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15)아키텐의 엘레오노르 : 헨리 2세의 왕비(다섯번째)

엘아라 2015. 2.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흑흑흑...책이 있는데 잘 안써져요.

한글로 된 책이 있으니까 그냥 그 책을 제가 읽고만 있지 제글을 쓰기가 더 힘든것같아요.

그래도 전 한글로 번역된 책이 나와서 좋아요-0-;;;


진짜 앨리슨 위어 책 처음 읽은것이 이 엘레오노르 다퀴텐이었는데 그땐 지금보다 더 영어실력이딸리는 상황이어서 완전히 좌절이었거든요 진짜 한페이지 읽는데 힘들더라구요 게다가 앨리슨 위어 책 특유의 그 설명들도 힘들었었어요..ㅠ.ㅠ


어쨌든 설인데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잉글랜드의 왕비들...(15)아키텐의 엘레오노르 : 헨리 2세의 왕비(다섯번째)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아키텐의 여공작,푸아투의 여백작

한때 프랑스의 왕비

잉글랜드의 왕비

Eleanor of Aquitaine 

(1122 or 1124 – 1 April 1204)

엘레오노르의 씰



엘레오노르와 헨리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것은 바로 자식들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후계문제때문에 생긴 일이었죠. 엘레오노르와 헨리는 자신들의 제국을 통치하는 것에는 이견이 별로 없었을것입니다만, 상속문제는 좀 다른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헨리는 자신의 영지와 아내의 영지를 합쳐서 하나의 큰 영지로 상속하고 싶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둘의 영지는 둘의 상위군주인 프랑스 국왕보다도 영지가 컸으며, 또 헨리는 잉글랜드 국왕이라는 지위로 프랑스 국왕과 동격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죠. 어쩌면 그는 후에 그의 가문이 황제가 될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어했을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헨리가 장자상속제를 선호하는 것은 그가 아버지로부터 영지를 상속받을때 동생에게 영지를 주는것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로 잘 이해할수 있을듯합니다.

하지만 엘레오노르의 경우는 분명이 분할상속제를 더 원했던듯합니다. 엘레오노르가 가장 사랑했던 리처드는 장자가 아니었으며 엘레오노르는 리처드가 자신의 영지를 상속받길 갈망했을듯합니다. 당시에는 장자상속제보다 분할상속제가 더 일반이었죠. 



리처드 1세

19세기 상상화

...아버지보다 더 하면 덜했지 덜하지 않은 잔혹한 성격에 잉글랜드 내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인물이긴 했지만 당대 사람들이나 후대 사람들의 평가는 굉장히 호의적인데 뭐랄까 범접할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긴했던듯합니다.--;;;;;;; 엘레오노르는 이 리처드를 제일 사랑했으며 리처드 역시 어머니 엘레오노르를 잘 따르고 존중해줬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부부간의 불화를 촉발하게 됩니다. 게다가 둘의 자녀들 역시 서로의 이익에 관심을 기울였고 결국 자녀들역시 아버지의 정책에 반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헨리는 살아남은 장남인 헨리에게 잉글랜드의 왕위를 미리 물려줬었습니다. "젊은 왕"이라고 불렸던 헨리는 국왕이 되었지만, 실권은 아버지인 헨리2세가 가지고 있었기에 불만을 품게 됩니다.(이런 경우는 흔한일-0-;;;;) 또 리처드의 경우는 잉글랜드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의 상속령을 지키는것에는 매우 호전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또 다른 아들인 제프리 역시 자신의 이익에 치중했었죠. 

결국 아들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기로 했으며 아들들의 어머니인 엘레오노르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리고 헨리의 숙적인 프랑스 국왕 역시 이를 지지하게 됩니다. 또 스코틀랜드 역시 잉글랜드와의 전쟁을 시작하죠 헨리는 아들들의 반란에 처음에는 밀리게 됩니다만, 결국 승리를 하게 됩니다.

헨리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화해를 했으며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헨리는 아들들을 용서했지만 아내인 엘레오노르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내인 엘레오노르가 아들들의 배후라고 여겼을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아내를 감금시키는 계기가 되었죠.



젊은 왕의 대관식


헨리는 이제 엘레오노르와의 이혼을 고려합니다. 자녀들을 더이상 만나지도 못하게 감시받았으며 아키텐 여공작이자 한때 프랑스의 왕비였으며 이제는 잉글랜드의 왕비이기도 한 엘레노오르는 예전과는 비교할수 없는 삶을 살았었죠. 하지만 그녀의 영향력은 무시할수 없었기에 헨리는 함부로 대할수는 없었을것입니다. 

헨리는 엘레오노르와 이혼하기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 교황대사에게 뇌물을 주기도 했으며 엘레오노르에게 편안한 삶을 누리게 해주겠다고 회유를 하기도 하죠. 하지만 헨리의 뜻대로 이혼을 할수는 없었습니다. 여러가지 정치적 문제는 물론 종교적 문제도 있었으니까요.


