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24) 앙굴렘의 이자벨 : 존 왕의 왕비 (네번째)

엘아라 2015. 4. 2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자벨의 자녀들을 첫번째 남편 자녀들과 두번째 남편 자녀들로 나눠서 이야기할까합니다.

뤼지냥 가문 자녀들은 자료는 많이 없긴한데 그래도 아홉이나 되니까..-0-;;;;;


잉글랜드의 왕비들...(24) 앙굴렘의 이자벨 : 존 왕의 왕비 (네번째)




이자벨 당굴렘

잉글랜드의 이사벨라 왕비

라 마르셰 백작부인

앙굴렘 여백작

Isabella of Angoulême

Isabelle d'Angoulême

(c.1188 – 4 June 1246)


이자벨 당굴렘은 두번의 결혼을 통해서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이 모두 열네명이나 됐습니다.


잉글랜드의 존 왕과 1200년에 결혼했으며 19살경인 1207년 첫아이를 낳았습니다. 존왕과의 사이에서는 모두 다섯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막내인 엘리노어는 존왕이 죽기 한해전인 1215년에 태어났죠.



존 왕과 그의 다섯 자녀들



이자벨의 첫째아이는 아버지 존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는 헨리 3세입니다. 헨리 3세는 아버지가 죽었을 당시 겨우 9살이었으며 성년이 될때까지 아버지인 존 왕이 지정한 섭정단이 정부를 통치했습니다. 헨리 3세는 어려운 시기에 국왕이 되었으며 왕권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형제,자매들,처가 모두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죠. 그는 아버지가 잃은 프랑스내 영지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으며 잉글랜드 내부의 반란도 직면해야했었습니다. 

아마 헨리 3세에게 국왕으로써 유일하게 성공한 부분은 아들이 강력한 국왕이자 기사였던 에드워드 1세 였던 정도가 아닐까합니다.헨리 3세는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와 결혼했고 둘사이에는 에드워드 1세나 랭카스터 백작인 "곱사등 에드문드"등이 태어났습니다.



헨리 3세

대관식


이자벨의 둘째아이는 아들인 리처드였습니다. 그는 형에게서 "콘웰 백작"지위를 받았으며 후에 푸아투 백작등의 지위를 주장했다고합니다. 또 독일 국왕으로 선출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나 독일쪽 지위는 정치적 문제때문에 실제로 얻은 지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리처드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을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 최고의 부자중 한명이기도 했었다고합니다. 리처드와 헨리 3세의 사이는 통치 초반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었지만 후에는 좋아졌는데 특히 리처드가 헨리의 처제와 결혼하면서 더욱더 평온한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리처드는 후에 제부인 시몽 드 몽포르와 전쟁을 해야했을때 형인 헨리 측에서 전투를 했으며 포로로 사로잡히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리처드는 세번 결혼했는데 첫번째 부인은 펌브로크 백작의 딸이자 글로스터 백작의 과부였던 이사벨 마셜로 둘사이에서는 네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첫번째 부인이 죽은뒤 헨리 3세와 엘레오노르 왕비는 리처드와의 사이를 좋게 하기 위해 엘레오노르의 동생인 프로방스의 산차와 리처드를 결혼시켰다고 합니다.  산차와의 사이에서는 두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리처드는 마지막으로 팔켄부르크 백작의 딸인 베아트리체 폰 팔켄부르크와 결혼합니다. 베아트리체는 당대 최고의 미녀라고 알려져있었다고 합니다.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콘웰 백작 리처드의 씰



셋째는 딸인 조앤입니다. 조앤은 원래 이자벨의 약혼자의 아들인 위그 드 뤼지냥과 결혼하기로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앤을 데리고 프랑스로 갔던 이자벨은 조앤 대신 위그 드 뤼지냥과 결혼하죠. 이후 조앤은 1221년 10살의 나이로 23살의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2세와 결혼합니다. 조앤과 알렉산더 2세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조앤은 오빠인 헨리 3세의 품에서 사망했는데 헨리 3세는 늘 동생인 조앤을 애뜻하게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조앤

스코틀랜드의 왕비


넷째는 딸인 이사벨라입니다. 그녀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세번째 아내가 되죠. 하지만 이사벨라는 정치적인 실권은 거의 없었으며 궁정에서 물러난 삶을 살았습니다. 황제는 잉글랜드 출신 시녀 둘만 남기고 나머지 시종들을 모두 돌려보냈었죠. 이사벨라와 황제 사이에서는 적어도 네명이상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사벨라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막내는 딸이자 유명한 엘리노어입니다. 엘리노어는 2대 펌브로크 백작인 윌리엄 마셜과 결혼합니다. 윌리엄 마셜의 아버지이자 1대 펌브로크 백작인 윌리엄 마셜은 내전당시 헨리 3세측에 서서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엘리노어는 1224년 11살때 결혼했지만 그녀가 18살때 남편인 윌리엄 마셜이 사망하죠. 이후 엘리노어는 7년후 6대 레이스터 백작인 시몽 드 몽포르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됩니다. 엘리노어는 첫번째 남편이 죽은뒤 수녀가 되기로 서원했었지만 시몽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국 비밀리에 결혼하기에 이르게 되죠. 이 결혼을 유일하게 지지한 인물이 오빠인 헨리 3세였다고 합니다. (...--;; 이렇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0-;;) 시몽 드 몽포르와 엘리노어 사이에는 모두 일곱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후에 시몽 드 몽포르가 이브샴 전투에서 엘리노어의 조카인 에드워드(에드워드 1세)에게 패배하고 사망하자 엘리노어는 프랑스로 망명했고 그곳 수녀원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헨리 3세는 동생인 엘리노어에게 여전히 호의적으로 대해줬으며 그녀의 재산등을 그대로 쓸수있게 보호해줬다고 합니다.



엘리노어

펌브로크 백작부인

레스터 백작부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