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17)아키텐의 엘레오노르 : 헨리 2세의 왕비(일곱번째)

엘아라 2015. 3. 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진짜 마지막입니다.-0-;;


잉글랜드의 왕비들...(17)아키텐의 엘레오노르 : 헨리 2세의 왕비(일곱번째)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아키텐의 여공작,푸아투의 여백작

한때 프랑스의 왕비

잉글랜드의 왕비

Eleanor of Aquitaine 

(1122 or 1124 – 1 April 1204)

일을 감독중인 엘레오노르



엘레오노르 다키텐은 두번의 결혼을 통해서 모두 열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중세시대의 특성상 사산되거나 일찍 죽은 아이가 있다면 기록하지 않았기에 아이들을 더 낳았을수도 있습니다만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들은 모두 열명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자녀들을 낳고도 엘레오노르는 매우 건강하게 오래 살았습니다만 이때문에 자녀들이 미리 죽거나 자녀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봐야했었습니다.



엘레오노르와 루이 7세의 결혼


엘레오노르는 프랑스의 루이 7세와의 사이에서 두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큰딸인 마리는 결혼 8년만에 태어났으며 둘째딸인 알릭스는 결혼 14년만에 태어난 아이었었죠. 하지만 두 딸을 낳고 엘레오노르는 루이와 이혼했으며 루이와 이혼후 딸들은 아버지의 보호아래서 성장했었습니다. 엘레오노르는 이 두딸들과 거의 만나지 않았었는데 이부 누나들을 좋아했었던 리처드는 후에 어머니가 누나들과 함께 지내게 해줬었다고 합니다.

마리는  상파뉴 백작인 앙리와 결혼했는데 앙리는 후에 마리의 새어머니가 되는 상파뉴의 아델의 오빠이기도 했었습니다. 알릭스는 형부의 동생이자 새어머니의 오빠인 발루아 백작 테오발드 5세와 결혼했었습니다. 

(왠 족보가 이리 꼬인것인지..-0-;;;)



프랑스의 마리의 씰

엘레오노르의 큰딸


엘레오노르는 헨리 2세와 결혼한후에는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는 모두 여덟명을 낳게 됩니다. 특히 막내아들인 존은 40살이 넘어서 낳은 아이였는데 중세시대에 40대는 이미 "할머니"라는 분위기였기에 매우 놀라운 일이었을듯합니다.(그러고보니 신성로마제국 황후들할때 황후들중 한명이 나이들어서 아이를 낳는바람에 친자가 아니라고 할까봐 광장에서 아이를 낳았던 기억이..아마 프리드리히 2세 엄마가 그랬던듯하네요.)



헨리 2세와 그의 여덟명의 적자들


엘레오노르와 헨리의 장남인 윌리엄(기욤)은 1153년 태어납니다. 그가 태어난날 헨리2세의 라이벌이었던 스티븐 국왕의 아들인 외슈타스가 죽었기에 매우 중요한 징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스티븐은 아들을 잃은 반면 헨리는 후계자가 될 아들을 얻었기에 그가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얻을 중요한 징조로 여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2살때 사망했었다고 합니다.


둘째아이는 차남인 헨리로 아버지와 공동으로 잉글랜드 국왕,노르망디 공작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마르거리트와 결혼했는데 마르거리트는 루이 7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카스티야의 콩스탕스의 딸이었죠(-0-;; 이것도 꼬인족보) 마르거리트와 헨리 사이에서는 아들이 한명 있었지만 3일 살고 사망했습니다. 헨리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용서를 받았었습니다. 헨리 2세는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의심을 계속 품었고 죽기 직전에는 불화가 극심했지만, 헨리는 아버지의 용서를 받기위해 노력했으며 죽음에 이르렀을때는 아버지가 용서의 징표로 준 반지를 소중하게 간직할정도였다고 합니다.(반지를 빼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기부하라고 했는데 그 반지는 심판의 날에 아버지가 자신을 용서한 징표로 간직해야한다고 이야기했다고합니다.) 그는 28살의 나이로 후계자 없이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은 부모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헨리2세가 엘레오노르에게 좀더 나은 처우를 하게 되는 계기중 하나가 됩니다.



