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엘레오노르 이야기 너무 길게 쓰는듯해요-0-;;;;
게다가 중간에 빼먹으니까 이건 진짜 몇달을 쓰고 있는듯해요..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16)아키텐의 엘레오노르 : 헨리 2세의 왕비(여섯번째)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아키텐의 여공작,푸아투의 여백작
한때 프랑스의 왕비
잉글랜드의 왕비
Eleanor of Aquitaine
(1122 or 1124 – 1 April 1204)
무덤 조상 그림
헨리 2세가 죽은 직후 엘레오노르는 자유의 몸이 됩니다. 헨리의 후계자는 리처드였으며 리처드는 모후인 엘레오노르를 매우 사랑했고 또 그의 잔혹한 성정은 매우 유명했었습니다. 이때문에 그의 심기를 거스를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엘레오노르를 석방하고 엘레오노르의 심기를 건들이지 않게 됩니다.
리처드는 잉글랜드를 물려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지인 남프랑스에 집중했고 잉글랜드는 그에게는 외국이나 다름없었죠. 그는 잉글랜드에 고작 10개월정도 밖에 있지 않았으며 잉글랜드의 부를 강탈해서 자신의 자금줄로 이용한것이 다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를 백성들이나 연대기 저자들은 매우 존경했었죠. 매우 용맹했으며 이교도들에 대한 끊임없는 적대와 뛰어난 무훈은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가는 대상이기도 했었던듯합니다.
리처드 1세
사실상 통치자가 없었던 잉글랜드를 그나마 운영한 인물이 바로 엘레오노르였습니다. 리처드는 잉글랜드를 떠나면서 어머니를 공식적으로 섭정으로 임명하지는 않았습니다.하지만 신하들중 누구도 모후의 의중을 거스를 사람이 없었을것입니다. 그녀는 아들의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이전에 내정을 했던 경험을 통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게 됩니다. 그녀의 아들의 탐욕스러움은 어쩔수 없었지만 적어도 왕국을 어떻게 운영해나가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듯합니다.
엘레오노르는 아들이 십자군 원정을 떠날것을 알았으며 후계자 문제도 고민했었던듯합니다. 그녀는 아들이 전 약혼녀인 프랑스의 알리스와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았었던듯합니다. 리처드는 아버지 생전에는 알리스와 결혼하길 원했지만 아버지가 죽은뒤에는 그녀와의 결혼을 바라지 않게 되었는데 아마도 어머니인 엘레오노르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을듯합니다. 또한 아버지와 말이 있었던 알리스와 결혼한다면 후에 자신의 후계자들의 정통성에도 문제가 될수 있었을테니까요. 엘레오노르는 이런 아들을 위해 며느리감을 선택합니다. 나바라의 공주였던 베렝가리아였습니다. 그녀는 남부출신으로 리처드와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마도 더 적합한 며느리감이었다고 여겨졌을듯합니다. 그리고 직접 결혼 협상을 진행하고 아들에게 며느리를 데려가는 일을 맡기도 했었죠.
리처드와 베렝가리아
리처드가 십자군 원정에 가있는동안 엘레오노르는 잉글랜드 내정을 담당했었습니다. 하지만 리처드는 오스트리아 공작인 레오폴트 5세의 포로가 되었으며, 공작은 엄청난 몸값을 요구하게 됩니다. 엘레오노르는 아들의 석방을 위해 돈을 긁어모으게 됩니다만, 이런 상황은 잉글랜드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게 됩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노려서 리처드의 동생인 존이 프랑스의 국왕과 함께 반란을 도모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엘레오노르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것이었죠. 어쨌든 엘레오노르는 돈을 모았고 아들인 리처드를 구해서 잉글랜드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엘레오노르와 리처드는 적인 프랑스 국왕에 대항하기 위해 잉글랜드를 떠나게 되죠.
필리프와 리처드의 싸움은 리처드에게 유리하게 돌아갑니다만, 리처드는 어느날 석궁병이 쏜 화살에 맞았고 패혈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엘레오노르는 리처드가 프랑스에 왔을때 이미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아들이 죽은뒤 다시 후계자 문제에 뛰어들게 되었죠.그녀는 이제 프랑스 궁정에서 자란 손자이자 넷째아들 조프리의 아들이 아니라 막내아들인 존을 후계자로 지지하게 됩니다.
프랑스에서의 상황은 늘 문제였고 엘레오노르는 이제 존의 입지를 위해서 자신이 해야할일을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영지의 후계자로 존을 지명했으며 이런 상황은 존에게 유리한 입장이 되도록 합니다. 존과 필리프는 일단 휴전협정을 맺게 되는데 이때 존이 얻은 필리프의 영지를 존의 조카와 필리프의 후계자가 결혼하므로써 지참금으로 가져가도록 합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엘레오노르는 외손녀인 카스티야의 블랑카를 프랑스의 왕위계승자의 부인으로 선택해서 데려갑니다. 언니인 우리카가 더 적합한 신부후보처럼 여겨졌지만 엘레오노르는 동생인 블랑카를 왕비감으로 선택했으며 블랑슈라고 불렸던 블랑카는 후에 프랑스의 루이 9세의 어머니로 미성년인 아들을 대신해서 섭정으로 일하면서 매우 유능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합니다.(하지만 며느리에게는 --;;;;;;;)
카스티야의 블랑카
프랑스의 블랑슈 왕비
엘레오노르의 외손녀
엘레오노르는 삶의 마지막까지 아키텐의 영주로 자신의 권리를 가지고 후계자를 지지하는데 쓰게 됩니다. 그녀는 손자인 아서가 자신의 영지를 노리자 공개적으로 존을 지지하므로써 필리프와 아서를 견제합니다. 그리고 존이 뤼지냥 가문과 틀어지게 되면서 자신의 영지에 까지 아서가 공격하게 되자 손자와의 협상을 진행하면서 아들이 올 시간을 벌기도 했었죠.
이후 엘레오노르는 수도원으로 은퇴해서 조용한 삶을 살아가려합니다. 적어도 그녀가 생존해있는 한 아키텐은 그녀가 통치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누구도 이를 건들일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204년 엘레오노르는 사망했고 퐁테브로 수도원에 남편 헨리 2세와 아들 리처드 1세 곁에 묻히게 됩니다.
엘레오노르와 헨리 2세의 묘
퐁텐브로 수도원
그녀가 죽은뒤 필리프는 아키텐 공작령마저 뺏았고 존은 프랑스내 대부분의 영지를 뺏기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존이 잉글랜드에서 "대헌장"을 승인하는 계기가 됩니다. 결국 이것은 잉글랜드 내에서 귀족권한이 강화한것으로 후에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의미로 잉글랜드 내의 독특한 정치체제를 확립하는데 한몫하게 되었었습니다.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앞쪽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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