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0-;;;
사실 프로방스 자매들에 대한 책이 있거든요.
흑..그책 읽고 싶어요..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26)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 헨리 3세의 왕비(첫번째)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엘레노어 왕비
Eleanor of Provence
(c. 1223 – 24/25 June 1291)
헨리 3세의 왕비이자 당대 런던 사람들이 "전형적인 외국인 왕비에 대한 편견"을 보여줬었던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는 1223년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프로방스 백작이었던 레이몽 베렝게르 4세와 그의 부인인 사보이의 베아트리스(음냐 이게 프랑스 식으로 베아트리스 드 사부와 라고 읽어야할지 아니면 이탈리아식으로 베아트리체 디 사보이아로 읽어야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제맘대로 영어식으로 읽기로 했습니다.-0-;;;)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엘레오노르의 아버지인 레이몽 베렝게르 4세는 프로방스와 포카퀴에 백작이었습니다. 엘레오노르의 할아버지이자 레이몽 베렝게르 4세의 아버지인 프로방스의 백작 알폰소 2세는 아라곤 국왕의 아들이었죠.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2세는 둘째아들인 알폰소에게 프로방스 지역을 물려줬죠. 그리고 이 프로방스 백작령을 물려받은 알폰소는 포카퀴에 백작령의 상속녀였던 가르센다와 결혼합니다. 가르센다는 포카퀴에 백작의 외손녀로 어머니를통해 백작령의 상속권을 물려받았습니다. 포카퀴에는 프로방스 지방의 한 지역으로 가르센다의 외할아버지는알폰소와의 조약을 통해 외손녀이자 상속자를 그와 결혼시키므로써 프로방스 지역을 통합하기로 하죠.
그리고 라몽 베렝게르는 이둘의 자녀로 프로방스 지역을 통치하는 백작이었죠.
엘레오노르의 아버지
프로방스의 백작 라몽 베렝게르 4세
Picture taken by Odejea on August 2007,
사보이의 베아트리스는 사보이 백작인 토마소 1세와 그의 부인인 제네바의 마르그리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사보이 가문은 후에 사보이 공작과 사르데냐 국왕을 거쳐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국왕이 되는 그 가문입니다. 토마소는 제네바 백작의 딸이었던 마르그리트와 결혼했는데 둘의 결혼은 "약탈혼"형식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마르그리트는 원래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2세와 약혼했고 그와 결혼하기 위해 1195년 파리로 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국왕에게 데리고 가는 임무를 맡았던 사람이 사보이 백작 토마소였죠. 하지만 야심많고 강력한 백작이었던 토마소는 아마도 자신의 통치 지역 인근의 군주였던 제네바 백작과 통혼할 필요성을 느꼈던듯합니다. 토마소는 마르그리트를 프랑스 국왕에게 데려가지 않고, 그녀와 결혼해버립니다. 중세 시대에는 약혼한것도 결혼한것과 비슷하게 취급되었는데 토마소는 이전에 필리프 2세가 결혼했었으며 그 결혼이 무효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마르그리트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다고 합니다.(필리프 2세는 1193년 덴마크의 공주인 잉에보리와 결혼했었는데, 결혼후 그는 잉에보리의 대관을 거부하고 그녀와의 결혼 무효를 주장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나중에 더 골치아프게 됐는데 마르그리트와의 결혼이 깨진뒤에 매라니엔 공작의 딸인 아그네스 폰 안덱스와 결혼했는데 이 결혼은 결국 교황의 허락을 못받았으며 필리프는 오래도록 잉에보리를 가둬뒀다가 결국 아내이자 왕비로 인정해야했다고 합니다.)
사보이의 베아트리스
엘레오노르의 어머니
엘레오노르의 부모는 여섯명의 아이를 뒀지만, 그중 두명의 아들들은 모두 사산되었으며 딸만 네명을 뒀었습니다. 마르거리트,엘레오노르,산차,베아트리스 이렇게 네명의 딸들을 뒀는데 이 네명의 딸들은 각각 프랑스 국왕과 영국 국왕, 영국 국왕의 동생이자 "로마왕"(독일국왕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후계자)와 프랑스 국왕의 동생이자 나폴리 국왕과 결혼했었죠. 이런 자매들의 결혼은 유럽내에서 프로방스 자매들의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도록 했었던듯합니다.
엘레오노르는 언니 마르거리트와 함께 교육받았는데 언니가 장녀로써 책임감 강한 얌전한 성품이었다면, 엘레오노르는 좀더 낭만적인 성품이었다고 합니다. 엘레오노르의 아버지인 레이몽의 궁정은 매우 화려했으며 엘레오노르는 이런 화려한 궁정에서 교육을 잘 받고 자랐었습니다. 게다가 남부 프랑스의 궁정에서는 음유시인등의 전통이 이어졌기에 이런 궁정에서의 삶은 엘레오노르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듯합니다.엘레오노르는 어머니나 다른 자매들처럼 당대 미인으로 알려져있었다고 합니다. 짙은 머리색에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엘레오노르
후대의 상상화
엘레오노르는 그렇게 화려한 결혼을 할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엘레오노르의 아버지는 아들을 두지 못했지만 엘레오노르에게는 언니가 있었고 결국 백작의 둘째딸인 그녀는 상속권과 거리가 있었기에 강력한 가문과 결혼하기 힘들어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과 정치적 문제는 그녀에게 "왕비자리"를 주게 됩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http://www.oxforddnb.com/) 중 Eleanor of Provence
3.다음카페 "로열하우스"중 shy rabbit님의 글 "프로방스 자매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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