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떻게 줄여야 잘 줄였다고 소문이 날까요..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14)아키텐의 엘레오노르 : 헨리 2세의 왕비(네번째)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아키텐의 여공작,푸아투의 여백작
한때 프랑스의 왕비
잉글랜드의 왕비
Eleanor of Aquitaine
(1122 or 1124 – 1 April 1204)
헨리 2세와 엘레오노르
앙리와 결혼한 엘레오노르의 삶은 아마도 다른 중세 왕족이나 귀족 여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그녀의 삶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을것이지만 말입니다.
결혼후 그녀의 영지는 남편인 앙주 백작에게 통치 권리가 돌아가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아키텐의 여공작은 엘레오노르였지만 그녀의 통치권을 가지고 직접 통치하던 인물은 바로 남편인 앙리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앙리 같은 정치적 인물이 이런 기회를 놓칠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앙리도 어느정도 양보해서 아내가 아키텐 공작령 내에서 통치하는 것은 어느정도 인정했었던듯합니다.
헨리 2세
앙리와 엘레오노르의 결혼 생활은 좀 모호한 면이 있었습니다.둘은 확실히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결혼했을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초기 둘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다고는 볼수 없을듯합니다. 둘은 성품이 매우 비슷했으며 여러가지 취향등도 비슷했을것이지 때문입니다. 좀더 세속적이며 화려한 삶을 좋아했었던 둘의 성품은 신혼초 잘 맞아떨어졌을것입니다. 아마도 둘의 결혼 생활은 오래도록 잘 유지 되었을것인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이들이었죠. 둘사이에서는 무려 8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게 되는데 이런 아이들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반증으로 자주 이야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물론 나중에는 안그렇지만..-0-;;;아마 행복한 결혼생활로 끝맺는 많은 부부들은 이렇게 애를 많이 낳을 경우 아내가 대부분 일찍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냉소적 생각도 잠시 듭니다.--;;;)
헨리 2세와 그의 적자들
물론 앙리는 아버지처럼 유명한 바람둥이였으며 아내가 알게 대놓고 바람을 피워댔으며 서출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들로 자주 인정했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결혼 초기 이런 상황에 대해서 엘레오노르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앙리와 엘레오노르의 감정이 단순 연애가 아니었기 때문에 엘레오노르는 자신이 헨리의 후계자를 낳았으며 그녀의 지위가 바뀌지 않을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남편의 행동을 받아들일수 있었을듯합니다.
엘레오노르와 결혼한 시기 앙리의 정치적 운도 점차 커지기 시작합니다. 결혼직후 앙리는 잉글랜드 왕위계승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스티븐 국왕의 후계자로 인정받았는데 이때쯤 엘레오노르는 앙리의 첫아이이자 아들인 기욤을 낳았죠. 앙리는 잉글랜드의 왕위를 약속받았을뿐만 아니라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까지 얻었기에 아마 최고의 시기가 되었을듯합니다.그리고 1154년 앙주의 앙리는 드디어 잉글랜드의 헨리 2세로 즉위했으며 엘레오노르는 이제 잉글랜드의 왕비가 됩니다.
잉글랜드의 왕비로써 엘레오노르는 여러가지 역할을 했었습니다. 잉글랜드의 왕비들은 프랑스와는 달리 왕비가 정치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었습니다. 엘레오노르 역시 이런 왕비들의 역할을 수행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했었으며 남편의 부재시에는 잉글랜드의 섭정일을 하기도 했었고 반대로 남편 없이 유럽 대륙에 있는 여러 영지를 다니기도 했었죠.
궁정을 주재중인 헨리 2세와 엘레오노르 왕비
하지만 잉글랜드 왕비로써 평온할것과 같았던 삶은 다시 조금씩 문제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헨리 2세와 엘레오노르의 성정이 비슷햇다는 것에 들수 있습니다. 헨리 2세가 비록 아내에게 어느정도 결정권을 줬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중세 시대의 가부장이었죠. 게다가 헨리 2세는 성격이 급하고 분을 못참기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엘레오노르는 헨리보다 10살이상이나 많았으며 그녀 역시 대영주였죠. 남편이 자신의 재산권이나 행정권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권리를 통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엘레오노르는 점차 남편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해나가는데 반감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결국 부부사이를 파탄내고 더 나아가서는 한때 "앙주 제국"이라고 불렸었던 잉글랜드-앙주-아키텐을 혼란에 빠뜨리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앞쪽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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