젊은왕 헨리


셋째아이는 장녀인 마틸다로 후에 작센의 공작부인이 됩니다. 그녀는 작센과 바이에른의 공작이었던 하인리히와 결혼했었죠. 마틸다는 아마도 부모의 불화를 가슴아파했었던듯한데 그녀는 남편과 독일로 떠나기전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잘대해주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마틸다의 아들인 오토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오토 3세가 되었으며 막내아들인 윈체스터의 윌리엄(빌헬름)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으로 후에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의 선조로 영국의 조지 1세 역시 그의 후손이기도 합니다.(이 가문 족보 정리하다가 머리 아파서 때려쳤다는...--;;;)



마틸다와 하인리히의 결혼식

--;;위키에 얼마전까지 이 그림이 헨리2세의 어머니인 마틸다와 그녀의 첫남편인 황제 하인리히5세의 그림으로 나왔었는데 지금 보니까 헨리의 딸인 마틸다와 그녀의 남편인 바이에른과 작센의 공작인 하인리히의 결혼식으로 나오는군요.-0-;;;


넷째아이는 셋째아들인 리처드였습니다. 어머니인 엘레오노르가 가장 사랑한 아들이었는데, 리처드 역시 어머니 엘레오노르를 매우 잘 따랐으며 어머니를 명예롭게 하는 일을 하는데 많이 노력했었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리처드1세이자 "사자심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특히 십자군 원정에서 살라딘과의 싸움으로 유명했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 내정을 등한시했으며 그의 과도한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그의 영지는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잔혹하고 냉소적이었으며 심지어는 "하루도 여자없이는 살수 없었다"라는 평가를 받는 난봉꾼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의 강인함과 지칠줄 모르는 이교도와의 적대적인 모습 그리고 기사로써 매우 이상적인 모습은 그의 신하들이나 연대기 저자들이 그에게 매우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게 했었다고 합니다. 리처드는 형수의 동생이었던 프랑스의 알리스와 약혼했었지만 파혼했고 나바라의 베렝가리아와 결혼했지만 그녀와 거의 함께 살지 않았으며 후계자도 얻지 못합니다. 이때문에 리처드가 동성연애자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만 당대 연대기들에서는 그가 여자들을 없이는 못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또 인정한 사생아도 있었기에 좀 논란이 있는듯합니다.



십자군 전쟁때의 리처드와 필리프



다섯째아이는 넷째아들인 조프리(조프루아)였습니다. 그는 아내를 통해서 브르타뉴 공작 지위를 물려받았는데 엘레오노르의 아들들중 가장 지적이긴했지만, 야심도 매우 컸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형들과 달리 주변인물들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가 부족했기에 늘 변덕이 심하고 믿을수 없는 인물이라고 알려지게 됩니다 조프리는 브르타뉴 공작령의 상속녀였던 콩스탕스와 결혼했는데, 헨리 2세는 브르타뉴 공작령을 침입했으며 콩스탕스와 아들의 결혼을 강요했던 것이었죠. 이 결혼으로 세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막내인 아서는 조프리가 죽은뒤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조프리는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에 반란을 일으켰으며 아버지의 숙적이었던 프랑스 국왕과 친밀하게 지냈으며 특히 필리프 2세와 매우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27살의 나이로 사망했었죠. 세아이중 막내인 아서는 백부인 리처드가 죽은뒤 숙부인 존이 아닌 자신의 상속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전쟁을 했고 할머니인 엘레오노르를 공격하기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서는 결국 존에게 붙잡혔으며 그는 사라졌는데 아마도 존에게 살해당했을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프리의 두딸들중 둘째딸은 어려서 사망했고 장녀인 엘레오노르는 오래도록 생존했었지만 브르타뉴 공작령과 잉글랜드의 상속권때문에 아주 오래도록 연금상태였으며 결국 결혼하지 않고 사망하게 됩니다.