엘레오노르가 갇혀있는 동안 헨리는 자신의 정부였던 로자문드 드 클리포드와 대놓고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그는 아내와 이혼할수 있으리라 여겼던듯합니다. 하지만 결국 로잘린은 엘레오노르보다 오래살지 못하죠. 이후 헨리는 아들 리처드의 약혼녀인 프랑스의 알리스와 스캔들을 일으키게 됩니다. 아마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알리스와 결혼하려했었던듯합니다만 이것은 더 심각한 문제였죠. 며느리나 다름없는 여성과 이런 불륜관계를 저지른다는 것은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매우 큰 도덕적 문제이기도 했었습니다.(...하지만 앙주가문이 그런걸 따지는 가문이..-0-;;;)



엘레오노르와 로자문드 클리포드

후대 상상화 (19세기)

뭐랄까 사실 엘레오노르는 정식부인이고 로자문드는 불륜관계에 있던 여성이었는데 후대 그림은 왠지 로자문드에게 매우 동정적인 그림이 많더라구요.

물론 이것은 엘레오노르의 악명 때문에 그런걸수도 있지만요.

아마 로자문드는 엘레오노르와는 반대되는 성격이었을듯합니다. -0-;;;



10여년동안의 감금생활동안 엘레오노르에게 가장 큰 슬픔이 찾아옵니다. 바로 젊은 왕이라고 불렸던 헨리가 사망한것이었죠. 아들의 죽음은 부부모두에게 큰 충격이긴했었습니다. 격정적이었던 헨리는 아들의 죽음에 크게 상심했었습니다. 엘레오노르는 소식을 들었을땐 의연해보였습니다만 훗날에도 여전히 큰아들의 죽음에 힘들어한다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헨리는 딸인 마틸다가 결혼해서 잉글랜드를 떠날 무렵 아내에 대한 처우를 많이 개선해줍니다. 마틸다는 잉글랜드를 떠나기전 아버지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고, 아들의 죽음과 떠나는 딸의 간곡한 부탁은 헨리의 마음을 어느정도 움직여서 아내를 어느정도 자유롭게해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엘레오노르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지운것은 아니었습니다.



 엘레오노르와 여러사람들

이 그림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가운데 관을 쓰고 있는 여성이 엘레오노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는듯합니다.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보통은 맨앞의 인물이 헨리2세이고 엘레오노르가 손을 뻗히고 있는 인물이 리처드라고 추정하며 엘레오노르의 옆은 딸이라고 알려져있다고 합니다만, 앨리슨 위어는 맨 앞이 리처드이고 엘레오노르의 옆은 리처드의 아내인 베렝가리아이며 손을 뻗히는 인물은 엘레오노르가 아키텐 공작령의 후계자로 선포했었던 외손자인 오토(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윌리엄의 죽음은 다시한번 상속문제가 불거지게 됩니다. 엘레오노르가 가장 사랑한 아들인 리처드가 이제 잉글랜드의 왕위를 이어받을 지위에 이르게 되죠. 하지만 프랑스 사람으로 성장했으며 자신의 프랑스 영지를 뺏길 마음이 없었던 리처드는 동생인 존에게 프랑스 영지를 주라는 아버지 헨리의 말을 거부합니다.또 약혼녀인 알리스와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헨리는 리처드와 알리스와의 결혼을 차일피일 미뤘으며 또한 알리스의 지참금인 영지또한 아들에게 주려하지 않았었죠 아마 리처드는 이런 상황에 견디기 힘들었으며 결국 아버지의 숙적인 프랑스 국왕과 손을 잡고 아버지에게 대항하게 되죠. 



프랑스의 필리프 2세와 리처드

리처드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필리프와 손을 잡았지만 후에 다시 약혼녀인 알리스 문제로 틀어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헨리에게 매우 힘든 상황이었을듯합니다. 헨리는 과격한 성격이긴했지만 늘 자녀들에게 과도하게 사랑을 베풀었으며 반란을 일으킨 아들들을 늘 용서했었죠. 이제 늙은 헨리는 자신의 많이 닮았으며 어쩌면 자신보다 더 용맹하다고 알려지게 되는 아들 리처드를 상대하는 것이 버거웠을것입니다. 그리고 늙고 지친 헨리에게 결정타가 있었는데 바로 아들 존이 반란의 무리에 있었다는 것이죠. 엘레오노르가 가장 사랑한 아들이 리처드였다면 헨리가 가장 사랑한 적자는 바로 존이었습니다. 상속영지가 부족해서 lackland라는 별명으로 불릴정도였던 존에게 상속영지를 마련해주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던 헨리였지만 그런 아들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고 결국 사망하게 되죠.



잉글랜드의 헨리 2세

엘레오노르의 남편


1189년 헨리 2세가 사망하면서 그의 확고부동의 상속자는 바로 리처드였습니다. 리처드는 아버지의 상속자로써 잉글랜드등을 물려받았으며 늘 사랑했던 어머니 엘레오노르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주게 됩니다.

이제 "대비"로써의 엘레오노르의 삶이 시작되려하고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앞쪽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