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27)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 헨리 3세의 왕비(두번째)

엘아라 2015. 5.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뭐랄까 머리가 텅텅빈것이 글이 안써져요-0-;;;


잉글랜드의 왕비들...(27)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 헨리 3세의 왕비(두번째)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엘레노어 왕비

Eleanor of Provence 

(c. 1223 – 24/25 June 1291


엘레오노르의 언니인 마르거리트는 1234년 프랑스의 국왕인 루이9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루이 9세의 섭정모후였던 블랑쉬 왕비는 기사를 보내서 프로방스 백작의 딸의 아름다움과 자비심에 대해서 들었으며 며느리감이자 프랑스 왕비감으로 적당한지 살펴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프로방스 백작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죠. 결국 마르거리트는 프랑스 왕비가 될수있었습니다.



루이 9세와 프로방스의 마르그리트 

15세기 그림


이런 상황은 동생인 엘레오노르의 결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단순한 백작의 둘째딸에서 이제 프랑스 왕비의 여동생이 된 엘레오노르는 이전보다 훨씬더 좋은 혼처를 찾을수 있게 되었죠. 엘레오노르의 외삼촌이었던 사보이의 기욤은 아름다운 조카들을 잘 결혼시켜서 가문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길 바랬는데, 마르거리트를 프랑스 왕비로 만드는데 성공했었죠. 

마르거리트의 결혼 이후 잉글랜드의 헨리 3세가 프로방스 백작의 딸에게 관심을 보이게 됩니다.그리고 프로방스 백작은 이 기회를 다시 놓치지 않습니다. 헨리 3세가 엘레오노르에게 관심을 보인것은 여러가지 정치적 문제 때문이었는데,헨리 3세 역시 프랑스에게 뺏긴 가문의 영지들을 되찾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프랑스 국왕의 힘이 상대적으로 덜 미치던 프랑스 남부 지방에 대한 관심으로 번지게 된것일듯합니다.  


1235년 엘레오노르는 결국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3세와 약혼했으며 1236년 1월 열두살이었던 엘레오노르는 자신보다 16살이나 더 많았던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와 결혼하게 됩니다. 엘레오노르의 결혼협상과정에서 지참금때문에 문제가 좀 됐지만 어쨌든 이 문제는 차일피일 미루는 방식으로 적당히 넘어갔던듯합니다.



헨리 3세와 엘레오노르


잉글랜드로 왔던 엘레오노르는 이전 왕비들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동시대와 이후에 "부정한 여인"이라고 악명이 높았던 시어머니인 이자벨 당굴렘과 달리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편에게 매우 헌신적이었다고 합니다. 또 남편과의 권력투쟁으로 나라를 내전으로 몰아갔었던 시할머니 엘레오노르 다키텐과도 달랐었죠. 늘 남편과 아이들에게 헌신했으며 남편을 늘 지지했던 엘레오노르의 이런 모습은 이상적인 왕비의 상으로 비춰질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당대 잉글랜드 사람들 특히 런던 사람들에게 매우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고 합니다.


엘레오노르가 환영받지 못한 궁극적 이유는 사실 "외국인 왕비에 대한 편견"이 작용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눈에보이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사보이야드"라고 불렸던 그녀의 수많은 친정식구들때문이었죠. 엘레오노르는 결혼할때 수많은 친정식구들을 데려왔으며 이들은 잉글랜드에 눌러앉아서 국왕의 특별한 혜택을 통해서 잉글랜드의 새로운 권력자로 부상하게 됩니다.이런 상황이야말로 기존의 권력자들이나 세력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실제로 엘레오노르의 언니인 마르거리트가 결혼할때도 외삼촌등이 따라갔지만 궁정내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모후인 블랑쉬는 며느리의 친인척들 대부분을 궁정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했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에서는 그런 역할을 할만한 인물들이 별로 없었으며, 답답할 정도로 늘 가족들에게 호의적이었던 헨리 3세는 처가 식구들에게도 매우 잘 대해줬고 이런 상황은 결국 엘레오노르 왕비와 그 친인척들에 대한 비호감으로 표출되게 되었습니다. (현재 런던의 사보이 지역이라고 불리는 곳은 헨리 3세가 엘레오노르의 외삼촌이었던 사보이 백작 피에트로 2세에게 부여했던 런던의 영지로 그는 이곳에 "사보이궁"이라고 불리는 곳을 건축했었습니다. 이후 이 사보이 지역은 랭카스터 공작령에 편입되었고 장미전쟁을 거치면서 랭카스터 공작령이 국왕 개인의 영지로 편입되면서 잉글랜드 국왕의 영지가 되었었습니다.)


엘레오노르의 외삼촌 부부였던 플랑드르 백작 부부

외삼촌인 사보이의 토마소는 플랑드르 백작의 상속녀였던 잔느와 결혼했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후에 헨리 3세의 이부동생들인 뤼지냥 가문 사람들이 왔을때 헨리 3세는 뤼지냥 가문 사람들에게도 처가 식구들에게 했던것과 같은 방식으로 잉글랜드에 기반을 마련해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먼저 와있던 엘레오노르의 처가 식구들과 이 뤼지냥 가문 사람들은 다시 마찰을 빚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료&그림출처

앞쪽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