조프루아(제프리)

브르타뉴 공작


여섯째아이는 둘째딸인 엘리노어입니다. 그녀는 14살에 카스티야의 국왕이었던 알폰소 8세와 결혼했었습니다. 이 결혼은 오래전에 결정된것으로 엘리노어가 결혼할수 있는 나이가 될때까지 기다려서 한 결혼식이었죠.아마도 카스티야에서 "레오노르"라고 불렸을 엘리노어는 어머니처럼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고 합니다. 모두 열한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특히 큰딸인 베렝가리아는 레온의 왕비로 그녀는 남동생들이 후계자없이 사망하면서 카스티야의 왕위를 이어받았으며 그녀의 후손들은 레온과 카스티야의 왕위계승자로 후에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해서 에스파냐를 세우는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도 국왕은 모두 이 엘리노어의 후손이기도 하죠. 또한 엘리노어의 딸인 블랑카는 프랑스의 루이 8세와 결혼해서 루이 9세의 모후로써 뛰어난 섭정이기도 했었죠.



엘리노어

카스티야의 왕비


일곱째 아이는 셋째딸인 조앤입니다. 그녀는 시칠리의 국왕이었던 굴리엘모 2세와 결혼햇지만 그녀의 남편은 조앤의 오빠인 리처드와 함께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후계자를 얻지 못하고 사망했었죠. 남편이 죽은뒤 조앤은 툴루즈 백작인 레이몽 5세와 재혼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가 되는 레이몽을 낳았습니다만 둘째아이를 임신중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임신중의 유부녀였음에도 수도원에 서원하길 원했으며 아이를 낳은 직후 사망했는데 사망직전에 수녀로 서원했었다고 합니다. 리처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던 조앤의 둘째아들 역시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어머니와 함께 사망했다고 합니다.



오빠인 리처드 1세와 프랑스의 필리프2세와 함께 있는 조앤


여덟째아이이자 막내는 바로 존입니다. 존은 Lackland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였는데 그의 이런 별명은 형들이 너무 많아서 그에게는 돌아올 상속 영지가 없었다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존은 아버지 헨리2세가 가장 사랑한 적자였으며 헨리2세는 존에게 어떻게든 영지를 상속해주려고 노력했었다고 합니다. 존은 형들의 죽음으로 결국 국왕이 되었습니다만 그의 실책과 불운은 결국 플래태저넛 가문의 프랑스 영지를 상실하게 했으며 잉글랜드에서 조차도 왕권을 약하게 만들었죠. 존은 두번 결혼했는데 처음에는 글로스터 백작의 상속녀였던 알리스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그는 국왕이 된뒤에 그녀와 이혼하고 좀더 강력한 동맹관계를 맺을 사람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대 최고의 미녀라고 알려져있던 앙굴렘의 이사벨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10대초반이었던 이사벨은 이미 존의 최대 동맹세력중 하나였던 뤼지냥 가문의 약혼녀였는데 이런 그녀를 뺏다시피 결혼한것은 존의 큰 실책중 하나였습니다. 이사벨 역시 어린 나이에 중년의 아저씨와 결혼하므로써 훗날에는 남편에게 엄청난 해악이 되는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존과 이사벨사이에는 모두 다섯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중 아들인 헨리 3세는 아들이 에드워드 1세인것을 제외하면 매우 불운한 사람이었죠(헨리 3세에게 엄마나 처가,매제등은 모두 도움이 안되는 상황이되죠. 강력한 군주로 칭송받는 에드워드 1세가 아들인것이 유일한 위안이랄까요--;;;)



존 왕


엘레오노르와 헨리의 영지들중 대부분은 둘이 사망한뒤 프랑스쪽에 뺏기게 됩니다. 하지만 둘의 후손들은 영국,프랑스,독일,에스파냐등에 퍼져나갔으며 유럽의 대부분 왕가들은 그들의 후손이 되게 되죠.


자료&그림출처

앞쪽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