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엘레오노르 마지막입니다.
다음은 남편과 사이가 너무 좋으셨다는 카스티야의 레오노르 되겠습니다.
(음냐 이름들이 하나같이 --;;;;)
잉글랜드의 왕비들...(30)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 헨리 3세의 왕비(다섯번째)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엘레노어 왕비
Eleanor of Provence
(c. 1223 – 24/25 June 1291)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는 헨리 3세와의 사이에서 다섯아이를 낳았습니다. 재미난것은 이 다섯아이들 외에 기록이 모호한 자녀들에 대해서 넷정도가 더 나온다고 합니다. 중세시대는 가끔씩 이런 경우가 많이 있긴합니다.어쨌든 여기서는 그냥 다섯자녀만 다룰예정입니다.
엘레오노르는 12살에 결혼했으며(늘 말하지만 중세시대는 저 나이가 결혼 적령기 최저연한쯤 됩니다.) 이때 헨리 3세의 나이는 28살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헨리 3세가 후계자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하죠. 하지만 엘레오노르는 결혼 3년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애한테 애를 낳으라는 소리인지..) 이때문에 왕비가 불임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있었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1239년 장남이자 후계자인 에드워드가 태어났고 이 상황은 엘레오노르가 궁정에서 영향력이 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1240년에 딸인 마거릿이, 1242년에는 베아트리스.1245년에는 에드문드가 태어났고 이후 1253년에 막내딸인 캐서린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엘레오노르와 헨리 3세는 좋은 부모였는데 특히 엘레오노르는 늘 자녀들과 함께 하려했었으며 자녀들 교육도 신경을 썼었다고 합니다.
헨리 3세와 다섯 자녀들
엘레오노르와 헨리 3세의 장남이자 후에 강력한 군주이자 기사였던 에드워드는 1239년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머니 엘레오노르가 제일 사랑한 아들이었으며, 아버지인 헨리3세에게는 오래도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후계자였죠. 생애 초반 그는 다른 플랜태저넷 가문 사람들처럼 아버지에게 반기를 일으키려합니다. 헨리 3세 역시 아들의 이런 상황을 그다지 곱게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초기 불화는 내전을 통해서 사라지고 에드워드는 아버지의 믿음직한 아들이됩니다. 그는 아내와 함게 십자군 원정에도 참가했는데 헨리3세는 아들이 떠나있는동안 다시 내전이 일어날까봐 걱정까지 했다고 합니다.
강력한 군주로 그때까지도 남아있던 잉글랜드내의 불만 세력을 잠재웠으며 웨일즈를 완전히 잉글랜드에 편입하는등의 일을 했었죠. (개인적으로 헨리 3세가 국왕으로 유일한 낙이라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에드워드1세의 아들이 에드워드 2세인건 -0-;;;;)
에드워드 1세
엘레오노르의 둘째아이는 딸인 마거릿입니다. 마거릿의 이름은 엘레오노르의 언니인 프랑스의 마르거리트 왕비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11살때 10살의 스코틀랜드의 국왕인 알렉산더 3세와 결혼했고 세명의 아이들 뒀습니다. 하지만 아들인 알렉산더와 데이비드는 후계자없이 사망했으며 딸인 마거릿은 노르웨이 왕비였지만 역시 딸을 낳다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마거릿은 스코틀랜드에서 불행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건은 잉글랜드 공주였던 마거릿이 스코틀랜드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거릿
스코틀랜드의 여왕
엘레오노르의 셋째아이는 딸인 베아트리스입니다. 아마도 이 이름은 엘레오노르의 어머니인 사보이의 베아트리스의 이름을 딴것일듯합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는데 헨리 3세가 두번의 결혼협상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후 베아트리스는 18살에 브르타뉴 공작의 후계자였던 장과 결혼합니다. 둘의 결혼은 사랑에 의한 결혼이었다고 합니다만 헨리 3세 입장에서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손해나지 않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브르타뉴 공작은 잉글랜드의 주요한 백작령중 하나였던 리치몬드 백작 지위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브르타뉴 지방은 헨리 3세가 중요시했었던 남부 프랑스 지방쪽과 연결되는 곳이기도 했었죠.
베아트리스와 장 사이에서는 모두 여섯아이가 태어납니다만, 베아트리스는 결혼 15년후인 1275년 사망합니다. 베아트리스의 남편인 장은 아내를 기리는 사원을 지었으며 1305년 사망할때까지 재혼하지 않았었습니다. 베아트리스의 남편인 장은 아내가 죽은지 11년후인 1286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브르타뉴 공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베아트리스
브르타뉴 공작부인
엘레오노르의 넷째아이는 Crouchback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랭카스터 백작 에드문드입니다. 엘레오노르는 이 둘째아들을 시칠리 국왕으로 만들려했고 이 문제는 결국 잉글랜드내 귀족들의 반발을 사는 결과를 초래했었습니다. 에드문드는 후에 랭카스터와 레스터 백작이 되었는데 그는 형인 에드워드와 함께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었으며 이때 그는 등에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었기에 유명한 별명인 Crouchback (Cross back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평생 형인 에드워드 1세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합니다.그의 후손이 그 유명한 랭카스터 공작 존 오브 곤트의 아내인 블랜치입니다.블랜치는 랭카스터 백작의 후손이자 랭카스터 공작령의 상속녀였고 이때문에 남편인 존이 랭카스터 공작이 될수 있었던 것이죠.
성조지와 함께 있는 랭카스터 백작 에드문드
엘레오노르의 막내아이는 딸인 캐서린입니다. 캐서린은 어린시절 매우 아팠으며 이후 결국 어린나이에 사망했었습니다. 캐서린의 죽음은 엘레오노르와 헨리 3세에게 매우 큰 슬픔이었다고 합니다.
캐서린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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