕이 인정한 아이들을 낳은 어머니였으며 결국 국왕의 자녀들의 어머니가 스캔들에 연루되는것은 피하기 위해 적당히 일이 덮어졌다고 합니다.
라 브와쟁
공식적인 처벌은 없었지만, 이 사건은 루이 14세가 마담 드 몽테스팡에게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됩니다. 또 마담 드 몽테스팡의 궁정내 입지도 좁아지게 되죠. 실제로 1681년 국왕의 총애를 받던 마드무아젤 드 퐁탕주가 갑작스럽게 사망했을때 궁정에서는 마담 드 몽테스팡이 그녀를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돌정도였다고 합니다.
마담 드 몽테스팡은 궁정에서 국왕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게 됩니다. 마담 드 몽테스팡은 궁정에 남아있으려 했지만 결국 1691년 파리의 수도원으로 은퇴하게 되죠. 아마도 자신의 얕봤던 마담 드 멩트농이 국왕과 비밀리에 결혼해서 궁정에서 "왕비"와 같은 대접을 받는것을 지켜보는것은 매우 속쓰린 일이었을듯합니다.
마담 드 멩트농
루이는 아내인 마리 테레즈가 죽은뒤 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마담 드 멩트농과 재혼했으리라 추정되는데 비밀결혼이었기에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아마도 1683년말에서 1684년 초라고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담 드 몽테스팡은 수도원으로 은퇴한뒤 이전에 자신이 힘들게했었던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에게 용서를 빌었으며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는 신앙심 깊은 수녀로써 자신에게 상처를 줬었던 마담 드 몽테스팡을 용서했다고 합니다. 마담 드 몽테스팡은 수도원에서 은퇴한뒤 자선사업과 선행을 베풀면서 자신의 죄를 회걔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1707년 마담 드 몽테스팡이 수도원에서 사망했을때 멘공작을 제외한 세자녀는 어머니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다고 합니다. 멘 공작은 자신의 친어머니보다 궁정에서 왕비대접을 받던 마담 드 멩트농을 더 따랐었죠. 하지만 루이 14세는 자녀들이 어머니의 상복을 입는것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마담 드 몽테스팡
1670년대
마담 드 몽테스팡은 남편인 몽테스팡 후작과의 사이에서 두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루이 14세와의 사이에서는 일곱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국왕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중 다섯명이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다섯아이들은 모두 왕가의 가까운 친인척들과 결혼했는데 루이 14세의 후계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마담 드 몽테스팡의 아이들이 지위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한 마담 드 멩트농의 노력이 컸을듯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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