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10) 불로뉴의 마틸다 : 스티븐 국왕의 왕비(두번째)

엘아라 2014. 11.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0-;;;;;

진짜 왜이리 안 읽히는 거랩니까..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10) 불로뉴의 마틸다 : 스티븐 국왕의 왕비(두번째)




불로뉴의 마틸다 1세

불로뉴의 여백작

잉글랜드의 왕비

Matilda I (or Maud

(1105? – 3 May 1152) 

후대의 그림



1135년 스티븐의 외삼촌이었던 헨리 1세가 사망합니다. 헨리 1세의 사후 그의 딸이었던 마틸다 황후는 이제 상속권을 주장하려하죠.하지만 잉글랜드에 기반을 잡고 있던 스티븐은 재빨리 잉글랜드를 장악합니다. 비록 노르망디 공작령은 마틸다의 남편인 앙주 백작이 장악했지만 바다건너에 있던 스티븐은 잉글랜드를 장악했고 이에 마틸다는 스티븐에게 대항해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으려 하게 됩니다.



마틸다 황후

헨리 1세의 딸

앙주 백작부인


볼로뉴의 마틸다는 남편을 도왔다. 잉글랜드로 갈수 있는 가장 가까운 항구를 가지고 있었던 볼로뉴 백작령을 다스렸던 마틸다는 이를 이용해서 유럽의 병력들을 잉글랜드로 빨리 수송할수 있게 했었습니다. 또 그녀는 유럽에 있는 여러 친척들에게 남편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었습니다.

마틸다는 남편을 위해 여러가지 정치적 행동을 했는데 먼저 외삼촌인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국왕과 평화조약을 맺었으며 스코틀랜드에 이익이 되는 조약을 맺어 스코틀랜드를 자신쪽으로 두려했었죠.(...그러고보니 마틸다 황후에게도 외삼촌인듯하네요--;;;) 그리고 대륙쪽에서도 장남인 외슈타트를 프랑스의 루이 7세의 동생인 콩스탕스와 결혼시키는데 성공하죠.이런 상황은 잉글랜드쪽에서는 스코틀랜드쪽의 지지를 얻으려했으며 프랑스쪽에서는 프랑스 왕가와 손을 잡고 마틸다 황후의 남편인 앙주 백작을 경계할수있었을것입니다.



앙주 백작 조프루아

마틸다 황후의 두번째 남편



뿐만아니라 1141년 2월 2일 링컨 전투에서 남편인 스티븐이 마틸다 황후의 군대에 패배해서 포로로 잡혔을때 불로뉴의 마틸다는 왕비로써 남편을 대신해 섭정의 역할을 하면서 다시 기회를 노립니다. 그녀는 군대를 모았으며 남편을 되찾기 위해 매우 열심이었죠. 마틸다 황후가 잉글랜드의 여왕으로 대관하려고 기다리는동안 왕비는 런던에서 쫓겨났지만 군대를 모아서 전투를 했으며 황후의 강력한 지지세력이었던 글로스터 백작 로버트를 생포하게 됩니다. 그리고 글로스터 백작과 남편의 포로교환을 성사시켰었습니다.


스티븐 국왕 통치시절의 잉글랜드는 그다지 평화롭지 못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내전때문에 왕권이 많이 약했고 이런 상황은 정치적 문제로 확대되었을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마틸다 왕비의 역할은 더욱더 커지게 됩니다. 그녀는 여전히 세력을 가지고 있는 마틸다황후를 경계했으며 외교적으로 자신과 남편 그리고 아들에게 유리한 입지를 점령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남편인 스티븐이 교회와 불화를 빚자 이를 중재한 인물도 마틸다였죠. 또 아들인 외슈타트가 잉글랜드 국왕의 지위를 이어받게 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합니다만, 그것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스티븐


나이가 점점 들면서 마틸다는 다시 자선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부유한 영지의 상속녀였던 마틸다는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많은 자선사업과 종교 공동체를 위해 기부합니다. 그녀는 여러 교회등을 세웠으며 병원등을 세웠었죠.


1152년 에섹스의 버딩햄 성에서 사망했으며, 남편과 함께 세웠던 성당인 Faversham Abbey에 묻혔습니다.


불로뉴의 마틸다와 스티븐 사이에는 다섯 내지 여섯명정도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들중 장남인 외슈타트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불로뉴 백작 지위를 물려받았으며 프랑스의 공주인 콩스탕스와 결혼했습니다만 후손없이 1153년 사망합니다. 다른 아들인 볼드윈은 일찍 사망했으며,막내아들인 길헴은 서리백작의 상속녀와 결혼했으며 형의 뒤를 이어 불로뉴 백작이 되지만 역시 후손 없이 사망했습니다.

큰딸인 마틸다는 우스터 백작인 웨일런 드 버몬트와 결혼했지만 자녀없이 사망햇습니다. 또다른 딸인 아델라는 어려서 죽은것으로 추정됩니다. 막내딸인 마리는 수녀원에 들어갔었습니다만 오빠와 남동생이 죽으면서 불로뉴 백작령의 상속녀가 되자 플랑드르 백작의 아들인 마테우스는 그녀를 강제로 수녀원에서 나오게 한뒤 그녀와 결혼하므로써 불로뉴 백작령을 차지하게 됩니다. 둘사이에는 두 딸이 태어나지만 결국 결혼 무효판결을 얻어낸뒤 다시 수녀원으로 돌아갈수 있었습니다. 



불로뉴 가문의 문장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앞쪽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