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번외편 1.앙주 백작 조프루아(첫번째)

엘아라 2014. 11.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원래 잉글랜드의 첫 여왕은 대부분 "메리 1세"(블러디 메리)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다 건너뛰고 그냥 메리 여왕의 남편인 펠리페 2세--;;;(왜 하필 남편이 펠리페란 말입니까..ㅠ.ㅠ 읽을것이 얼마나 많은데..ㅠ.ㅠ) 빼고 안할려다가 문득 "그래도 제인 그레이 남편은 해야할것같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그럴것 같으면 그냥 마틸다 황후 남편도 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가 마틸다의 남편을 할려면 첫남편인 하인리히 5세도 해야하나 싶었는데 그냥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보니까 마틸다가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상속녀로 확정적이 된것이 첫남편죽고 두번째 남편이랑 결혼한 뒤니까 그냥 두번째 남편만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하하...


쉽게 말하면 그냥 하겠다는거죠.-0-;;;


잉글랜드의 왕비들...번외편 1.앙주 백작 조프루아(첫번째)




앙주의 조프루아

조프루아 플랜태저넛

앙주 백작

Geoffrey V 

(24 August 1113 – 7 September 1151)

13세기 그림


앙주의 조프루아 5세는 앙주 백작 풀크 5세와 그의 부인인 멘의 이멩가르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인 이멩가르드는 멘 백작령의 상속녀로 후에 조프루아가 멘 백작령을 상속받게 되는 계기가 되죠. 그의 아버지인 풀크 5세는 후에 예루살렘의 상속녀인 멜리장드와 결혼해서 예루살렘의 국왕이 됩니다.

앙주 백작령은 프랑스의 중요한 봉신중 하나로 매우 호전적이었으며 노르망디 공작들과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풀크 5세 역시 노르망디 공작인 헨리 1세를 적대시하고 루이 6세쪽을 지지햇었습니다. 하지만 풀크 5세는 1119년경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기전 딸인 마틸다를 헨리 1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윌리엄과 결혼시키면서 평화를 모색했었습니다. 아마도 강력한 노르망디 공작이 자신이 영지를 비운사이 공격할것을 우려해서 이런 조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이후 앙주와 노르망디는 다시한번 동맹을 맺게 되는데 바로 풀크 4세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조프루아를 이제 아들이 없는 헨리 1세의 유일한 상속자인 마틸다와 결혼시키는 것이었죠.


예루살렘의 상속녀인 멜리장드와 함께 있는 풀크 5세


조프루아는 "the hansom"이나 "Plantagenet"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매우 잘생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교육도 매우 잘 받아서 헨리 1세가 잘생기고 교육을 잘받은 그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장인인 헨리 1세로부터 "사자"문장을 받았으며 이후 그의 가문 문장은 사자 세마리가 들어가게 되죠. 아마도 헨리 1세는 조프루아가 적어도 딸의 지위를 지켜줄수 있는 훌륭한 젊은이라고 봤었던듯합니다.

또 풀크 4세입장에서도 좋은 관계였는데 그는 1127년 예루살렘의 국왕으로부터 그의 딸인 멜리장드와 결혼해서 예루살렘의 국왕이 되어달라는 청을 받았습니다. 이런때 15살의 아들이 강력한 노르망디 공작이자 잉글랜드 국왕의 사위가 된다는 것은 좋은 기회였었죠. 게다가 어쩌면 며느리가 노르망디와 잉글랜드를 상속받을수도 있었으며 그렇게 되면 가문은 이제 거대한 영지를 얻게 되는 것이었죠.


조프루아

17세기 미화버전--;;;;


1128년 6월 10일 15살의 조프루아는 자신보다 11살 많았으며 신성로마제국의 황후였으며 잉글랜드의 공주이자 당시 노르망디와 잉긆랜드의 상속녀였던 마틸다와 결혼합니다. 둘의 결혼은 앙주와 노르망디 사이의 평화를 의미했었지만 둘의 평화를 의미한것은 아니었습니다.

마틸다는 황후였었던 자신의 지위를 매우 자랑스러워했으며 겨우 "백작"이될 새 남편의 지위를 탐탁치 않아했었죠. 게다가 11살이나 어렸던 남편에 대해서는 그냥 어린애 취급을 했을듯합니다. 이런 상황은 가부장적이었던 시대의 관념에 맞지 않는것이었죠. 아무리 지위가 높았다거나 나이가 많다고 해도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는것은 조프루아도 참을수 없는 일이었고 결국 부부는 불화했고 결혼후 오래도록 별거상태에 있게 됩니다.





마틸다


결혼 1년뒤 조프루아의 아버지는 예루살렘으로 떠났으며 조프루아는 앙주 백작 지위를 물려받게 되죠.그는 잘생긴 외모에 뛰어난 군인으로 중세시대에 괜찮은 기사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기록에서는 그가 냉정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아내와 불화했고 잘생긴 외모였기에 수많은 여성들과 연애질을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아내와 불화했지만 어쨌든 둘 사이에서는 후계자가 필요했고 결국 1133년부터 1136년 사이에 세명의 아들을 두게 되죠.



조프루아와 마틸다의 아들인 헨리 2세와 그의 자녀들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

2.아퀴텐의 엘레오노르(앨리슨위어,루비박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