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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왕비들...(7)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헨리 1세의 왕비 (세번째)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또는 이디스
잉글랜드의 마틸다 왕비
Matilda of Scotland
(c. 1080 – 1 May 1118)
후대의 상상화 --;;;
왕비로써의 마틸다는 여러가지 정치적 의무에 참가하기도 합니다.왕비로써 마틸다는 국정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으며 국왕의 부재시에는 이회의를 주재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왕비로써 해야했던 의무였을뿐 마틸다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려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또 그녀는 당대의 많은 인사들과 서신을 주고 받았는데 여기에는켄터베리 대주교는 물론 교황이나 후에 사위가 되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5세도 포함되어있었다고 합니다.또 당대 많은 권력자들처럼 자신의 왕국 여기저기를 여행하면서 왕국내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던가 아니면 수도원등에 기부를 한다던가하는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마틸다 왕비의 씰
성인의 칭호를 받았던 어머니 성 마거릿처럼 마틸다 역시 자비심과 신앙심이 강했습니다.마틸다는 사순절기간동안 금식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마틸다는 나병환자들에게도 관심이 많아서 그들을 방으로 불러서 그들의 발에 키스하기도 했으며 나병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세우기도 했었으며 그들을 돕는 단체를 후원하기도 했었죠. 여러가지 공공사업에도 관심이 많아서 다리를 짓기도 했고 공중 목욕탕을 세우기도 했었죠. 또 다른 많은 일에도 후원을 했는데 역사 기록을 작성하는데에도 후원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마틸다는 딸인 마틸다를 신성로마제국으로 보낸 2년뒤인 1118년 5월 1일 웨스트민스터에서 사망합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죠.
헨리 1세와 마틸다의 조상
마틸다와 헨리 1세 사이에서는 네명 이상의 아이가 태어났을듯합니다. 기록에 남아있는 아이는 4명인데 아이들 모두 연년생이었으며 살아남은 아이는 딸인 마틸다와 아들인 윌리엄 애서링(아델린) 밖에 없었습니다.
마틸다는 어린시절 이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5세와 결혼이 결정되었으며 1116년 약혼자의 궁정으로 보내집니다. 그녀는 남편인 하인리히 5세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었으며 그는 일찍 사망하죠. 남편이 죽은뒤 잉글랜드로 돌아온 마틸다는 앙주 백작의 후계자인 조프리와 재혼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은뒤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상속권을 주장하면서 사촌과 내전을 했지만 결국 잉글랜드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권리는 아들 앙리에게로 전해졌으며 앙리가 바로 잉글랜드의 헨리 2세가 되죠.
마틸다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헨리 2세의 어머니
아들인 윌리엄 애서링(아델린)은 아버지 헨리 1세로부터 노르망디 공작 지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견제하는 프랑스 국왕과 전투에서 승리하므로써 노르망디 공작령의 상속지위를 확고히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로 돌아오던중 윌리엄이 탄 배인 "화이트 쉽"이 난파하면서 사고로 사망했고 헨리 1세는 후계자를 잃게 되었고 후에도 아들을 얻을수 없었기에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딸인 마틸다에게 물려주려했었죠.
윌리엄 애서링
마틸다의 아들
노르망디 공작
자료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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